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교회 신자가 교회에 헌금을 한 후 회계 장부를 보여달라고 요청하면 비웃음을 사기 십상(十常)이다. 회계장부를 판도라의 상자로 여기는 일부 대형교회가 신도들의 열람 요청을 더 어렵게 하려고 정관을 바꾸기도 했다. 그래서 ‘교회다오’(ChurchDAO) 같은 게 필요하다. 미래에 메시아는 “블록체인에 헌금의 흐름을 투명하게 기록하라”고 외칠 것이다.
아파트 관리사무실에 자료 열람을 요청해도 역시 거절되기 일쑤이다. 그 자료가 관리규약에서 공개하도록 정해진 목록에 없다면 관리소장이 정중하게 거절할 것이다. 이때 투명성(transparency)의 이슈가 등장한다. 교회나 아파트는 ‘개인정보 보호’를 주장하고, 요청자는 ‘알 권리’를 강조한다. 모든 기록을 투명하게 공개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좋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
마지못해 교회가 재정장부를 공개했다고 해도 문제가 있다. 그 장부를 교회가 조작하지 않았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교회가 강조하는 ‘오직 믿음(sola fide)’으로 교인들은 그냥 믿어야 한다. 조작 여부를 알아내려면 장부와 영수증 등 모든 자료를 확보해야 하지만 그건 더 어렵다. 분석에도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오직 믿음’을 되뇌어 보며 그냥 넘어간다.
여기서 문서의 무결성(integrity 또는 immutability)이 쟁점이 된다. 문서가 변조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방법이 필요하다. 정관이나 계약서의 페이지마다 간인(間印)을 찍는 게 한 예이다. 블록체인에서는 암호학적 해시(cryptographic hash) 값이 간인을 대신한다. 계약 당사자들은 간인이 날인된 문서 2부를 만들어 각각 한 부씩 보관한다. 블록체인에서는 수십 개에서 수만 개의 노드에 디지털 간인이 날인된 문서가 보관된다.
바이와이어 뉴스(Bywire news)나 토큰포스트(Tokenpost) 등은 뉴스 기사를 EOS 블록체인에 저장한다. 이 기업들이 기사를 여러 노드에 분산하는 것은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투명성과 무결성의 장점을 누리기 위함이다.
뉴스가 지녀야할 또 하나의 가치는 공정함(fairness)이다. 우선 공정한 뉴스는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가짜뉴스는 퇴출되어야 한다. 그래서 모든 뉴스를 블록체인에 박제하자는 것이 바이와이어와 토큰포스트의 취지이다. 훗날 가짜뉴스로 밝혀진 박제된 기사는 기자에게 씻을 수 없는 낙인이 된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그 기사는 지울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다.
미국의 만화 작가인 루빈(Rubin) 골드버그가 매우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매우 단순한 일을 처리하는 기계를 자주 소재로 삼았다. 예를 들어, 더울 때 부채를 쓰면 되는데 바퀴, 핸들, 컵, 공, 새장, 욕조, 신발, 파이프 등 다양한 물건들을 써서 순차적인 연쇄 반응을 통해 바람을 일으키는 기계를 그렸다. 1910년대부터 만화로 소개된 루브(Rube) 골드버그 장치는 인기를 얻었고 비효율적인 절차의 상징이 되었다. 1931년 웹스터 사전에 ‘루브 골드버그’는 형용사로 ‘간단한 일을 복잡한 수단으로 달성하는’이란 뜻으로 등재됐다. 루브는 루빈의 애칭이다.
그런데 루브 골드버그 장치가 기발함의 상징으로 쓰이기도 한다. 2006년 과학기술부가 ‘우주인 선발대회’에서 과학적 창의력과 협동심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이 장치를 도입한 바 있다. 당시 후보자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로켓을 발사해 과녁에 맞히되 반드시 15단계를 거쳐야만 하는 미션을 수행했다.
블록체인 아이디어가 기발하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비효율이기도 하다. 서버 하나로도 얼마든지 투명성과 무결성을 보장할 수 있다. 그런데 수많은 노드에 동일한 블록을 저장하고, 블록이 생성될 때마다 검증해야 하고, 검증하기 위해 검증자들끼리 합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비효율성을 다 감내하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다. 전통금융에서의 정보비대칭을 타파하려고 비효율적인 암호화폐를 쓴다. 앞에서 든 ‘교회다오’ 같은 것도 이거 아니면 투명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여긴다. 그냥 투명하게 공개하면 굳이 블록체인을 쓸 이유가 없다.
검열, 가짜뉴스, 광고주의 압력에 시달리는 언론에서도 블록체인에 주목했다. 2016년 미국에서 시빌(Civil)이라는 프로젝트가 출범했다. 가짜뉴스를 퇴치하고 광고주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기 위해서였다. 메이저 언론들이 블록체인으로 가짜뉴스가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고, 상업광고 대신 구독료만으로 운영하겠다는 이 프로젝트에 주목했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2018년 시빌 코인(CVL) 코인 판매의 실패로 인해 코인으로 보상을 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결국 시빌이 2020년 컨센시스에 합류하면서 실험이 막을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블록체인 기반 언론이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건 이르다. 시빌의 실패를 목도하면서 출범한 바이와어어, 토큰포스트, 프레스랜드(Pressland) 등의 실험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지속적으로 더 낳은 언론으로 진화하며 시대의 정신을 지켜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본 콘텐츠는 <BBR: Blockchain Business Review> 6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