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서 확인된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 등을 경유한 이상 외환송금 규모가 123억 달러(한화 약 16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난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은행 영업점뿐만 아니라 은행 본점의 고위 임원들까지 중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이준수 금감원 부원장은 4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열린 '은행 주요 감독·검사 현안 기자브리핑'에서 "이상 외환 송금 건이 규모가 컸고 사안이 중대한 만큼,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경우 본점 고위 임원을 포함해 엄중히 조치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금융감독원은 이상외화 송금과 관련한 임직원들에 대해 업무 정지나 면직 등 관련 법에 따라 최대한 엄중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은행들이 건전하고 효과적인 지배구조로 운영될 수 있도록 글로벌 수준에 부합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일정 부분 강제성을 부여해 실효성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부원장은 "이상외화 송금 건과 관련해 13개 금융회사 중 9개사에 대한 사전 통지를 마친 상태다. 관련 법인 외국환거래법이나 지배구조법,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은행법 등이 정한 데 따라 관련 임직원에 대해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최대한 엄단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금감원은 국내 12개 은행과 NH선물 등 총 13개사에 대해 검사를 실시한 결과, 84개 업체에서 총 122억6000만 달러(한화 약 16조원)의 이상 외화송금거래를 포착했다고 4일 밝혔다.
그 중 NH선물의 이상 외화거래 규모는 50억4000만 달러(한화 약 6조6000억원)로 가장 컸다.
이어 신한은행 23억6000만 달러(한화 약 3조원), 우리은행 16억2000만 달러(한화 약 2조원), 하나은행 10억8000만 달러(한화 약 1조4천억원) 순이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달 금융사에 검사결과 조치예정내용을 사전통지했다. 앞으로 신속하게 제재심 심의 등 관련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영업점을 포함한 해당 금융사 및 관련 임직원에 대해 관련법규 및 절차에 따라 일부정지, 임직원 면직 등 중징계를 적용할 방침이다.
다만 은행장 등 최고경영진(CEO) 제재 여부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이번 조사 과정에서 금융사와 해당 임직원의 외국환거래법 등 법규 위반 혐의도 드러났다. 이상 외화 송금 거래조사는 지난해 6월 우리,신한은행이 자체 감사에서 비정상적인 외환 거래 사례를 포착해 금감원에 보고하면서 시작됐다.
금감원은 은행의 자체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해 9~10월 10개 은행으로 검사를 확대했고, 연이어 거액의 이상 외화 송금이 나타난 NH선물을 상대로도 검사를 벌였다.
그간 금감원은 수출입 가장 송금업체에 대한 조사, 수사권을 가진 관세청, 검찰과 관련 검사자료를 공유해오면서 이 과정에서 외화송금 관련 다수 위법 혐의자들을 구속·불구속 기소했다.
그결과 대구지검은 우리은행 전 지점장을 포함해 8명을 구속 기소하고,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또 NH선물 직원 1명을 구속 기소, 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과 관세청도 송금 업체 등 관련자 11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후 금감원은 금융사에 검사결과 조치예정내용 등 제재 사전통지를 3월말에 전달했다. 향후 제재심 심의위원회를 개최해 제재 관련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이상외화송금 재발방지를 위해서 국내은행과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외화 송금 시 은행이 필수로 확인해야 할 사항을 표준화하고, 영업점 사전확인, 외환사업부 모니터링, 유관부서 사후 점검으로 이어지는 '3선 방어' 내부통제 체계를 마련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관계기관 협의 등을 통해 개선방안을 확정하고, 관련지침 개정 및 시스템 구축 등 준비를 거쳐 시행한다는 계획이다.
필수 확인 사항으로는 ▲고객의 거래사유 및 금액 ▲지급절차(사전신고) 준수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해 거래상대방(송금인 및 수취인) ▲거래금액 ▲거래품목 ▲대금결제방식 ▲무역거래 형태 등이 논의되는 상황이다.
3선 방어 체계란, 금융회사의 영업점, 판매부서 등 현업부서가 내부통제의 제1선 역할을 하며, 제2선은 내부통제·준법부서가, 제3선은 내부감사부서가 역할과 책무를 지는 것이다.
거래시 영업점이 사전확인을 진행하고 거래 후에는 외환사업부가 모니터링하는 것이다. 이어 검사부 등이 사후점검 절차를 거쳐 보다 촘촘한 내부통제가 가능해진다.
금융당국은 '김치 프리미엄'을 노린 차액거래가 성행하고 있고, 이러한 거래가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이번 이상 외환송금 거래에 칼을 빼든 것으로 풀이된다. 김치 프리미엄은 국내 가상화폐 시세가 해외보다 비싸게 형성되는 것을 뜻한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한 방송에 출연, 은행권 대규모 이상 외환송금 거래사태에 대해 "무역자금 형태로 서류를 꾸민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국내 외화자금이 수십억 달러 이상 나간 것"이라며 "위법적인 내지는 가장된 거래가 동원된 것이기 때문에 시장질서 교란 행위로 볼 수 있다"고 꼬집은 바 있다.
향후 금감원은 은행 지배구조에 대한 감독·검사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 부원장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제도 개선을 유도할 계획"이라며 "지난 2019년 금감원 차원에서 지배구조 관련 모범 규준을 만들어 배포했지만 은행들이 잘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 조금 더 강제성을 두고 실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준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은행 지배구조와 내부통제에 대한 평가비중이 너무 낮다는 지적이 제기된 데에 관해선 "경영관리 내 하위 항목에 지배구조와 내부 통제를 평가하고 있기 때문에 경영관리 평가비중(15%)이 높아질 것"이라며 "구체적인 상승 폭은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