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면서 사회의 핵심 요소인 '신뢰'가 위기에 놓였다. 소통 오류로 잘못된 정보가 공유되는 차원에서 의도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공유하는 단계까지 위기는 심화되고 있다. 한 개인이나 조직이 아니라 기술을 통한 시스템적인 해결이 요구된다. 데이터 위변조 방지 기술 블록체인은 신뢰 회복을 가능하게 할 잠재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허위 정보 확산으로 위기에 놓인 '신뢰'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는 디지털 정보 전쟁, 전략, 해결 방안을 담은 연구 보고서 '죽음을 야기하는 허위 정보(Disinformation that kills)'에서 디지털 정보 전쟁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으며 관련 기법은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20년은 뉴스에서 '허위 정보', '잘못된 정보'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등장했던 '정보 전쟁의 해'였다. 코로나19, 미국 대선 같은 중대한 사건에서 허위 정보는 전염병에 대한 효과적 대응을 방해하고 민주적 절차에 대한 신뢰와 기회를 흔들면서 공중 보건과 국가 안보까지 위협했다.
코로나19와 함께, 팬데믹(Pandemic)뿐 아니라 인포데믹(Infodemic) 시대까지 열렸다. 인포데믹은 잘못된 정보나 악성 루머가 미디어, 인터넷 등을 통해 매우 빠르게 확산되는 현상이다. 언론은 대중의 신뢰를 점차 잃고 있다. 올해 에델만의 신뢰도 지표 조사에서 전 세계 소비자 60%는 자신이 소비하는 미디어에 신뢰할 수 없는 정보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소셜 미디어·인공지능 등, 허위 정보 확산 가속화
클래어 워들(Claire Wardle)과 호세인 데라크샨(Hossein Derakshan)은 2017년 발간한 논문 '정보 장애(Information Disorder)'에서 "허위 정보를 통한 선전 활동은 인터넷 이전 시대에도 존재했다. 달라진 것은 정보 공해(information pollution)의 규모"라고 짚었다. 정보 공해는 정보화로 인해 발생한 권리 침해, 정보 독점, 정보 범죄 등을 말한다.
논문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플랫폼은 허위 정보가 도달하는 범위를 크게 확대시켰다. 소셜미디어는 이용자가 '좋아요'처럼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자료를 게재하도록 장려한다. 허위 정보는 사실보다 확산이 빠르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 제공은 더욱더 어렵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첨단 기술의 등장도 허위 정보 확산을 가속화할 수 있다.
논문 저자들은 악의없이 공유되는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고의적으로 잘못된 정보를 공유해 해를 끼치는 '허위 정보(Dis-information)', 공개하지 않아야 할 기밀 정보를 공유해 해를 끼치는 '유해 정보(mal-information)'를 분류하고 정보 생성 주체, 목적, 콘텐츠 소비와 전달 이유 등을 파악하면 유해 정보 공급을 차단할 실질적인 기회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기술적이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대책이 필요한 지점이다. 기술은 문제를 심화할 수 있는 동시에 문제를 해결할 기회와 가능성도 가진다.
유럽연합, 신뢰 콘텐츠 위한 블록체인 기술에 투자
유럽연합은 개인이 신뢰할 만한 정보인지 일일이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반 소프트웨어, 플랫폼, 툴을 통해 시스템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2020년 7월 유럽연합은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공헌 분야로 '가짜뉴스 퇴치'를 선정한 바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 공유를 위한 블록체인 기술에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젝트 '트루블로(TruBlo)'를 진행 중이다. 트루블로는 '미래 블록체인 기반 신뢰가능 콘텐츠(Trusted and reliable content on future blockchains)'의 약자다. 소셜네트워크와 미디어에서 신뢰할 수 있는 정보가 유통되도록 보장하는 블록체인 연구 개발을 촉진하는 것이 목표다. 2020년 9월 출범해 2023년 9월까지 3년 동안 진행될 예정이다.
유럽연합의 연구·혁신 지원 사업 '호라이즌2020'에 따라 콘텐츠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블록체인 소프트웨어, 플랫폼, 솔루션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총 420만 유로(56억 원) 상당의 개발 자금을 투입한다.
트루블로는 EC가 2016년 시작한 차세대인터넷(NGI) 이니셔티브의 일환이다.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등 점진적인 기술 접목과 함께 유럽이 지지하는 가치 △개방성(openness) △포괄성(inclusivity) △투명성(transparency) △프라이버시(privacy) △협력(cooperation) △데이터 보호(protection of data)를 보장하고 보다 인간 중심적인 인터넷 환경을 만드는 것을 목표한다.
유럽연합이 꿈꾸는 미래의 인터넷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신뢰' 문제가 선결돼야 한다. 유럽연합은 '신뢰할 수 있는 콘텐츠'를 가능하게 할 첨단기술로 블록체인에 집중하고 있다.
