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적용을 80일 앞둔 가운데, 금융 당국, 은행 위원회, 거래소가 함께 의견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한국가상자산사업자연합회는 2021년 7월 7일 여의도 전경련 회관 컨퍼런스센터에서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 및 실명계좌 발급 개선방안 정책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정책 포럼은 특금법에 따라 2021년 9월 24일까지 가상자산사업자(암호화폐 거래소) 신고를 해야 하는 사업자들에게 전환점을 제시하고자 마련됐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개정된 특금법에 따라 금융정보분석원(FIU)에 사업자 신고를 마쳐야 한다. 신고를 위해서는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과 은행의 실명계좌 취득, 자금세탁방지(AML) 시스템 등을 갖춰야 한다.
민형배 의원은 새로운 화폐 경제 시장에 대한 정부 대응이 적절한지 함께 고민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대형 거래소 위주의 거래와 불투명한 상장 심사 등의 문제로 시장이 요동치다 보니 투자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고 있다”며 “암호화폐 시장의 제도적 안정화 방향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정책 포럼은 개회식과 주제 발표, 지정 토론 순으로 진행됐다.
"은행, 면책 요구할 만한 금융 리스크 없어"
첫 번째 발표에서는 김형중 고려대학교 특임교수가 '가상자산 사업자 실명계좌 발급 현황 및 개선방안'이라는 주제로 “은행이 금융 당국에 면책을 요구할 만한 리스크는 없다”라는 내용을 전달했다.
김 교수는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의 핵심적인 사항은 실명확인 계좌 발급이다. 발급 주도권을 은행이 쥐고 있는 것 같지만 특금법을 보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는 조건부 승인이 가능하다”며 “지금까지 이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최근 은행권이 면책을 요구한 바 있는 데 이는 은 위원장의 자금 세탁 이슈 발언과 금융 사고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면서 “법률에 따라 진행한다면 은행이 면책을 요구할 만한 수준의 리스크는 수준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앞서 은행권은 암호화폐 거래소 관련 면책 기준 요청을 금융당국에 전달했지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해당 요구를 단호히 거부했다. 은행들이 거래소에 대한 실명계좌 발급을 기피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4대 거래소를 제외한 나머지 거래소들은 무더기 폐쇄 위기에 놓일 수 있다.
김 교수는 거래소에서 금융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하나는 현금 보관과 관련해 발생하는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고객의 암호화폐를 보관하다가 잃는 사고이다.
김 교수는 "고객의 현금을 보관하는 문제는 실명확인 계좌를 통해 은행이 거래소 예치 현금을 관리하는 방안이 있다. 고객의 암호화폐 보관의 경우, 70%의 자산을 콜드 월렛이나 수탁 사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거래소에서 예상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일종의 예금자 보호법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보완할 수 있다"며 "언젠가는 거래소도 은행처럼 될 것이기 때문에 지금부터 준비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어 "예금자보호법에 준하는 법을 마련하거나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위험을 사전 평가하고 대비하는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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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회 차원의 자율 상장 규제 필요"
두 번째 발표를 맡은 김태림 법무법인 비전 변호사는 “상장 요건과 관련해 협회 차원의 자율 규제 방식과 소관 부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며 "암호화폐 규제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장치를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암호화폐 산업 관련 업권법이 없는 상황이다. 각 거래소마다 암호화폐 상장과 폐지, 유의종목지정, 유통 등을 자율적으로 운영하면서 시장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김 변호사는 "암호화폐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제도적으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며 "우리나라 암호화폐 시장은 유명인을 동원한 시장 왜곡과 마켓메이킹(MM)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존재하며 다단계 같은 기존 금융 범죄 형태와 결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정부와 관련 협회의 감시 기능이 미흡한 반면, 해외는 정부 주도 아래 암호화폐 시장을 적극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암호화폐를 교환 수단과 상품, 자산 등으로 분류하고 해당 특성에 따라 주무부처를 달리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연방법 차원에서 암호화폐 발행을 규제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재정청(FCA)에서 암호화폐를 거래용 토큰, 증권형 토큰, 유팉리티 토큰 등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거래용 토큰에는 자금세탁방지 규정을 적용하고, 증권형 토큰의 경우 투자 상품으로 분류했다.
일본은 암호화폐 교환업자에 대해 라이선스(면허)를 발급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암호화폐를 상장하려면 금융청의 사전 심사를 거쳐야 한다. 새로운 암호화폐 취급을 비롯한 변경사항은 금융 당국에 사전신고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암호화폐 교환업자가 규율을 위반할 시에는 일본가상자산거래업협회(JVCEA)가 주의나 경고, 회원 제명을 하는 등 업계 자율 규제도 병행한다.
김 변호사는 "시세조종행위 금지,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행위 금지, 중요사항에 관한 거짓 기재와 부정거래행위 금지, 시장질서 교란행위 금지 등에 대해서는 현행 자본시장법 상의 입법례를 참고해 암호화폐 시장에 도입해야 한다"며 "시장 혼탁 행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업권법 제정 시급…정도와 방향성 논의해야"
발표 이후에는 김형중 교수를 좌장으로 임요송 한국가상자산사업자연합 회장, 전은주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협력팀장, 박창옥 전국은행연합회 법률/전략/홍보 본부장, 도현수 (사)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가상자산 사업자 위원장, 강성후 (사)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사무총장이 참여하는 지정토론이 이어졌다.
금융위원회 소속으로 나온 전은주 금융정보분석원 기획협력팀장은 “투자자 보호와 관련해 특금법이 업권을 규율하는 법이 아니기에 이를 포괄적으로 담기 어렵다”며 “향후 국회 논의를 통해서 가상자산 업권 전체를 포괄하는 법안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가상자산사업 관련해서는 해외 제정 사례가 드물고 국제적으로 통일된 입장이 없다”며 “보호를 강조하면 시장이 위축되고 시장의 진입요건을 완화하면 보호가 약해진다. 규제 정도와 방향성은 국회와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은행연합회 "가상자산사업자 평가 방안 공개 예정"
박창옥 전국은행연합회 본부장은 "외부의 많은 요구에 따라 이번 주, 혹은 다음 주에 은행연합회의 가상자산사업자 평가 방안 공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는 전국은행연합회가 2021년 4월 각 은행에 배포한 가상자산사업자 평가 방안을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할 예정이다. 거래소 입장에서는 실명계좌 발급 심사 통과를 위해 충족해야 할 주요 요건이지만 은행연합회의 평가 기준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된 바 없었다. 시험 범위와 분야도 모른 채 시험을 치러야 했던 꼴이다.
박 본부장은 ▲은행연합회와 은행별 평가 지침의 차이로 인한 혼선 및 이의 제기 발생 우려 ▲평가 기준이 공개될 경우 거래소가 해당 기준 충족에만 집중함으로써 잠재적 위험도가 실제보다 낮게 평가될 위험 등으로 인해 그동안 평가 방안 공개를 꺼렸다고 밝혔다.
다만, "평가 방안에 대한 불확실한 오해를 해소하고 신고 기한이 9월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거래소 존폐에 따른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뒤늦게 공개를 결정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