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방산 기술 스타트업들이 급속히 시장을 장악하며 막대한 투자를 끌어들이는 반면, 유럽은 여전히 뒤처진 모습이다. 올해 초 미국 방산 스타트업 앤듀릴 인더스트리(Anduril Industries)는 영국에 드론 생산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 기업은 최근 영국 정부로부터 우크라이나에 드론을 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하며 약 4,000만 달러(약 576억 원)를 수주했다.
앤듀릴은 대표적인 방산기술 유니콘으로, 현재 기업가치가 약 140억 달러(약 20조 1,600억 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이러한 성공 사례가 손에 꼽힐 정도에 불과하다. 크런치베이스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 방산 스타트업에 투자된 벤처 캐피탈 금액은 약 6억 2,600만 달러(약 9,014억 원)에 불과했다. 이는 전 세계 방산 기술 관련 벤처투자액인 32억 달러(약 4조 6,080억 원)의 5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특히 미국에 집중된 투자 25억 달러(약 3조 6,000억 원)와 큰 격차를 보인다.
그나마 유럽 시장에서 두드러진 기업은 헬싱(Helsing)이다. 독일에 본사를 둔 이 스타트업은 군사용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드론 및 전투기 무기능력 향상에 집중하고 있다. 헬싱은 지난해 제너럴 캐털리스트가 주도한 4억 8,900만 달러(약 7,041억 원) 규모 시리즈 B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54억 달러(약 7조 7,760억 원)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헬싱을 제외하고 유럽에서 8,000만 달러(약 1,152억 원) 이상을 유치한 방산 스타트업은 거의 전무하다.
반면, 미국 방산 기술 업계는 상반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앤듀릴은 시리즈 F에서 15억 달러(약 2조 1,600억 원)라는 초대형 투자를 유치했고, 무인수상정 개발사 사로닉(Saronic) 역시 1억 7,500만 달러(약 2,520억 원), 인프라 및 국방 기술 스타트업 카오스 인더스트리(Chaos Industries)는 1억 4,500만 달러(약 2,088억 원)의 투자를 끌어모으며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들어 미국 방산 기술 스타트업들은 단 15건의 거래만으로 이미 15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유럽에서는 불과 수백만 달러 규모의 소수 거래가 전부였다.
물론 변화의 조짐도 엿보인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출범시킨 NATO 이노베이션 펀드는 최근 수 건의 초기 스타트업 거래를 마쳤고, 방산 및 보안 분야에 중점을 둔 딥테크 중심 벤처 자금 운용사에도 투자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지역 갈등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방산 기술은 향후 유럽 내에서 성장이 촉진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미국과의 격차가 상당하다. 지난해 미국은 방산 스타트업 67건의 거래를 기록한 반면, 유럽은 23건에 불과했다. 거래 건수와 투자금 모두에서 미국이 압도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크런치베이스는 군사, 국가안보, 법집행 기술 스타트업을 방산 기술 영역으로 분류하며, 인큐베이터와 액셀러레이터는 변동성이 커 분석에서 제외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유럽이 방산 기술 투자를 확대하려면 시스템 전반의 변화와 함께 구체적인 투자 성과를 보여줘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