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에서 기존 산업이 줄 수 없는 새로운 가치와 기회를 발견하고 학술적, 기술적 연구를 통해 산업 토대를 마련해가고 있는 한국블록체인학회장인 박수용 서강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만나 4차산업 디지털 전환 시대에 인프라 기술로 성장 중인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의견과 전망을 들어봤다.
블록체인 기술에 언제 어떤 계기로 관심을 갖게 되셨습니까?
소프트웨어 공학을 전공하고 2012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 정보통신산업진흥원에서 원장을 지냈습니다. 2015년에 다시 학교로 복귀했는데 워낙 기술이 빨리 변하잖아요. 원래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분석 설계 이론 쪽을 많이 했었는데 다시 쫓아가려니 만만치 않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새롭게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핀테크 부문을 들여다보다가 2015년 블록체인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블록체인과 관련해 연구할 만한 여러 가지 이슈들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과기정통부에서 대학 블록체인 연구 센터로 선정돼 지금까지 연구를 지속해오고 있어요. 컴퓨터 공학 측면에서 블록체인은 암호학과 분산기술의 융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초창기에는 합의 알고리즘에 굉장히 흥미를 느꼈기 때문에 저희 연구실도 주로 합의 알고리즘 개선에 집중했었죠. 사실 블록체인 자체를 요소 기술로 봤을 때 합의 알고리즘 외에도 개선해야 할 부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P2P 방식의 네트워크에 관련된 보안 이슈도 있고요. 스마트 컨트랙트의 프로그래밍 에러 문제에도 접근하고 있습니다.
연구소 초창기에는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블록체인을 응용한 무언가를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았기 때문에 프로토타입 개발 같은 응용 연구를 많이 했었죠. 지금은 기업들이 일반적인 개발을 많이 담당해 주고 있기 때문에 연구소는 이제 영지식증명 등의 기술 연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4차산업혁명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4차산업 전체 지형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갖는 의미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블록체인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세상에서 전체적인 인프라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응용 측면에서는 인공지능 기술이 강조되고 있는데요. 블록체인은 디지털 세상의 원칙, 룰, 거버닝(Governing) 이슈 등을 담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원 증명이나 디지털 생태계에서 이용자가 지켜야 할 거버닝 이슈 등을 블록체인으로 통제하는 것이죠. 블록체인은 베이스가 되고 그 위에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이 올라가는 구조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2017년 ICO 붐과 함께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장밋빛 전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일부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합니다. 블록체인 비즈니스가 활성화되려면 어떤 부분이 개선돼야 할까요?
저도 2017년 당시는 너무 섣부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기술이 덜 성숙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현실 세계에 접목시키려고 했던 시도들이 있었는데요. 아이디어 차원이나 이상적으로는 의미가 있더라도 2017년에 ICO를 진행한 기업 중에 실제 사회에 기여한 기업들은 잘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블록체인 기술이 사회에 접목되고 일상으로 들어오려면 우선 사회 제도나 법률 문제 같은 부분에서 많은 변화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회가 완전히 중앙화(Centralized) 돼 있는 상태에서 탈중앙화(Decentralized)를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도 여건이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바꿔가야 할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왜 블록체인이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하는데요. 블록체인 기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산업 분야는 어느 분야라고 생각하십니까?
블록체인은 금융 서비스, 분산신원인증(DID)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나 기타 선진국들은 이미 잘 정돈된 중앙화 시스템이 있는데, 굳이 왜 블록체인을 도입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신용카드 등 기존 금융권에서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많이 진행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인프라 정비가 안 된 개발도상국에서는 블록체인은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당장 기술을 적용할 여지가 굉장히 많지만 이런 시장은 규모가 작고 자금이 적다는 문제가 있죠. 반대로 우리나라처럼 발전된 중앙화 시스템을 가진 곳에서는 탈중앙화 효과가 뚜렷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저는 중앙화 시스템이나 서비스가 가진 문제에서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보고 있습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면 송금, 은행 서비스를 저렴하게 하고, 효율성도 개선할 수 있죠. ‘현재 시스템을 바꾸면서까지 블록체인을 도입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점진적으로 바꿔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신원인증이나 백신 여권 등은 사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이슈들이거든요. 때문에 블록체인 도입 필요성에 대한 인식은 점점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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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인과의 관계에서 암호화폐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암호화폐는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블록체인 응용 분야입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수 있지만 암호화폐야말로 가장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서비스죠. 저는 암호화폐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가장 혁신적이고 파급력이 큰 금융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 화폐는 경제에 굉장히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기존 질서와의 마찰이나 갈등은 불가피할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스며들기까지는 변화와 설득, 상호 간에 합의가 필요한 부분이죠.
암호화폐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저는 백그라운드 기술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술적 관점으로 보게 되는데요. 저는 모든 경제 시스템이 암호화폐를 기반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기존 법률, 경제 전문가분들은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계시죠. 사회 구조, 화폐가 가진 법적 의미, 수많은 경제적 의미를 봤을 때 반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런 부분들이 기술적으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는 여러 가지 특징들이 있습니다. 아날로그 상태에서 디지털로 전환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죠. 큰 덩어리를 작은 단위로 쉽게 쪼개거나 작은 조각들을 쉽게 뭉칠 수 있다는 점, 시공간 제약을 안 받는다는 점 등이죠.
