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에 이야기하는 건 이겁니다. 블록체인 내세우지 마라.”
임명수 센터장은 지난 27일 토큰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블록체인지원센터의 근황을 들으러 찾아간 자리였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업에게 블록체인을 얘기하지 말라니. 아니, 그전에 이번 인터뷰가 어떻게 흘러갈지부터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센터에 대한 소개는 잠깐이었고, 그는 블록체인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블록체인 기업들의 멘토로 오랫동안 상담을 해오면서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것 같다. 이날 임 센터장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장밋빛 전망은 한 마디도 들려주지 않았다. 대신 블록체인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사업을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토큰포스트는 ‘스타트업 전도사’를 자처하는 임 센터장에게서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나아갈 길에 대해 들어봤다. 임 센터장은 명지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9년 1월부터 1997년 12월까지 IBK기업은행에서 근무했다. 이후 핀테크 관련 사업을 운영하고, 한국블록체인스타트업협회의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현재는 서울블록체인지원센터장과 함께 한국P2P금융투자자협회장을 맡고 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원래 뱅커(Banker)에요. 은행에서 20년 동안 근무했어요. 이후 IMF 때 은행을 나와서 테헤란로에서 쭉 금융 관련 사업을 했어요. 요즘으로 말하면 핀테크 사업이죠. 제가 금융 쪽에 강점을 가지고 있어서 금융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솔루션을 제공하고, 아이디어도 주다 보니 블록체인 쪽으로 들어왔어요. 당시 트렌드를 살펴보니 핀테크가 지나가고 블록체인이 트렌드가 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도와주는 일을 해야 되겠구나'라고 생각해서 여러 기업의 멘토 역할을 했죠.
Q. 블록체인 지원센터는 어떤 곳인가요?
블록체인 지원센터는 2019년 10월에 서울시에서 설립했어요, 당시 시에서 서울 서부를 금융 블록체인 특화 지구로 만들겠다고 해서 하나의 허브 부스가 생긴 거죠. 블록체인 스타트업을 입주 시켜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4인실, 8인실 두 종류가 있습니다. 입주사는 공간을 저렴한 비용으로 24시간 사용할 수 있고, 상담을 비롯해 사업화 준비를 지원해주죠. 또, IR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투자사와 연결해 투자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런 혜택 때문에 많은 기업이 들어오려고 합니다.
Q. 혹시 센터에 들어올 수 없는 블록체인 관련 사업이 있나요?
가장 우려가 되는 게 코인이죠. 물론 정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있어서 코인 발행을 했다고 하면 관계없는데, 그렇지 않고 코인 발행한 경우는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조금은 두고 봐요. 이를 제외한 블록체인 사업을 영위하는 곳은 모두 가능해요.
Q. 블록체인 스타트업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늘 얘기하는 것은 이거예요. '사용자가 호감을 느끼는 상품을 잡아라. 블록체인을 내세우지 마라.'
Q. 블록체인 기업이 블록체인을 내세우지 말라고요?
블록체인은 기존 상품을 고객들이 좀 더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한 방법으로 도입하는 것이니까요. 일단 비즈니스 모델을 먼저 만들고 그런 다음에 블록체인을 얘기하라는 거죠. 저는 B2C(Business to Consumer) 모델을 가장 선호해요. B2C 모델은 사용자 반응을 즉각 얻을 수 있고, 시장 규모도 커질 수 있고요. M&A 할 때도 좋거든요. 그런데 B2B(Business to Business) 모델 같은 경우에는 시장도 한정이 되어 있고 어려워요. 솔루션을 도입하는 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거든요. B2G(Business to Government)로 가면 더 어렵죠.
Q. 그럼 B2C에서 중요한 건 뭔가요?
고객의 생각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즉, 제품을 판매하기 위해서 개발자나 고객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고객 자신이 '난 뭘 원해'라고 말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죠. 사업가는 그 이전에 알아야 되는 거죠. 숨겨진 서비스를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 유저가 뭘 원하는지, 뭘 두려워하는지, 뭘 미심쩍어하는지, 그걸 다 해소 시켜줘야 한다는 거죠.
