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관세 정책 발효가 임박한 가운데, 베트남이 민첩한 외교 전략으로 무역 압박을 피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 ‘미국 해방의 날(Liberation Day in America!!!)’을 맞아 무역 흑자가 큰 국가들을 상대로 대규모 보복 관세를 시행할 예정이다. 중국과 멕시코에 이어 미국과의 세 번째로 큰 무역 흑자를 기록 중인 베트남도 그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이번 조치는 트럼프 행정부가 외국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발효되는 것으로, 무역 균형을 바로잡고 미국 내 생산을 장려하겠다는 강경한 보호무역 정책의 일환이다. 특히 베트남은 미중 갈등이 본격화된 1기 행정부 시절 중국을 떠난 제조 공장들의 주요 대체지로 부상하면서 혜택을 받아왔지만, 이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의 비판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는 과거 베트남을 "중국보다 더한 무역 남용 국가"라고 직설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팜 민 찐(Pham Minh Chinh) 베트남 총리는 유연한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그는 지난 1월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별장 마러라고(Mar-a-Lago)를 방문해 "하루 종일 골프를 칠 용의가 있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를 과거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트럼프와의 친분을 다지기 위해 골프 외교를 펼쳤던 전략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단기적 인간관계 강화만으로 베트남이 관세를 피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베트남이 최근 내놓은 일련의 조치는 이러한 우려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미국산 에너지 및 자동차 등 일부 품목에 대한 관세를 인하한다고 발표했으며,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 역시 시험 운용을 허용했다. 이는 미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완화하고, 자국 내 미국 기업 비중을 높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여기에 미-베트남 기업 간 40억 달러(약 5조 8,400억 원) 규모의 신규 계약 체결도 무역 적대감을 누그러뜨릴 방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베트남은 또한 ‘대나무 외교’로 불리는 전략적 중립 노선을 고수해왔다. 외풍에 흔들리는 대나무처럼 유연하게 외교 관계를 조율하며 현실에 적응하는 방식이다. 컨설팅 업체 컨트롤 리스크(Control Risks)의 스티브 노리스는 "베트남이 접대를 통해 친 트럼프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거나 전략광물인 희토류 개방 논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베트남에 불리한 요소도 만만치 않다. 미국은 중국 제품이 베트남을 경유해 우회 수출되고 있다는 ‘환적(trans-shipment)’ 문제를 우려하고 있으며, 이는 단속 강화와 추가 관세의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베트남의 최대 수출국은 미국이지만, 최대 수입국은 중국이라는 점도 트럼프 행정부가 눈여겨보는 대목이다. 실제로 지난해 신규 외국인 투자 중 약 3분의 1이 중국계 자본으로 확인됐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경우, 제조 기지를 베트남으로 옮긴 미국 기업들도 부정적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애플, 인텔, 나이키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의 생산라인이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에서 탈중국을 시도했던 기업들에 또 다른 공급망 리스크가 등장하는 셈이다.
미국 상공회의소 베트남지부의 최근 설문에 따르면, 현지에 진출한 미국 제조업체 상당수가 관세가 부과될 경우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러한 관세 정책이 자국 내 제조업 회귀와 세수 증가에 기여할 것으로 보고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소비자 물가 상승과 글로벌 공급망 혼란 등의 부작용을 경고하고 있다.
진짜 시험대는 트럼프 대통령이 새 관세 패키지를 실제로 시행하는 다음 주다. 베트남의 유연한 외교 수사가 무역 전선의 파고를 넘어설지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