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과세를 추진하는 가운데, 관련 협회와 조세 전문가를 중심으로 구체적 과세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다만 세금 부과 방식을 두고 전문가들은 다소 상이한 견해를 보였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가상통화(암호화폐) 과세방안 정책심포지엄'이 열렸다. 이날 행사는 한국블록체인협회와 글로벌금융학회, 민주당 최운열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했다.
행사는 오갑수 한국블록체인협회장의 개회사와 최운열 국회의원의 환영사를 시작으로, 김병일 강남대학교 경제세무학과 교수의 발제와 전문가 토론이 이어졌다.
오갑수 회장은 개회사를 통해 "앞으로 시행될 블록체인 암호화폐에 대한 조세제도와 과세방법은 많은 나라가 선점하려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블록체인 산업과 관련기업, 암호화폐 시장에서 다른 나라와 경쟁하며 발전해 나가는데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운열 의원은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체계를 마련할 때 실질에 맞는 과세가 이뤄져야 거래자들의 조세저항을 최소화하면서 거래가 활성화될 것"이라며 "과세편의를 위해 거래에 일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거나 기타 소득으로 일률적인 세율을 부과하기 보다는 실제 양도로 실현된 이득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 가장 실질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병일 강남대 교수는 세계적으로 암호화폐의 자산적 성격이 인정되고 있고, 미국·일본 등의 주요국이 암호화폐 매매차익에 대한 과세에 나서고 있으며, 암호화폐 제도화를 앞두고 과세 형평성을 제고하는 차원에서 과세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암호화폐에 대한 법적 성격이 명확히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과세를 추진하기 어렵고, 이를 처리하기 위한 구체적인 과세 인프라도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암호화폐 과세에 대한 방법으로 4가지를 제시했다. △법인세, 사업소득에 대한 소득세를 제외한 어떠한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 방안(1안) △기타소득으로 과세하는 방안(2안) △거래세 과세 방안(3안)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안(4안)이다.
김 교수는 법인세, 사업소득세를 제외한 어떠한 세금도 부과하지 않는 1안의 경우,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가 있다'는 조세 원칙을 훼손할 수 있고, 현실적으로 암호화폐 거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정당성을 찾기 쉽지 않다고 봤다. 2안인 기타소득으로 과세하는 방안의 경우, 현행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에 대한 과세구조가 복잡하고, 암호화폐 거래가 대부분 거래소를 통해 이뤄지는 점을 감안하면 일시적·우발적인 소득으로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현행 소득세법상 기타소득은 일반적으로 일시적이고 우발적인 소득에 대해 부과되는 세금이다. 로또 등의 복권 상금, 서화·골동품 양도로 발생한 소득, 영업권 같은 자산·권리를 양도·대여하고 받는 소득, 고용관계 없는 강연료 등이 기타소득에 해당한다.
따라서 김 교수는 암호화폐 거래시마다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거래세), 자산 양도에 따른 매매 차익에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양도소득세) 부과를 가장 현실적인 과세 방안으로 봤다.
김 교수는 "거래세는 취득원가 산정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등 징수의 편의성을 도모하고 투기적 거래를 억제할 수 있다"며 "양도소득세의 경우 주식 양도, 파생상품 거래 행위로 발행하는 소득에 대한 과세 제도와 유사해 큰 저항감 없이 도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거래에 일괄적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거래세의 경우, 비교적 징수 편의성이 높고, 투기적 거래를 억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암호화폐 성격상 가격 변동성이 커 거래 기준 가격 산정이 어려운 점, 거래소 외부에서 개인끼리 암호화폐를 사고 파는 장외 거래의 경우 거래 포착이 어려운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양도소득세의 경우는 주식시장이나 파생상품 등의 거래 행위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한 과세제도와 비슷한 방식으로 과세 방안을 마련할 수 있어 큰 저항감 없이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보유한 암호화폐로 다른 암호화폐를 매입하는 경우, 하드포크를 통해 취득한 암호화폐의 경우, 채굴과 상속·증여 등으로 암호화폐를 취득한 경우 취득가액 산정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방향이 옳다는 견해가 주를 이뤘다. 토론에 참여한 강남규 법무법인 가온 변호사는 거래세보다는 양도소득세를 도입해야 한다고 봤다.
강 변호사는 "거래세는 시장을 파괴하고, 사회적·재정적으로도 사중손실(dead-weight loss)을 양산한다"며 "소득에 비례하는 실질 과세, 형평과세를 실현하지 못하는 거래세 방식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강 변호사는 "암호화폐의 경우 거래시장이 주식선물이나 옵션처럼 통일돼 있지도 않고, 모든 거래가 공개시장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활성화된 거래 시장에 거래세를 부과할 경우 시장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강 변호사는 "당장의 과세편의성에 따른 거래세 부과나 기타소득으로 일단 과세부터 하고 보자는 조급한 생각은 삼가할 필요가 있다"며 "섣부른 입법으로 이를 다시 고치기 위해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은 그에 비해 훨씬 더 막대하다"고 덧붙였다.
김용민 한국블록체인협회 세제위원장은 낮은 수준의 거래세를 우선 도입하고, 추후 양도소득세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주요국은 암호화폐 거래로 인한 이익에 대해 자본이득으로 보아 양도소득세를 부과하고 있다"며 "조세이론상으로도 암호화폐 거래이익은 양도소득세로 과세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암호화폐의 경우 익명성으로 과세거래 포착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장외거래 이용자는 거래 내용 파악과 취득가액 등 필요경비 산정이 어려워 과세 인프라가 갖춰져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당장 도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위원장은 "암호화폐 거래 현실을 감안해 일단 낮은 수준의 거래세를 도입해 과세 인프라 정비와 세수확보를 해나가면서 향후 과세 인프라가 정비된 시점에서 양도소득세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정승영 한국지방세연구원 연구위원 역시 양도소득세를 가장 바람직한 과세 방안으로 봤다. 아울러 탄력적으로 세율을 조정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정 위원은 "세율의 경우에는 파생금융상품과 같이 단일비례세율 형식의 접근 방향을 두되, 투기 성향이 단기적으로 강해지는 것으로 나타나면 탄력세율 장치로 세율을 올리는 구조를 선택하는 방향이 합리적"이라고 밝혔다.
반면에 장재형 법무법인 율촌 세제팀장은 양도소득세보다는 낮은 수준의 거래세가 현재 상황에서 가장 적합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장 팀장은 "사업자를 제외한 개인의 암호화폐 양도차익을 과세한다면 왜 다른 자산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며 "단기적으로 암호화폐는 과세하지 않거나, 과세하더라도 소득세보다는 거래세로 과세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