일례로 블록체인으로 기부 사업하겠다는 업체들이 많이 와요. 그럼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냥 기부 받는다고 해도 안 하는데, 블록체인으로 한다고 하면 누가 하냐? 사람들이 왜 기부를 안 할까를 생각해라. 너를 못 믿기 때문이다. 기부하는 사람이 거리낌 없이 기부할 수 있게 해봐.' 블록체인의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하는 거죠. 기부가 스마트 컨트랙트에 따라 이뤄지게 하는 겁니다. 거기서 수익 챙길 생각하지 말고요. 스마트 컨트랙트에 들어가는 비용만 받을 생각을 하라는 거죠. 이러한 사업 모델에 신뢰가 쌓이면 비즈니스가 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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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럼 수익은 뭘로 얻어야 합니까?
그래서 두 번째로 얘기하는 게 이겁니다. '하나의 비즈니스를 가지고 끝까지 성공할 생각을 하지 마라.' 식당을 예로 들면, 성공하는 사람은 처음에 기가 막히게 인테리어를 해놓아요. 음식도 싸게 해놓고. 그럼 손님이 바글바글해지잖아요. 그때 식당을 파는 거죠. 권리금도 받고. 반대로 안 되는 집은 장사하다가 손님이 떨어지면 메뉴를 늘리기 시작해요. 메뉴는 많은데 음식 맛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래도 안되면 가게를 내놓는데 그런 가게를 누가 제값에 사나요?
블록체인 비즈니스도 똑같아요. 처음 사업에 대한 그림을 그릴 때, M&A를 할지 끝까지 아이템을 가져갈지 선택해야 합니다. 고객은 당연히 중요한데, 문제는 고객 위에 있는 해당 비즈니스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찾아야 하죠. 그들의 눈에 띄어야 하고요. 그래서 사업이 어려운 겁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는 다 M&A모델이예요. 구글이 일 년에 사들이는 업체가 수백 개예요. 목돈을 주죠. 그럼 목돈을 가지고 또 사업을 만들고. 이게 선순환이거든요.
많은 업체가 자기 기술이 최고라고 하지만 6개월을 못 갑니다. 돈이 계속 들어가거든요. 돈 들어가는 것에 따라서 수익이 와야 하는데, 수익은 항상 뒤따르거든요. 고객을 100만 명 모으려면 100억 원이 들어간다고 했을 때, 해당 비용은 100만명 모으기 전에 들어가는 거예요. 100만 명 모은 다음에 100억 원을 조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Q. 블록체인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합니까?
블록체인 스타트업이나 일반 스타트업이나 똑같아요. 스타트업이 활성화 되려면 첫째는 스타트업 사업가들을 먼저 교육시켜야 합니다. 항상 본인 아이템이 최고인 줄 알거든요. 딱 거기까지죠. 저는 이걸 물어봅니다. ‘너 돈 있어?‘ 그래요, 돈 없으니까 사업하겠죠. 그런데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하다 보니 그걸 타내는 재미로 하는 사업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봤어요. 그렇게 하다 보면 모든 시간을 거기에 뺏겨요. 이래서 사업이 무슨 경쟁력이 생기겠냐고요. 내 비즈니스는 내 돈으로 성공한다는 그런 각오가 있어야 해요,
두 번째, 대출 쓰지 말아야 합니다. 대출 쓰면 신기한 일이 벌어져요. 벌어서 갚아야 하는데 못 갚아요. 사업은 성공률이 3% 미만입니다. 100명이 대출을 받으면 그중 97명은 대출을 못 갚아요. 그럼 사업이 잘돼서 매출이 잘 나오면 대출을 갚을 수 있을 것 같죠? 신기하게도 못 갚아요. 매출이 늘어난 만큼 거기에 계속 돈이 들어가거든요. 사업은 어쨌든 돈을 까먹는 거예요. 안 까먹고 가려면 팔아야죠.
그럼 대출 안 받고, R&D자금 안 받고 뭘해야 되냐고요? 몸으로 때워야죠. 토요일, 일요일 할 거 없이 일해야죠. 편하게 사업하려고 하니까 죽어도 안 되는 거예요. 스타트업 대표는 멱살 잡힐 각오를 하고 있어야 됩니다. 당장 욕 안먹고, 멱살 안 잡히려고 다들 대출받는 거죠. 이렇게 말해도 대부분 생각을 절대 안 바꾸죠. 그래서 스타트업을 하려는 CEO들의 생각을 바꿔줘야 해요.
