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CBDC에 대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한은은 ‘2021년도 지급결제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한국은행이 진행하고 있는 CBDC 연구 내용을 함께 공개했다.
한은은 보고서를 통해 "현금 이용 감소, 민간 암호자산 출현, 금융포용 제고 등을 이유로 전 세계적으로 CBDC가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여러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CBDC 도입을 위한 연구와 개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지난해 8월부터 그라운드X와 함께 CBDC 모의실험 연구를 시작했다. 지난 1월에는 클라우드에 환경을 조성하고 CBDC 제조, 발행, 유통 등의 1단계 모의실험 완료 소식을 전했다.
한은은 "1단계 실험에서 한국은행시스템, 참가기관시스템, 이용자시스템, 원장관리시스템 등을 구성했으며 실험 결과 CBDC는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밝혔다.
한은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2단계 모의실험에서는 CBDC의 ▲오프라인 결제 ▲디지털자산 거래 ▲국가 간 송금 ▲새로운 IT기술의 CBDC 적용 가능성 검증을 실험하고 있다.
오프라인 결제와 관련해서는 송금인과 수취인의 전산기기(스마트폰, IC 카드 등)가 인터넷 통신망에 연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NFC(10cm 이내의 가까운 거리에서 무선 데이터를 송수신하는 기술) 기능을 통한 거래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현하고 있다. 또 블록체인이 활용된 다양한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예술품, 저작권 등을 CBDC로 거래할 수 있도록 관련 기능을 실험하고 있다.
이 외에도 서로 다른 메인넷을 연결해 토큰화된 자산의 소유권과 대금을 동시 결제하는 기능, 각국의 중개기관 간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양국의 CBDC를 상호 교환하는 방식의 외환 송금을 실험할 예정이다.
한은은 CBDC의 거래 처리 성능을 저하하지 않으면서 이용자의 사용처, 사용금액 등의 주요 민감정보를 안전하게 처리할 수 있는 개인정보보호 강화기술 활용방안을 점검하고 있으며, CBDC가 유통되는 메인넷이 다양한 지급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 확장 기술의 적용 가능성 역시 점검하고 있다.
한은은 CBDC 2단계 모의실험을 완료 이후 국내 금융기관을 비롯해 해외 중앙은행, 국제기구 등과의 협력을 통해 모의실험을 확대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윤성관 한은 전자금융부장은 "모의실험 내용이 포함된 종합보고서를 하반기에 발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CBDC 도입에 대한 의견을 내비쳤다. 이 총재는 지난달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지에서 "CBDC 도입 취지에 공감한다"라며 "하반기 모의실험을 확대하고 기술적 기반이 완벽히 마련되면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도입을 결정하겠다"고 답했다.
◇ 글로벌 CBDC 트렌드...'연계 프로젝트'
한은의 본격적인 CBDC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다른 국가와의 CBDC 연계 프로젝트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결제은행(BIS)은 CBDC의 국제 결제를 위한 플랫폼 시범운영을 완료했다. 싱가포르, 호주, 말레이시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이 참여한 국제 결제 CBDC 프로젝트 '프로젝트 던바'를 진행하고 있다.
BIS는 지난해 12월 '쥬라 프로젝트'를 통해 프랑스 중앙은행, 스위스 중앙은행 등 유럽의 주요 중앙은행들 간의 CBDC 연계 실험이 성공했다고 밝혔다.
실비 굴라르 프랑스 중앙은행 부총재는 "실험의 대상과 규모가 제한돼 있고 규제 샌드박스가 적용되지 않아 광범위한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외에도 지난해 4월부터 홍콩, 태국, 중국, 아랍에미리트의 중앙은행과 골드만삭스, HSBC 등 세계 주요 금융기관이 참여한 'mCBDC 브리지 프로젝트'도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했다. 참가국 중앙은행들은 CBDC 혹은 mCBDC(국가 간 거래 전용 CBDC)를 통해 다른 국가에서의 지급 거래를 수행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한은은 "전 세계 약 50여 지급결제시스템이 국가 간 연계를 구현하거나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BIS가 관련 논의를 착수하면서 관련 연구와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라며 "우리나라의 수출입 규모는 세계 8위 수준으로 성장한 만큼 글로벌 지급결제 환경 변화에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현재 CBDC 시스템 구축과 사용 실험을 넘어서 CBDC를 활용한 글로벌 지급결제 시스템 구축을 위한 연구와 실험에도 착수하겠다는 것이 한은 측의 설명이다.
윤 전자금융부장은 "CBDC가 국제 송금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여러 국가들이 CBDC에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BIS가 주도하고 있는 국제 CBDC 송금 모의실험 등에 한은도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을 비롯해 브라질, 이란, 인도, 캐나다 등이 CBDC 관련 연구에 착수했으며 조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CBDC 개발을 지시했다. 미국 아틀란틱 카운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전 세계 91개국의 중앙은행에서 CBDC가 발행됐거나 연구 및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