트루블로는 3번의 공개모집을 통해 제안서를 받는다. 각 공개모집은 연구 결과를 도출해내는 1단계와 최소기능제품(MVP)을 만드는 2단계로 진행된다. 첫 번째 공개모집은 1월 18일부터 3월 19일까지다. 블록체인 기반 신뢰·평판 모델과 유효성·위치 검증 두 가지 기술 부문을 지원한다.
블록체인 기반 신뢰·평판 모델(Trust and reputation models on blockchains) 부문은 블록체인 기반 정보 공유에 대한 신뢰를 강화하기 위해 인터넷에서나 소셜미디어에서 생성한 콘텐츠에 적용할 수 있는 블록체인 애플리케이션, 솔루션, 기술 접근법 등을 지원한다. 관련 엔지니어링 기술, 평판 측정·평가 모델, 콘텐츠 수익화 기술, 유럽연합 개인정보보호규정(GDPR)을 준수하는 프라이버시 강화 블록체인, 신원인증(KYC) 기술 등이 대상이 된다.
유효성 검증(Proof-of-validity) 및 위치 검증(proof-of-location) 부문은 사용자가 생성한 콘텐츠의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한 혁신 메커니즘을 모집한다. 대상 부문은 콘텐츠 유효성(Content Validation), 콘텐츠 위치(Content Location), 가짜뉴스(Fake news),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 허위정보(Disinformation)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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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을 수 있는 언론, 공정 선거에도
블록체인은 투표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고 허위 정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술 솔루션으로 채택되고 있다.
미국 유명 언론지 뉴욕타임스는 2020년 6월 12일 가짜뉴스를 억제하기 위한 블록체인 솔루션 실험 '뉴스 프로비넌스 프로젝트(News Provenance Project)'를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보도사진의 출처와 정보 등을 블록체인에 기록해 보도사진에 관한 메타 데이터 정보를 독자에게 공개한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사진을 게재해 잘못된 정보와 의미를 전달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뉴욕타임즈는 "보도사진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는 블록체인 솔루션을 고안했다"고 밝혔다. 매체는 "블록체인에 기록된 맥락 정보가 뉴스 사진의 신빙성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현가능한 툴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며 "가짜뉴스를 억제할 수 있는 잠재력이 크다"고 평가했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 버라이즌(Verizon)은 2020년 11월 2일 블록체인 기반 뉴스 기록 시스템 '풀 트랜스퍼런시(Full Transparency)'를 출시했다. 언론 보도의 가시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언론의 책임감을 강화하기 위해 블록체인 기술에 보도 자료를 저장하고 철자, 문법, 통계 등 보도 이후 발생한 모든 변경 사항을 기록해 영구적으로 추적한다. 버라이즌은 "블록체인은 언론과 대중이 소통하는 방식을 혁신할 것"이며 "가짜 뉴스 유통를 방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 솔루션 제공업체 퍼블리시(PUBLISH)가 언론사의 독립성과 수익 구조 개선을 위해 블록체인 기반 △콘텐츠 관리, △토큰화, △정보 진위 검증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선거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블록체인을 접목한 사례도 있다. 1848년 대선부터 투·개표 결과를 집계해 발표해온 미국 연합통신사(Associated Press·AP)는 최초로 이더리움(ETH)과 이오스(EOS) 블록체인에 공식 대선 결과를 게재했다. 블록체인에 투표 데이터에 대한 타임스탬프를 남겨 데이터 조작 및 변경 가능성을 막았다. 초반 투표 결과에 대한 허위 주장이나 가짜 뉴스로 아직 투표하지 않은 사람들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를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보츠(Voatz), 보템(Botem), 아고라보틀(Agora Bottle) 등 블록체인 솔루션은 몇몇 소규모 선거에서 신원 인증 및 투표 집계 여부 확인 등에 활용되기도 했다.
왜 블록체인인가
프랑스 싱크탱크 폰다폴(Fondapol)은 "블록체인은 거래 방식을 혁신하는 선두 기술이다. 신뢰할 수 있는 제3자 없이도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기 때문에 신속한 상호 작용과 비용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뢰이동(Who Can You Trust)의 저자 레이첼 보츠먼(Rachel Botsman)는 "블록체인은 상위 기관이 전담하고 있는 신뢰 기능을 분산시킬 수 있다"며 "신뢰가 네트워크, 시장, 플랫폼을 통해 흘러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블록체인과 신뢰의 뉴아키텍처 저자인 케빈 워바흐(Kevin Werbach) 와튼스쿨 교수는 "왜곡된 정보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 정보를 신뢰하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블록체인 기술이 사람과 기관에서 기술 플랫폼으로 신뢰 주체를 전환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워바흐 교수는 "블록체인을 통한 분산 신뢰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플랫폼을 강화하며 잘못된 정보와 관련 문제를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블록체인을 통한 분산 신뢰 아키텍처는 개인이 서로 신뢰하지 않아도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해 정보 조작이나 배포를 시스템적으로 대항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향후 몇 년 안에 구현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