Q. 정부가 블록체인 스타트업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던데요.
차라리 지원 안 해주는 게 낫습니다. 돈으로 지원해주는 것보다 장소라던지, 고정비용이 안 들어가게 지원해주는 게 좋죠. 이것도 길게 하지 말고, 성과가 보이면 조금 연장해주는 식으로. 성과가 안 보이면 과감히 내보내야 하고요. 다만, 특허 출원할 때 돈이 없으면 지원해줄 필요는 있죠. 그건 재산이 될 수 있으니까요.
일에는 선후(先後)가 있어요. 블록체인으로 뭘 하겠다고 생각하니까 길이 안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이면에는 코인이 있고요. 코인은 블록체인 생태계를 원활하게 해주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죠. 블록체인 생태계만 제대로 조성이 되면 코인 생태계도 저절로 만들어지게 되죠. 그런데 이걸 먼저 생각하니깐 안되는 거예요. 순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Q. 블록체인을 사업 모델이 아닌 기술로 봐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일례로 저는 디파이(DeFi)를 좋아하지 않아요. 디파이 기본 개념은 블록체인 P2P 거래란 말이에요. 그런데 국가별로 단위가 있단 말이죠. 우리나라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정부가 알고 있어야 대책을 세우고, 국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죠. 그런데 블록체인 P2P 거래가 이뤄지면 정부가 파악을 못 하잖아요. 결국, 근본적인 사상은 좋지만 국가, 뱅크라는 단위에서는 안 되는 거예요.
또, 암호화폐 예치하면 이자를 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 이자라는 것은 돈을 굴려서 증식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암호화폐는 지금 수요가 없는데 누구한테 빌려주냐는 말이죠. 그러다 보니 각종 잔머리를 쓰는 서비스들이 나오잖아요. 반면에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는 달라요. CBDC는 법정 화폐를 담보로 하잖아요. 통화량이 잡히죠. 그런 점에서 CBDC를 코인과 직접 대입하거나, CBDC가 나오기 때문에 코인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보는 건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Q. 디파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계셨던 것 같네요. 은행가적 관점에서 보고 계신건가요?
제가 뱅커이기도 하고,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이죠. 모든 산업의 귀결점은 금융이고, 블록체인도 하다 보니 금융으로 집중이 되잖아요. 그러니 다들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런데 앞으로 더 민감하게 볼 분야는 송금이에요. 해외송금이 블록체인에서 일어난다고 하면, 이건 세계 경제가 난리가 나게 되는 거예요. 국내에서도 해외송금 사업을 하겠다는 스타트업들이 있었는데 제가 말렸어요. 하지 말라고.
사실 금융은 규제 산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은행에 씌워진 명문화된 규제가 700여 가지라고 해요. 이런 규제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은행을 믿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은행이 스스로 규제를 풀어달라고 한다? 말이 안 되는 얘기예요. 저는 오히려 법적(legal) 이슈를 은행이 금감원보다 더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규제를 부수려고 하지 말고 타고 넘어가라.' 그래서 지금 타고 넘어간 게 최근에 나온 핀테크들이에요. 그리고 샌드박스를 만들어 규제를 잠시 넘어가는 거죠. 그런데 샌드박스는 뭐가 문제죠? 규제 유예 기간이 2년이란 말이에요, 길어야 4년. 4년 안에 법이 안 바뀌면 사업 접어야 됩니다. 대한민국에서 대부분 4년 안에 안 바뀝니다.
Q, 해외를 보면 페이스북이 디엠(구 리브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없겠습니까?
우리나라와는 달리 해외의 경우에는 금융소외자가 많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부분 통장을 가지고 있어요. 엄밀히 말해서 금융소외자는 없는 거죠. 다만, 절대 빈곤자들, 즉 압류될까 두려워 통장도 못 쓰는 사람들은 많아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블록체인으로 뭔가를 한다면 다른 얘기가 되겠죠. 차라리 그런 사람들을 돕기 위한 사업 모델이 우리나라에서 나왔으면 좋겠어요. 신용불량자가 무수히 많은데 이들을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만들어서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면 명분도 있고, 시장도 있고 말이죠. 그런데 다들 코인으로 자금조달할 생각만 하니 안타깝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