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벤처펀딩 시장이 가파른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5년 1분기 아시아 스타트업에 투입된 총 벤처 자금은 130억 달러(약 18조 7,200억 원)로, 전년 동기 대비 40%, 직전 분기 대비 25% 급감했다. 이 수치는 2014년 4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글로벌과 북미 시장이 오픈AI(OpenAI)의 초대형 투자 유치에 힘입어 반등한 것과는 대조된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것은 후기 단계(레이트-스테이지) 투자다. 해당 시기에 체결된 대규모 테크 성장 투자건은 145건, 투자금액은 61억 달러(약 8조 7,800억 원)에 그쳤다. 이는 전년 대비 27%, 직전 분기보다 29% 감소한 수치다. 특히 회수 과정에서 수익 실현이 기대되는 후기 투자가 흔들리며 투자심리가 전반적으로 위축된 양상이다.
흥미로운 점은 AI 분야에 대한 투자 추세다. 전 세계가 인공지능에 집중하는 가운데, 아시아 지역 AI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오히려 축소됐다. 1분기 아시아 AI 기업이 유치한 자금은 18억 달러(약 2조 5,900억 원)로, 전체 투자금의 14% 수준이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해 절반 수준에 불과하며, 직전 분기 대비로도 23% 줄어든 수치다.
초기 단계 투자도 침체를 면치 못했다. 에인절 및 시드 투자 규모는 16억 달러(약 2조 3,000억 원)로 전년 대비 16%, 전 분기 대비 22% 감소했다. 거래 건수는 총 791건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48% 축소됐다. 시리즈 A, B에 해당하는 초기 단계 투자도 마찬가지로 53%나 감소해 시장 전반의 위험 회피 성향이 강화됐음을 시사한다.
국가별로는 중국의 부진이 전체 감소를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스타트업이 유치한 자금은 65억 달러(약 9조 3,600억 원)로, 전년 동기에는 125억 달러, 직전 분기에는 82억 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급감한 수준이다. 반면 이스라엘과 일본만이 소폭 상승했다. 이스라엘은 11억 달러(약 1조 5,800억 원), 일본은 6억 달러(약 8600억 원)를 유치하며 각각 1년 전보다 금액이 늘었지만, 직전 분기와 비교하면 두 나라 모두 여전히 감소세다.
이번 급감의 배경에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미중 관계 악화를 비롯한 글로벌 반도체 및 AI 기술에 대한 안보 우려가 뚜렷해지면서, 미국 투자자들의 아시아 이탈이 가속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중국 내 소비 위축과 더딘 경기 회복, 중동 지역의 지속적 긴장으로 이스라엘 시장이 영향을 받으면서 악재가 겹친 상황이다.
다만 업계는 2분기부터 반전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가 외부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오면서 시장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 회사는 저가형 LLM 모델로 주목을 받았으며, 알리바바, 중국국가투자공사, 국민사회보장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대형 자금 유치가 성사된다면 아시아 VC 시장의 분위기도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