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일하고 허술한 원칙은 산업의 합법성을 흔들었다. 혹시나 했던 업계의 불건전 관행이 사법적 문제제기 속에 역시나로 판명될 때마다 불량 산업이라는 인식은 더욱 악화됐다. 하지만 법적 책임 여부를 다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가상자산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규정이 없어 처벌 근거가 없었고 관련 적발 및 제재 경험과 역량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는 서비스 초기에 실시한 자전거래에 대해 5년여 간 법적 공방을 벌이다가 최근에야 마무리를 지었다. 2018년 12월 검찰은 두나무 임직원 3명을 사전자기록등위작·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 상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 주장은 2017년 9월부터 11월까지 업비트가 허위 계정 ‘ID 8’을 만들고 계정에 1220억원이 있는 것처럼 전산을 조작해 가장매매(4조2670억원)와 허수주문(254조5383억원)으로 거래량을 부풀리고 1491억7700만원의 부당이득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업비트는 자전거래 사실을 인정했지만 투자자를 기망해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사업 활성화를 위해 정상 범위 안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추정치는 유동성 공급 특성을 고려하지 않아 잘못 산정된 금액이라면서 50억원을 실제 예치하고 암호화폐 당 2억~3억원 수준의 유동성을 공급했다고 해명했다.
거래소는 법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공정성과 투명성, 투자자 보호 조치를 취했음을 피력했다. 매도·매수호가의 큰 가격 차이와 급격한 가격 변동으로 투자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기에 거래소의 실제 보유 자산을 이용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시장을 안정화하려는 의도였다고 강조했다.
업비트는 2020년 1월 1심, 2022년 12월 2심, 2023년 대법원 판결까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재판부는 잔액 범위 안에서 유동성 공급을 진행했다는 업비트의 주장을 인정하고 특정 계정을 통해 매매 주문과 취소를 반복한 사실이 있지만 이를 통해 인위적인 가격 형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수집 증거의 부족과 증거 수집 절차의 위법성, 당시 암호화폐 거래소를 규율하는 법이 없었다는 점도 무죄 판결에 힘을 실었다.
공범이 된 가상자산 거래소? 상장비리와 시세조작
가상자산 시장의 진입 관문에도 문제가 있었다. 거래소 임직원이 상장 대가로 발행재단이나 브로커에게 금품을 받고 상장 후 시세조작을 통해 얻은 불법 이익을 공유한 상장 비리 문제였다. 이는 공정성, 투명성, 정당성이 요구되는 상장 절차와 검증 과정을 지위와 권한, 친분과 입김으로 무력화하고 사익 추구의 도구로 전락시켰다.
지난해 코인원 전 상장 총괄이사 전씨와 코인원 전 상장팀장 김씨는 2020년부터 2년여 간 수십억원의 뒷돈을 받아 가상자산 상장을 알선한 행위에 대해 배임수재,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코인·현금을 주고 상장을 청탁한 브로커 황씨와 고씨는 배임증재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자전거래, 시세조작 사실을 알면서도 공동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범죄 행위에 적극 가담했다”며 모든 피고에 징역·추징명령 등의 실형을 선고했다. 거래소의 시세조작 방임이 신뢰 상실과 이용자 이탈이라는 손실이 될 수 있었다면서 거래소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 역시 성립한다고 봤다.
최근에는 빗썸 고위 임직원과 발행재단의 상장 비리가 논란이 됐다. 이상준 전 빗썸홀딩스 대표와 사업가 강종현씨, 프로골퍼 안성현은 가상자산 상장을 청탁하고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이 전 대표와 안씨는 부실 코인 2종에 대한 상장 청탁을 받아 30억원의 현금과 고가의 명품을 수수한 것에 대해 배임수재 혐의로 기소됐다. 안씨는 강씨에게 ‘이 전 대표가 청탁금을 재촉한다’고 속여 20억원을 편취한 것에 대한 특경법 상 사기 혐의도 적용됐다.
부실·불량 가상자산의 불법·편법 상장의 목적은 언제나 기형적인 정보 불균형 상태에서 투자자를 기망·착취하고 시장을 어지럽히는 것이었다.
검찰은 상장 청탁을 위해 수십억원의 뇌물을 준 강씨와 발행재단 관계자 송씨가 “빗썸 상장 후 마켓메이킹 업자를 통해 자전거래로 거래량을 부풀리고 가격을 폭등시켜 투자자를 유인한 뒤 물량을 대량 처분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수백억원의 차익을 얻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명백한 불법 행위를 다투는 재판에서도 “대량 자전거래의 기준,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에 관련 범죄를 처벌하는 건 죄형법주의에 어긋난다”면서 사건을 무마·축소하려는 시도가 계속됐다.
한편, 사법부는 “가상자산 시장이 전통 금융시장에 비견할 정도로 급성장한 만큼 거래소의 상장 업무는 공공 영역에 준하는 철저한 감시관리를 수행해야 하며 그 임직원은 사기업 직원이 부담하는 수준을 넘는 도덕적 의무, 준법정신, 공정성, 청렴성을 가져야 한다”면서 관련 비리와 위반 행위를 엄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상장 비리 사건에 대해 검찰은 “미국도 가상자산 기본법이 없지만 통신사기로 의율해 기소한 사례가 있다”면서 “가상자산법이 없어서 자전거래, 시세조종을 처벌할 수 없다는 주장은 기본법을 무시하는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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