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오랫동안 준비한 디지털화폐 월렛 '노비(Nove)'가 시범 출시됐다. 규제 반발에 출시가 막힌 자체 스테이블코인 '디엠(Diem)' 대신 기존에 유통되던 '팍소스 달러(USDP)'를 채택하며 어렵게 첫 발을 디뎠다.
데이비드 마커스(David Marcus) 페이스북 노비 월렛 총괄은 2021년 10월 19일 블로그에서 "미국 일부 지역과 과테말라에서 노비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고 발표했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 기기에서 앱을 다운로드받고, 정부 발행 신분증을 등록해 사용할 수 있다. 수수료 없이 월렛 간 송금이 가능하다. 관련 수탁 서비스는 코인베이스가 맡았다.
디엠 대신 팍소스
페이스북은 디엠이 아니라 기 발행된 스테이블코인 USDP를 사용하기로 했다. 당초 디엠 지원 월렛으로 설계됐지만, 페이스북은 규제 문제로 디엠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암호화폐 데이터 제공업체 코인게코(CoinGecko)에 따르면 팍소스 달러는 시총 기준 8번째로 큰 스테이블코인이다. 테더(USDT)와 USD코인(USDC)가 차지한 1300억 달러 규모 시장에서 USDP의 점유율은 1%에 불과하다. 다만, 2021년 4월 미 통화감독청(OCC)에서 조건부 은행 인가를 취득해 규제 측면에서 안정적인 위치를 점했다는 장점이 있다.
월터 헤저트(Walter Hessert) 팍소스 전략수석은 "팍소스는 확립된 체계 안에서 규제 솔루션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마커스는 "USDP를 채택한 것은 준비금을 현금과 현금성 자산으로 100% 담보하기 때문"이라면서 "이용자는 손쉽게 현지 화폐로 자금을 인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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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엠, 규제 장벽에 추진 동력 잃어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같이 안정적인 실물자산에 가치를 연동시킨다. 일반 결제와 송금에 사용할 수 있도록 암호화폐가 가진 변동성 문제를 잡기 위해 설계됐다.
페이스북은 2019년 6월 처음 스테이블코인 '리브라(Libra)' 계획을 공개했다. 법인을 스위스에 두고, 다중 통화 바스킷을 기초로 한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계획했었다. 다수의 기술 기업, 비영리 기관 등과 공동 운영 기관을 조직해 권한을 분산시켰지만 당국은 소비자 보호, 자금세탁, 통화 안정성 문제에 있어서 페이스북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세계 규제 당국의 거센 반발에 추진 동력을 잃은 페이스북은 이후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명칭을 디엠으로 바꾸고, 본사도 미국으로 이전했다.
정부 측 반대는 계속
페이스북은 지속적으로 규제 이행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규제 당국은 개인정보유출 문제를 보인 대형 소셜미디어가 자체 스테이블코인을 출시한다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금융안정위원회(FSB)는 2021년 10월 "글로벌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규제, 감시, 감독 방안의 포괄성과 효율성에 도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브라이언 샤츠(Brian Schatz), 셰로드 브라운(Sherrod Brown), 리차드 블루멘탈(Richard Blumenthal),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등 민주당 의원 그룹은 2021년 10월 19일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페이스북 CEO에 서한을 보내 페이스북이 디엠과 노비을 모두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원들은 "페이스북은 공격적인 타임라인으로 다시 한번 디지털 화폐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해당 계획은 실제 금융 규제 지형과 양립할 수 없다. 디엠뿐 아니라 모든 스테이블코인이 그렇다"고 주장했다.
이어 "페이스북은 리스크를 관리하고 소비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완전히 입증됐다"면서 "결제 시스템이나 디지털 화폐를 운영할 수 있다는 신뢰받을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은 여전히 디엠 발행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마커스 총괄은 "페이스북이 디엠을 지지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면서 "규제 승인이 떨어지면 노비 월렛을 디엠 결제 네트워크로 이전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 "노비 월렛이 향후 다른 디지털 월렛과 호환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