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영상 제작의 가장 큰 과제로 꼽히던 장면 간 ‘캐릭터 일관성’ 문제가 드디어 해소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AI 스타트업 런웨이(Runway)가 공개한 차세대 모델 'Gen-4'는 동일 인물과 배경을 다양한 시점과 각도에서도 일관되게 재현함으로써, AI 영상의 실용성과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런웨이는 구글(GOOGL), 엔비디아(NVDA), 세일즈포스(CRM) 등 빅테크의 투자를 등에 업고 AI 영상 기술 개발에 매진해온 기업이다. 새롭게 선보인 Gen-4 모델은 기존 프레임 단위 생성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특정 인물이나 사물의 형상을 ‘기억’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면 간 연결성을 유지하는 기능을 탑재했다. 이로써 기존 모델들이 보여줬던 얼굴 형태나 배경의 미세한 왜곡 현상이 크게 줄었으며, 실제 영화처럼 연속된 이야기 구조로 영상을 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Gen-4는 현재 유료 고객 및 기업 고객을 대상으로 우선 제공되며, 해상도 720p에서 5~10초 분량의 클립 생성이 가능하다. 향후에는 더욱 다양한 기능이 추가될 계획이다. 런웨이는 이번 기술을 입증하기 위해 AI만으로 제작한 단편 영상도 공개했다. ‘뉴욕은 동물원이다’는 실존 도시 배경에 사실적인 동물을 삽입했고, ‘더 리트리벌’은 탐험가들이 신비한 꽃을 찾는 여정을 묘사해 그 기술력을 과시했다.
Gen-4는 런웨이가 그간 축적해온 얼굴 모션 캡처 ‘Act-One’과 3차원 카메라 움직임 조작 도구 등 다양한 기능을 통합한 진일보된 버전으로 평가된다. 이는 단편 시각 효과를 넘어 현업 영화 제작 도구로의 변화를 암시한다. 런웨이는 단일 영상 생성 기술을 넘어서 실제 프로덕션이 요구하는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해결하려는 전략적 노선을 취하고 있다.
AI 영상 분야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런웨이는 현재 새 투자 라운드를 준비 중이며, 기업 가치는 40억 달러(약 5조 7,6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매출은 올해 3억 달러(약 4,300억 원) 수준까지 확대될 전망이며, 이를 위해 API 제공 및 헐리우드 스튜디오 라이온스게이트와의 특별 협약, AI 영상 전용 제작 펀드 설립 등 공격적인 사업 확대에 나섰다.
이러한 기술 발전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미국 애니메이션 길드가 실시한 2024년 조사에 따르면, AI를 도입한 영화 제작사 중 75%가 인력을 감축하거나 대체했으며, 2026년까지 약 10만 개의 미국 엔터테인먼트 관련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법적 이슈 또한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런웨이는 현재 여러 예술가들로부터 AI 모델 학습에 무단으로 저작물을 활용했다는 이유로 피소된 상태다. 회사 측은 '공정 이용' 원칙을 근거로 대응 중이나, 법원이 이 원칙을 AI 모델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해서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최근 오픈AI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를 생성해 논쟁을 불러일으킨 가운데, 런웨이는 예술 스타일 모방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논란은 더욱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기술이 가능성을 확장하는 만큼, 진짜 과제는 창의력과 콘텐츠의 목적이다. 누구나 단 몇 줄의 설명과 참고 이미지로 영상물을 생성할 수 있는 시대에 도달했지만, 이는 단순한 기술의 진보를 넘어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진정한 이야기를 풀어나갈 주체는 이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이다. AI 영상 제작의 미래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힘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