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보안의 미래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가운데, 팔로알토 네트웍스(PANW)가 새 판짜기에 나섰다. 증가하는 AI 기반 공격 양상에 대응하기 위해 기존 보안 도구 체계를 과감히 개편하고, 통합 플랫폼 전략을 중심으로 운영 모델을 재정립하고 있다. 특히 플랫폼화와 실시간 AI 분석 기능을 통합함으로써, 복잡한 보안 아키텍처를 간소화하는 동시에 위협 대응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겠다는 구상이다.
팔로알토는 지난주 뉴욕에서 개최된 ‘이그나이트(Ignite)’ 컨퍼런스를 통해 이 같은 전략을 공개했다. 니케시 아로라(Nikesh Arora) CEO는 소수 애널리스트들과의 비공개 라운드테이블에서 “AI 시대의 보안은 기존 패러다임의 연장선이 아니라 본질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사 제품들의 최신 통합 수준과 AI 적용 범위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화 전략(platformization)’이 현재의 다중 보안 솔루션 병렬 구조보다 비용과 효율 면 모두에서 우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IT 지출이 거시경제 변동, 금리 인상, 무역 정책 등의 여파로 흔들리는 가운데서도, 보안 분야는 비교적 *지속적인 투자 우선순위*를 지켜왔다. 엔터프라이즈 테크놀로지 리서치(ETR)의 설문에 따르면, 2024년 IT 예산 증가는 3% 중반대에서 등락을 거듭하고 있지만, 사이버 보안만큼은 대부분 기업의 핵심 투자 분야로 남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클라우드 확대, 원격 근무 확산, AI 도입 증가 등으로 민감 데이터를 다루는 영역이 넓어지면서 보안을 외면하긴 어려운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시장 분석에서는 사이버 보안 주가가 전체 기술 섹터보다 견조한 흐름을 보이고 있으며, 플랫폼 기업들이 비교적 강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다만 팔로알토 주가는 경쟁 격화, 연간 반복 수익(ARR) 둔화 우려 등으로 최근 주요 경쟁사 대비 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플랫폼화 전략의 실효성과 AI 적용 범위가 실적 회복의 핵심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ETR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대다수 기업은 여전히 다수의 보안 벤더를 병행 사용하는 ‘포인트 솔루션’ 접근을 택하고 있다. 그러나 AI 기반 통합 플랫폼이 특정 분야에 대해 확실한 리스크 저감 성과를 입증한다면, 시장은 점진적으로 플랫폼 중심으로 이동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특히, 마이크로소프트(MSFT), 구글(GOOGL)과 같이 대규모 AI 역량을 갖춘 기업들이 보안 시장 확장을 위해 자원을 집중하고 있어 경쟁 구도는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팔로알토는 이를 의식한 듯, AI 중심의 클라우드 보안 및 통합 데이터 분석 역량을 강화하며 기존 강점인 네트워크 방화벽 외 영역으로의 확장을 가속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보안 브라우저, 클라우드 포스처 관리, 신원 및 데이터 정책 기반 제어 등 실시간 위협 파악 기술에 AI를 결합한 제품군을 연이어 선보였다.
그러나 ‘모든 보안 기능을 한 회사가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도 여전히 존재한다. 일부 기업은 특정 위협에 대해 특화된 솔루션의 정확도와 대응력을 중시하며, 통합 플랫폼 접근보다 하이브리드 전략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대형 기업들은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과 전환 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거대 보안 플랫폼 도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궁극적으로 사이버 보안 시장의 향방은 “AI가 동력이 될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인다. 공격자는 이미 AI를 통해 무수히 많은 피싱 시도와 침투 시나리오를 테스트하고 있으며, 방어자는 이를 분석하고 선제 대응할 수 있는 동일한 수준의 AI 능력을 확보하지 않으면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시 말해, *AI 대 AI의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팔로알토는 이 같은 AI 기반 보안 패러다임의 전환기에서 데이터 통합과 자동화를 병행하는 전략으로 단기 성장을 뛰어넘는 장기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현재 약 10% 수준인 글로벌 보안 시장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려, 업계 ‘디팩토 표준’이 되겠다는 포부도 서슴지 않는다. 당장 15%를 상회하는 성장만으로도 전략의 타당성이 증명될 수 있으며, 경쟁사들은 이에 대응해 독자적 강점을 앞세운 파트너십과 인수합병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이버 보안이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닌 거시적 비즈니스 전략의 결합점으로 떠오른 지금, 누가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AI를 활용할 수 있는가가 승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팔로알토의 플랫폼 전략이 어떤 성과로 귀결될지는 향후 몇 분기의 실적과 고객 반응, 그리고 경쟁사의 역동성에 의해 판가름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