또 다른 특징은 ‘다양화’입니다. 비슷한 예로 ‘이메일’을 말씀드릴 수 있어요. 우편이라는 시스템은 국가가 통제하고 국가 간에 연결된 시스템이었죠. 우편이 이메일로 디지털화되면서 상당히 다양화됐습니다. 요즘은 업무용 이메일, 개인 이메일 등 다양한 특성을 가진 여러 개의 이메일을 쓰고 있죠. 저는 화폐도 그렇다고 보는 거죠. 지금은 화폐를 국가가 통제하고 있는데 이것이 디지털화된다면 다양한 화폐가 등장할 것이고, 그 특징에 따라서 다양한 디지털 화폐를 쓰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죠.
디지털 화폐 규제 방향을 놓고 주요국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암호화폐 규제 접근 방식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우리나라 정부는 암호화폐를 골치 아픈 것, 위험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신기술이 나오고 새로운 시장이 형성됐을 때 정부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모든 정책과 법 제도를 만드는 데 기준이 되거든요. 조선시대에 외국 배가 나타났을 때 그 외국 배를 위협으로 보느냐, 새로운 문물을 전달해 주는 매개체로 보느냐에 따라 나라의 방향이 굉장히 달라지는 거잖아요. 어떤 시각을 갖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우리 정부의 시각은 결정된 것 같아요. 암호화폐를 위험한 것으로 보는 것이죠. 금융위원장님 발언도 있었고요. 그 위험하다는 시각을 기준으로 모든 정책이 만들어지는 거죠.
2017년 암호화폐 열풍이 불었을 때 박상기 법무장관은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그 앞서 미국 전 상공회의소 의장님은 한국에서 정책 토론회 중 새로운 것에 대한 정부 시각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라스베이거스를 예로 들었어요. 50년, 60년, 70년대까지도 라스베이거스는 도박과 마약의 도시였죠. 그 도박과 마약의 도시를 위험한 것이라고 울타리를 치고 금지하는 방식으로 운영했으면 라스베이거스는 지금까지 도박과 마약의 소굴로 남았을 거예요. 하지만 네바다 주는 이 도시를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 산업으로 본 거죠. 그래서 연방 정부와 협의해서 관련 규제를 만들고 위원회를 두고 양성화시켜서 지금의 라스베이거스를 만들었어요. 정부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다는 것이죠.
암호화폐 규제와 관련해 어떤 부분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 정부가 암호화폐를 단순히 골치 아픈 것, 과열된 것, 위험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여전히 암호화폐가 미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거든요. 투기에 대해서는 계속 경고하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암호화폐를 계속 발전시키는 정책들을 만들고 있어요. 예를 들면 미국은 은행, 투자 기관 등이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있게 해줬어요. 일반인들이 정식 기관을 통해서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거죠. 또 미국 시중은행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기도 했고요. 마치 라스베이거스를 키우듯이 조금씩 가능한 부분을 열어주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전혀 그런 모습이 없죠. 정식 투자기관에서 관련 상품을 못 만들고요. 정식 기관이 투자하기 시작하면 투자 분석가들이 자산을 분석하기 시작하고 양질의 보고서가 나오게 됩니다. 그럼 평가 기준이 만들어지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부분이 허용되지 않으니까 우수한 투자 분석가들이 암호화폐를 볼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비전문가들이 그런 역할을 하고 이를 듣고 투자하게 됩니다. 음성화시키니까 문제가 발생하고 투자를 못하게 막게 되는 것이죠. 시중은행들도 암호화폐와 관련된 계좌를 못 만들게 하고 있고요. 위험하다는 시각을 가지면 정책 측면에서 뒤쳐질 수 있게 되는 것이죠.
블록체인 기반 암호화폐 사업이 주는 본질적인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스타트업 같은 작은 기업들이 금융이라는 거대한 시장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거든요. 이전에는 자본금이 충분한 소수 금융기관만이 신뢰를 얻을 수 있었고, 대다수는 진입 장벽과 카르텔 때문에 금융 서비스에 진입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이제는 블록체인 기술 덕분에 스타트업이나 작은 기업들도 신뢰할 만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세대가 금융 시장에 들어올 길이 열린 것이 저는 굉장히 큰 의미라고 봅니다. 이를 막고 기존의 거대한 회사들만 참여하는 시장이 되게 할 것인지, 젊은 층이 금융 업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블록체인학회장으로서 앞으로 어떤 역할, 어떤 활동을 하고 싶으신가요?
블록체인학회는 산업적인 측면보다는 학문적인 연구 활동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컴퓨터 분야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서 블록체인을 연구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블록체인 학술대회를 통한 학술적인 교류도 활발히 할 계획입니다. 또 업력이 쌓여야 되는 부분이지만 관련 논문지 발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술진 흥재단에서 요구하는 기준들을 마련하고 학술 논문지를 발간하는 일이 학회가 직접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학계와 산업체 간의 교류, 산업체에 대한 학계 자문, 인력 양성 등을 꾸준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본 인터뷰는 <BBR: Blockchain Business Review> 8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