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업종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관세 부과 조치로 타격을 입은 가운데, AI 칩 강자인 엔비디아(NVDA)를 비롯한 관련 종목들이 반등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혼조세를 보이며, 투자자들은 저점 매수와 추락하는 칼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해방의 날' 연설을 통해 새로운 대규모 관세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넓게는 글로벌 공급망, 좁게는 미국 기술기업 전반에 충격을 줬다.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SOX)는 이날 2.7% 상승 마감했지만, 여전히 변동성이 높은 흐름을 이어갔다. 엔비디아 역시 장중 등락을 반복한 끝에 3.5% 오른 97.6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시장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투자은행 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 스테이시 래스곤은 "엔비디아 주가는 마치 '트럼프 관세 쓰나미'의 직격탄을 맞은 듯 급락했지만, AI에 대한 장기적 수요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단기 저점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이 가격대는 중장기적으로 매력적인 진입 지점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모든 반도체 제품에 일괄 적용되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래스곤은 "미국 내 AI 서버용 제품의 약 60%가 멕시코에서 출하된다"며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내 규정을 충족하는 제품은 신규 관세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엔비디아는 멕시코 생산 시설 확장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미즈호 증권의 조던 클라인은 전반적인 시장 심리를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그는 "AI 중심의 반짝 효과를 제외하면 대부분 반도체 수요는 스마트폰, PC, 자동차 등의 실적 부진으로 인해 장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관세 조치는 시장이 기대하던 2025년 하반기 반도체 경기 회복의 희망을 거의 지워버렸다"고 비판했다.
도이체방크의 로스 세이모어 애널리스트는 "1분기 실적 시즌에서 세미컨덕터 종목들에 대한 뚜렷한 회복 신호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가격 목표를 일괄적으로 10% 하향 조정했다. 그는 엔비디아 목표가를 145달러에서 135달러로 내리고, '보유' 의견을 유지했다. 주요 하향 조정 종목에는 Arm, Broadcom, Marvell 등 업계 주요 플레이어들이 대거 포함됐다.
JP모건의 할란 서 애널리스트도 "반도체주는 이미 25~30%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향후 6개월간 추가 하락 가능성이 5~15% 더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그는 글로벌 거시지표 악화와 구조적인 수요 둔화를 합쳐 본다면 반도체 업종에 대한 보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강화 기조와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속에서 신중한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엔비디아와 같은 일부 핵심 종목에 대한 기대는 남아있지만, 반도체 섹터 전반을 놓고 볼 때 뚜렷한 방향성을 찾기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