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정부가 오는 2025년 10월 푸켓에서 암호화폐 샌드박스를 도입한다. Tiger Research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디지털 자산 결제 시스템의 실효성을 검증하고, 향후 금융 정책의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한 실험적 프로젝트다. 정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효율적인 세금 징수, 통화 정책 영향 평가, 디지털 자산 활용 방안 등을 모색할 계획이다.
푸켓 샌드박스 추진 배경
태국은 한때 아시아의 암호화폐 허브로 주목받았으나 최근 몇 년간 시장 침체와 규제 불확실성으로 인해 경쟁력이 약화되었다. 이에 태국 정부는 푸켓을 디지털 자산 결제 실험지로 선정하고, 글로벌 디지털 금융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본격적인 실험에 나섰다.
이번 프로젝트는 태국 전 총리 탁신 친나왓(Thaksin Shinawatra)의 제안에서 비롯됐다. 그는 2024년 12월 푸아타이당 세미나에서 푸켓과 후아힌 등 주요 관광 도시에 암호화폐 샌드박스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후 태국 재무부가 적극적으로 검토를 진행했으며, 2025년 1월 부총리 겸 재무부 장관이 푸켓 내 암호화폐 결제 시범 사업이 기존 법적 프레임워크 내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암호화폐 결제와 스테이블코인 도입 전망
탁신 전 총리와 태국 재무부 장관은 비트코인 등의 암호화폐 활용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태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중앙은행의 규제 조율이 핵심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현재 태국 중앙은행은 암호화폐를 지급결제 수단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가격 변동성과 대량 결제 처리의 한계를 이유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이 떠오르고 있다. 태국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비트컵(Bitkub)은 중앙은행의 프로그래머블 페이먼트 샌드박스에 참여하고 있으며, 자체 체인인 ‘비트컵 체인(Bitkub Chain)’에서 바트화 스테이블코인을 운영 중이다. 비트컵은 8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며 높은 접근성을 갖추고 있어 신속한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정부 발행 스테이블코인도 검토되고 있다. 태국 재무부는 2025년 10월까지 100억 바트 규모의 정부 채권 기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계획 중이며, 금융기관과 리테일 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시스템 구축과 적용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단기적인 도입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푸켓의 관광산업과 암호화폐 결제
푸켓은 연간 1,0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관광지로, 기술 친화적인 디지털 노마드들이 선호하는 지역이다. 태국은 GDP에서 관광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만큼,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왔다. 2024년에는 무비자 입국 대상국을 57개국에서 93개국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그러나 외국인의 경제 활동을 정밀하게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해외 소득의 원천을 추적하고 과세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특히 장기 거주 외국인의 부동산 거래 및 자금 흐름을 관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에 따라 태국 정부는 디지털 자산을 활용해 불투명한 자금 흐름을 추적하고, 과세 및 규제 체계를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번 샌드박스를 통해 이러한 모델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실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푸켓 암호화폐 샌드박스 이후 전망
푸켓 샌드박스가 성공적으로 평가될 경우, 태국의 금융 혁신 전략이 구체화되고 암호화폐 결제 시스템이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태국은 2022년 거래소와 협력해 디지털 자산을 즉시 법정화폐로 전환하는 결제 시스템을 구축한 경험이 있으며, 향후 암호화폐 결제가 공식적으로 도입될 경우 기존 인프라를 활용해 빠르게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2024년 11월 시암 상업은행(Siam Commercial Bank, SCB)이 주도한 암호화폐 결제 샌드박스 실험에서는 가맹점들이 암호화폐 결제를 즉시 법정화폐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시험한 바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푸켓 샌드박스는 태국의 암호화폐 결제 확대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디지털 결제 혁신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푸켓 암호화폐 샌드박스는 단순한 기술 실험을 넘어, 디지털 자산을 활용한 결제 혁신을 통해 관광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적 시도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겪는 결제 불편을 해소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환전 과정의 번거로움과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고, 보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결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주요 목표다.
태국 정부는 이번 실험을 통해 디지털 자산 기반 거래 및 소비 패턴을 분석하고, 보다 정교한 통화 정책을 수립할 기회를 얻게 된다. 또한, 이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규제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고 웹3 기술 확산 가능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향후 전망
푸켓 암호화폐 샌드박스는 태국이 디지털 자산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아세안(ASEAN) 지역 내 금융 혁신을 주도하기 위한 전략적 실험이다. 특히, 미국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국제 지급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태국 역시 자체적인 디지털 자산 정책을 통해 금융 경쟁력을 강화하고 글로벌 금융 환경 변화에 대응할 필요가 있다.
패통탄 친나왓(Paetongtarn Shinawatra) 현 총리는 친(親)가상자산 성향이 강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막내딸로, 디지털 금융 실험 확대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샌드박스 역시 이러한 정책 기조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푸켓에서 시작된 이 실험이 태국 경제 전반으로 확산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디지털 자산을 중심으로 변화하는 국제 금융 질서 속에서 태국의 입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공 여부는 기업과 정책 입안자의 협력, 명확한 규제 환경 조성, 그리고 실행력에 달려 있으며, 실험 결과에 따라 디지털 자산 활용 가능성과 정책적 방향이 더욱 구체화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