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시장 활황기 동안 붐을 이룬 SPAC(기업인수목적회사) 합병 방식이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다. 당시 수십 개의 스타트업이 전통적 IPO 대신 SPAC을 통해 빠르게 상장했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저조한 성과로 투자자들의 실망을 샀다. 자율주행차, 유전자 검사, 수직 농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행된 SPAC 상장은 밸류에이션 하락과 함께 회의적인 시선을 불러일으켰고, 결과적으로 SPAC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켰다.
그러나 최근 몇 주간 암호화폐, 원자력, 자율주행 등 차세대 기술 분야를 중심으로 새로운 SPAC 합병 소식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실리콘밸리 기반의 자율주행 트럭 기업 코디악 로보틱스가 약 25억 달러(약 3조 6,000억 원)의 사전 기업가치로 합병 발표를 하며 다시 시장의 관심을 끌었다. 테더와 비트파이넥스가 공동 설립한 비트코인 보유 전문회사 트웬티원 캐피털도 36억 달러(약 5조 1,800억 원) 규모의 SPAC 합병을 추진 중이다. 이외에도 신세대 암 치료 기술을 보유한 베락사 바이오텍과 마이크로 모듈 원자로 개발사 테라 이노바툼 등이 각각 13억 달러(약 1조 8,700억 원), 4억 7,500만 달러(약 6,800억 원)의 밸류에이션으로 SPAC 합병을 예고했다.
이전과 달리 시장은 이제 보다 신중한 접근을 택하고 있다. SPAC 전문 분석 기업 SPAC인사이더의 크리스티 마빈 CEO는 “지금은 2021년의 투기적 열풍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며 “합리적인 딜 사이즈와 실행력 중심의 검증된 스폰서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SPAC을 주도하는 주체들은 과거 실적이 우수하고 금융 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곳들이며, 이는 투자자에게 일정 수준의 신뢰를 제공하고 있다.
대형 기술기업 공모가 줄어든 현재, 시장에선 SPAC이 초기 기업에 대한 몇 안 되는 투자의 기회를 제공하는 상황이다. 특히 기술 중심의 스타트업들이 IPO를 연기하는 가운데, SPAC 방식은 비교적 빠르고 유연한 상장 경로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클라르나와 스텁허브 등 주요 기업이 상장을 보류한 사례는 이 같은 흐름을 더욱 공고히 한다.
다만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가 연초 대비 15% 가까이 하락하며, 전반적인 투자심리가 위축된 상황이다. 미중 간 무역 갈등과 관세 불확실성은 주요 주가지수들을 흔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일부 기업들은 상장 계획을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결국 SPAC은 다시 돌아온 듯 보이지만, 그 행보는 과거와는 확연히 다르다. 투자자들의 실망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선, 보다 엄격한 검증과 지속 가능한 수익 모델이 필수적이다. SPAC이라는 수단 자체보다는 이를 사용하는 방식의 진화가 향후 시장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