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블코인은 암호화폐와 전통 화폐의 장점을 결합한 혁신적인 수단으로 주목받아 왔다. 디지털 자산의 빠르고 국경 없는 이동성과 법정화폐의 안정성을 결합하려는 목적에서 기획된 만큼, 안정성은 핵심 가치로 자리 잡는다. 이를 위한 조건은 명확하다. 신뢰할 수 있는 담보, 투명한 정보 공개, 그리고 확고한 페깅 유지 체계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의 혼란은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이라는 기초 개념마저 흔들고 있다. 2022년 테라USD(UST)를 포함해 다수의 스테이블코인이 담보 부족, 불투명한 회계, 알고리즘 기반 구조의 붕괴 등으로 인해 시세가 급락했고, 이에 따라 수십억 달러(수조 원)의 시장 가치가 증발했다. 특히 아이언파이낸스(TITAN)의 붕괴 사례는 과도한 레버리지 구조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문제의 본질은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내재적 구조적 한계에 있다. 투자자들은 담보 자산의 존재 여부를 직접 검증할 방법이 부족하고, 제한된 감사 결과에만 의존해야 한다. 일부 발행사는 ‘완전 담보’ 혹은 ‘감사 완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담보 비율이나 자산 운용 구조에 있어 일관된 정보 공개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시장 신뢰가 쉽게 훼손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자 일부 프로젝트는 금과 같은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형태의 스테이블코인을 제시하고 있다. 금은 수천 년간 전쟁, 금융위기, 팬데믹을 거치면서도 가치를 보존해온 대표적 자산이다. 2020년 팬데믹 당시 금값이 25% 상승했다는 점은 투자자들이 여전히 금을 안전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1913년 이후 미국 달러가 구매력을 96.8%나 상실한 반면, 금은 구매력을 유지해 온 점에서 금이 디지털 시대에도 안정성의 기준이 될 수 있음이 분명하다.
블록체인 기술은 금의 유동성, 보관 비용, 이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 주목받고 있다. 실제 금이 규제된 금고에 보관되고 이를 블록체인 기반으로 토큰화함으로써, 투자자는 디지털 토큰을 통해 언제든 실물 금 보유를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거래는 스마트컨트랙트를 통해 기록되며, 담보 자산 현황도 실시간 검증 가능하다. 이는 가시성과 추적 가능성이 탁월한 스테이블코인 구조로, 기존의 불투명한 발행 모델과는 분명한 차이를 지닌다.
이와 같은 금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변동성에 취약한 암호화폐의 단점을 보완하고, 인플레이션 위험이 존재하는 법정화폐의 한계도 극복한다. 이 모델이 추구하는 안정성은 단순히 수치상의 고정 환율이 아니라, 실물 자산의 희소성과 기술 기반의 투명성이 결합된 구조다.
스테이블코인의 진정한 과제는 신뢰를 확보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발행사의 명성보다 더 본질적인 요소—독립적인 담보 검증, 실시간 감사, 규제에 따른 이행 구조—가 중요하다. 최근 고안된 하이브리드 모델은 정부와 민간이 역할을 분리해 각각 담보의 신뢰성과 운영 효율성을 담당하는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공공과 민간의 협력이 가능해질 경우,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는 다른 길을 걷는 탈중앙적이면서도 규제 친화적인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다.
앞으로의 디지털 금융 생태계는 마케팅 문구가 아닌, 명확한 메커니즘과 검증 가능한 담보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금의 역사적 안정성이 결합된 구조는 스테이블코인이 애초에 약속했던 안정성을 실행 가능한 현실로 바꿔줄 수 있다. 결과적으로 투자자들은 더 이상 ‘믿어야만 하는’ 자산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자산을 원한다. 실물가치에 기반한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는 진정한 대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