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와인 마을에 위치한 비밀 벙커에서 독일인들의 현금 선호와 디지털 통화에 대한 우려가 여전히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17일(현지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프랑크푸르트에서 약 100km 떨어진 와인 마을에 위치한 숨겨진 벙커가 수십 년간 독일의 비밀로 유지돼왔다. 1962년에 지어진 이 거대한 구조물은 서독의 냉전 적국들이 위조 지폐를 시장에 유통시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유발하려 할 경우를 대비해 대체 도이치마르크를 보관했다. 결국 이 예비 통화는 필요하지 않아 1988년에 폐기됐다. 그러나 독일인들의 자금 안전에 대한 우려는 지속되고 있다. 디지털 유로화 도입 결정까지 1년여를 남겨둔 시점에서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 국민의 절반 정도가 디지털 유로화 사용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했다.
독일인들의 가장 큰 우려는 프라이버시다. 독일인들은 유로존 주요 회원국 중 이 점에서 가장 불안해하고 있다. 현금에 대한 지속적인 선호는 이러한 견해를 반영한다. 요아힘 나겔(Joachim Nagel) 독일연방은행 총재는 이를 "신성하다"고 표현했다.
이달 초 코헴(Cochem)에 있는 벙커를 방문한 결과 이러한 정서가 확인됐다. 최근에야 이 시설의 존재를 알게 된 현지 연금 수령자들은 디지털 유로화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한 은행 전직 직원은 카드와 온라인 결제로 이미 지출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은 디지털 통화가 독일을 기술에 위험할 정도로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고 봤다.
2010년 도이체포스트(Deutsche Post)에서 은퇴하고 이번 견학을 주선한 한스 하인리히 클뢰펠(Hans Heinrich Kloeppel)은 "아마도 습관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현금 사용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특징적인 점은 클뢰펠을 제외하고 아무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디지털 유로화를 개발 중이며 2025년 말 최종 결정을 내릴 유럽중앙은행(ECB)은 이에 대한 우려를 인식하고 있다.
프라이버시와 보안을 위해 ECB는 데이터 암호화와 해싱 같은 기술을 사용해 거래와 특정 사용자 간 직접적인 연결을 방지할 계획이다. 또한 오프라인 사용을 위해 모바일폰뿐만 아니라 카드를 통해서도 이용할 수 있게 할 예정이다.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시민들에게도 접근하고 망명 신청자를 포함한 취약 계층에게도 참여 기회를 제공하려 노력할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Christine Lagarde) ECB 총재는 10월 프로젝트 준비 단계가 시작되면서 X에서 "우리는 디지털 유로화를 물리적 현금과 공존하며 모든 디지털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형태의 현금으로 구상하고 있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라가르드 총재가 설득해야 할 대상은 카드 결제가 꾸준히 늘고 있는 독일인들뿐만이 아니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몰타 등의 국가들은 현금에 대한 선호가 더 강하다. 반면 네덜란드 같은 인근 유로존 회원국들은 현금을 거의 완전히 기피하고 디지털 솔루션을 선호한다.
게다가 독일의 젊은층은 프라이버시에 대해 그렇게 예민하지 않다. 한 연구에 따르면 65세 이상의 3분의 1이 서비스 품질 향상을 위해서라도 온라인상에서 개인정보 제공을 거부하는 반면, 18~24세의 경우 10%에 불과했다.
독일연방은행 총재인 나겔은 더 나이 든 독일인들도 여전히 디지털 유로화의 장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나겔 총재는 7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G20(G20) 정상회의에서 "현금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노년층을 설득한다"고 말했다. 그는 "92세인 어머니를 설득할 순 없지만, 내가 곧 60대가 되면 속하게 될 노년층은 요즘 디지털에 너무나 능숙해서 솔직히 더 이상 그들에게 다가갈 필요가 없다. 그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한다"고 덧붙였다.
한때 150억 대체 도이치마르크를 보관했던 벙커에서 견학 주최자 클뢰펠은 디지털 유로화에 대한 동료들의 의구심을 공유하면서도 희망의 빛을 보였다.
그는 "새로운 것을 피할 순 없다"며 "이런 새로운 발전에 적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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