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산업이 허용한 불건전 관행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기도 했다. 코인원 전 임직원이 뒷돈을 받고 상장을 알선한 코인 중에는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피카코인’, 2023년 4월 강남 납치살해사건의 발단이 된 코인 ‘퓨리에버’ 등이 있다. 지난 5년간 가상자산 범죄로 인한 피해 규모는 5조3000억원을 넘었고, 이러한 범죄 한켠에는 항상 자전거래, 시세조작 같은 불건전 관행의 역할이 있었다.
서울남부지검은 “영세하고 부채비율이 높은 퓨리에버 발행 재단이 코인을 단독 상장한 직후 시세를 조작했고, 이로 인해 발생한 투자자 피해가 살인이라는 비극적 사건에 이르게 됐다”며 사건 전말을 설명했다.
‘청담동 주식 부자’로 유명세를 탔다가 불법 주식거래로 실형을 살았던 이희진·이희문 형제는 검증 없는 코인 시장에서 다시 투자 사기를 벌였다. 2020년 3월부터 2022년 9월까지 피카코인, 고머니, 트리클 등을 상장했으며, 허위·과장 홍보와 1800만번 이상의 자전거래, 가격 부양을 통해 매수를 부추긴 뒤 물량을 팔아 900억원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2023년 9월 특경법 상의 배임·사기, 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업비트에 허위 자료를 제출해 거래소의 상장 심사를 방해한 것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도 적용됐다.
이씨 형제는 거래소의 요구로 상장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최소한의 유동성을 공급한 것이며 자전거래에 대해 충분히 고지했기 때문에 투자자들 역시 자전거래를 인지하고 있었다며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감독과 처벌 없는 사각지대…투자자는 ‘방치’
악의적인 이들이 노골적인 불법 행위를 벌이며 대담하게 가상자산 시장을 활보할 수 있었던 건 시장을 감독관리하는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측가능하고 일관적인 규제의 미비는 합법적인 사업 운영을 원하는 이들에게도 막막함과 불안감을 주었다. 불공정거래행위가 난무하는 시장, 투자자 보호의 사각지대에서 참여자는 법적 안전 장치와 보호 장치 없이 방치됐다.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은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인위적인 시세를 형성하고 매매가 성황을 이루는 것처럼 잘못 알게 하며 타인이 그릇된 판단을 하게 하는 자전거래와 내부자 거래, 시세조작을 명백한 위법 행위로 단죄할 수 있다.
가상자산 시장의 범죄는 자본·금융 시장의 범죄와 닮아 있고 개인과 기업, 시장 전체에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시장법은 금융투자상품, 투자계약증권에만 적용 가능하기 때문에 가상자산 사건에 해당 법률을 대입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를 제기하려면 ‘가상자산의 증권성’부터 가려야 하는 더 큰 산을 만나게 된다. 가상자산의 증권성 여부는 미국에서도 몇 년째 결론이 나지 않은 법적 쟁점이다.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사법적 개입이 이뤄지고 규제 부재에 대한 문제 제기와 입법 요구가 나온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가상자산 시장 내 불법 행위를 정확히 겨눌 수 있는 법률과 규제의 확립은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있다.
공백을 메우기 위해 검찰은 가상자산 거래소의 전산 시스템 조작에 대해 ‘사전산기록위작 혐의’, 이용자를 기망해 이익을 취한 자전거래, 시세조작 등에 ‘특경법 상 사기 혐의’, 거래소에 대한 ‘업무방해 혐의’ 등을 적용하고 있다. 대안 법률을 통한 우회 접근이기 때문에 그만큼 처벌 확률이 떨어진다.
가상자산 사건 중 유일하게 테라·루나 사태와 관련해 자본시장법 적용을 시도하고 있다. 실물자산과 연결성을 가진 루나의 증권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해 관련 인물들에게 자본시장법(사기적부정거래) 위반 혐의와 특경법 상의 사기·배임 혐의,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 등을 제기했다.
2022년 5월 알고리즘을 통해 연결된 테라와 루나는 며칠 만에 99.99% 급락했고 400억 달러(53조원)의 생태계가 증발했다. 자전거래로 인한 유동성 거품은 생태계 부실의 여러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지난 2월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관련해 빗썸(3000억원), 코인원(4000억원), 고팍스(1000억원) 등에서 8000억원대 자전거래와 시세·거래량 조작 사실이 확인됐다.
우리나라 사법당국의 관련 처벌 가능성과 수위에 대해 투자자들은 못미더운 기색을 보이고 있다. 얼마 전 몬테네그로 법원이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을 때 국내 피해자 모임은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들이 무죄나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을 우려하면서 100년형까지 가능한 미국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성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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