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자산을 두고 규제당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디지털자산 시장이 성장하면서 투자자 피해도 늘어났지만, 이를 보호하기 위한 법적 테두리가 없기 때문이다. '초국경성'이라는 디지털자산 특성상 국제공조가 필요하다는 점도 어려움으로 꼽힌다.
5일 법무법인 바른이 개최한 '디지털자산 규제동향 및 법적 쟁점' 웨비나에선 디지털자산 규제 동향과 전망을 살피는 시간이 마련됐다. 이날 세미나에선 디지털자산이 '증권'과 '비증권'에 따라 각기 다른 법으로 규제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 가상자산 범위·사업 요건 달라질 수 있어...가상자산 사업자 유의해야
이날 '디지털자산 규제 동향점검'을 주제로 발표에 나선 한서희 변호사는 "증권과 비증권 분류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가 취급할 수 있는 가상자산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변호사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가상자산 포괄 규제안인 '미카(MICAR-Market In Crypto Asset Regulation)'에는 가상자산 발행자의 진입규제(라이선스)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정 요건을 갖춘 발행인이 가상자산 백서를 작성하고 권한당국에 통지만 하면 가상자산을 발행할 수 있다.
한 변호사는 "미카에는 발행인에 대한 별도의 인가제도가 없다"며 "유틸리티 토큰, 스테이블코인 외의 일반 가상자산은 발행 인가가 필요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달 7일(현지시간) 신시아 루미스 공화당 상원의원, 키어스틴 질리브랜드 민주당 상원의원이 '책임있는 금융혁신법안(Responsible Financial Innovation Act)'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기업에 대한 부채 또는 지분 ▲법인의 청산 권리 ▲이자 또는 배당금을 받을 수 있는 권리 ▲제3자의 노력에서 파생된 수익 지분 등의 권리가 없는 가상자산을 증권이 아닌 상품(Commodity)으로 분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변호사는 "해당 법안은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제시하는 증권 범위에 제한을 두고자 하는 시도"라며 "사업자가 투자자에게 명시적인 금전 지급을 약속하지 않는 한 증권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또한 가상자산을 증권과 비증권으로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가상자산으로 규제를 할 부분과 금융관련 법으로 규제할 부분이 나눠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알고리즘 스테블코인은 어려울 것...'자기자본요건'도 추가될 수 있어
한 변호사는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도 강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임있는 금융혁신법안'의 경우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상환에 대한 보증'을 명시하고 있다. 발행사에게 담보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허가는 어렵다는 설명이다.
한 변호사는 "상환에 대한 보증이 존재해야 하는 만큼,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은 가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가상자산 사업자의 조건이 추가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변호사는 "스테이블 코인과 관련해 대부분의 규제들이 준비금을 적립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미카에도 자기자본 요건이 신설됐다"며 "한국 또한 건전성 규제를 목적으로 자기자본 제도가 도입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증권'은 자본시장법, '비증권'은 디지털자산시장법으로 규제된다
한 변호사에 이어 주제발표에 나선 최영노 변호사는 디지털자산이 증권형, 비증권형에 따라 다른 규제를 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증권형 디지털자산은 자본시장법에 따라 규제를 받을 예정이다. 다만 기존 증권과의 차이를 고려해 증권형 디지털자산을 거래할 수 있는 디지털자산거래소가 설립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명호 한국예탁결제원 사장은 올해 2월 "증권형토큰 발행, 유통 플랫폼 구축 로드맵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증권형토큰이 자본시장법에 따라 규제를 받게 되면 증권회사 같은 기존 금융투자업자의 참여도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 변호사는 비증권형 디지털자산의 경우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해 제도권으로 편입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투자자 보호를 위한 시장감시기구, 상장평가기구, 보험제도 등이 도입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변호사는 "그동안 가상자산을 규제해 온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 방지를 위한 법"이라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법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자산의 발행과 유통 전반에 대한 새로운 규제 정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