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자가 가상자산(암호화폐)을 강제집행 회피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어 가상자산 강제집행을 위한 실무적 논의가 활성화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류호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2021년 9월 30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가상자산 강제집행 논의의 현황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다.
강제집행은 국가 공권력을 행사해 사법상의 청구권을 강제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절차를 말한다. 판결절차가 권리의 확정에 의해 분쟁을 관념적으로 해결해주는 절차라면, 강제집행절차는 판결절차의 후속단계로 볼 수 있다. 요컨대 분쟁을 사실적·최종적으로 해결해주는 절차다.
금융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21년 5월 3일 기준 국내 가상자산 거래 규모는 22조 7000억 원에 이르며 투자자는 약 587만 명에 달한다. 시장규모는 중국, 미국에 이어 3위로 추정된다. 가상자산 거래소의 일일 거래대금 총액이 주식시장의 거래대금을 초과하며 가상자산은 실질적인 재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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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따라 범죄자의 가상자산에 대한 몰수와 체납자의 가상자산에 대한 강제징수가 진행되기도 했다. 정부는 2021년 7월 26일 '2021년 세법개정안'을 통해 고액·상습 세금체납자의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를 통한 재산은닉을 방지하고 강제로 징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바 있다.
앞서 2018년에도 이미 국가가 암호화폐를 재산으로 매겨 압수한 사례가 있다. 수원지검은 2017년 4월 불법 음란물사이트를 개설해 122만 명의 회원을 모집하고 불법 음란물 다운로드 대가로 운영자가 지급받은 비트코인을 압수했다. 대법원은 2018년 5월 30일 암호화폐를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으로 보고 이를 몰수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여지껏 채무자의 가상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은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18년 대법원은 가상자산의 몰수를 인정했고, 2021년 3월 검찰은 몰수한 가상자산을 매각해 국고에 귀속했다. 2021년 3월부터 국세청과 지방자치단체는 가상자산의 강제징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으며, 가상자산 강제징수의 법적 근거를 두는 '국세징수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류 조사관은 "가상자산 강제집행에 관한 논의는 이제 시작단계로, 학계를 중심으로 한 이론적 논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가상자산의 법적 성질을 동산이나 민사집행법 상 그 밖의 재산권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동산이나 채권의 강제집행 방법으로 가상자산을 집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가상자산이 동산이나 그 밖의 재산권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견해에서는 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며 "채무자 권리보호를 위해 학계와 국가기관이 함께 가상자산 강제집행을 위한 실무적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