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이 금액과 상관 없이 모든 암호화폐 익명 결제를 금지할 수 있는 규제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라고 2022년 3월 26일(현지시간) 코인데스크가 보도했다.
해당 규제안은 기존 자금세탁방지(AML)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1000유로 미만 거래, 비수탁형 자체 호스팅(self-hosting) 월렛 간 거래에 대한 신원 확인을 요구하며, 조세 회피 위험이 있는 터키, 홍콩 등 특정 사법권과의 거래도 금지할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안에 대한 표결은 이르면 3월 31일 진행될 예정이다.
기존 자금세탁방지법은 1000유로(약 134만 원) 이상의 암호화폐 송금 시 수취인을 식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 의회는 이같은 하한선을 폐기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세 회피나 불법 활동을 위해 현금을 분할 거래하는 스머핑(smurfing, 현금 분할 거래) 위험성을 감안해, 액수와 상관 없이 모든 암호화폐 결제에 대한 신원조회를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규제안은 암호화폐 서비스 업체에 자금세탁 및 범죄 의심 송금 및 거래를 차단할 것을 지시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에서 터키, 러시아, 홍콩, 이란, 케이맨 제도 등 일부 국가로의 송금도 제한할 수 있다.
테러, 아동 학대 범죄 등에 암호화폐가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해당 규제안은 의회에서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고 알려졌다. 앞서, 3월 23일 프랑스 금융정보분석원인 TRACFIN의 기욤 발레뜨-발라(Guillaume Valette-Valla) 국장도 암호화폐의 불법 이용 사례를 언급하며 온라인을 통해 소액을 결제하는 이용자들의 신원정보까지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해당 규제안에 대해 폴 그레월(Paul Grewal) 코인베이스 최고법률책임자(CLO)는 공식 블로그를 통해 "부적절한 사실이 부적절한 규정을 만든다"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유럽위회가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디지털 자산이 범죄자들이 자금을 은닉하고 이동하는 주요 수단이라는 오해 △사법당국이 이같은 불법 자금 이동을 추적할 수 없다는 오해 △비수탁 자체 호스팅 월렛에 대한 개인정보수집 및 확인 요구가 사생활 침해가 아니라는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레월은 실상 불법 금융 활동의 주요 수단은 현금인데, 암호화폐는 현금보다 더 불리한 취급을 받고 있으며, 이는 전통 금융 업계에만 유리한 규제안이라고 비판했다. 법집행기관이 고급 분석 툴을 통해 암호화폐 전송을 얼마든지 추적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한 자체 호스팅 월렛에 대한 규제 적용은 거의 불가능할 뿐더러 유럽연합 데이터 보호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거래소 감시 강화, 자체 호스팅 월렛 억제는 혁신을 저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앞서 작업증명(PoW) 금지 조항을 포함한 암호화폐 규정안을 논의해 업계의 우려를 샀었다. 업계 반대로 해당 규제안은 한 차례 표결이 연기되기도 했다. 이후 의회에서 최종 부결돼 우려 조항이 빠진 상태로 규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암호화폐 소액 결제의 익명성을 금지하는 이번 규제안도 표결에 앞서 업계 우려와 의견을 반영해 방향을 틀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