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대한민국 정부가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언론과 정치권은 비웃음으로 응답했다. "그럴 돈이 있으면 농촌에 쌀을 더 주라"며 비판했고, "나라 곳간을 텅 비게 할 사업"이라며 격렬히 반대했다. 그러나 경부고속도로는 한국 산업화의 뿌리가 되었고, 오늘날 한국 경제는 그 고속도로 위에서 달려왔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 김대중 대통령이 초고속 인터넷망에 수십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인터넷망을 구축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두고 사람들은 '허황된 꿈'이라 조롱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담담히 말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고속도로를 놓듯이 정보고속도로를 까는 것입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국가가 되었고, IT 산업의 글로벌 리더로 자리 잡았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스크린쿼터를 축소하며 영화 산업을 위한 대규모 지원책을 내놓자, 영화인들은 격렬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그 지원책을 기반으로 한국 영화는 '기생충'을 만들었고, '오징어 게임'을 탄생시켰다. 한국 콘텐츠는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이 세 가지 사례는 모두 동일한 본질을 담고 있다.
국가의 역할은 직접 콘텐츠를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과 기업이 있더라도, 그들이 달릴 도로가 없으면 미래는 열리지 않는다.
이제 우리 앞에 다시 한 번 국가의 역할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AI 시대에 세계는 이미 GPU 전쟁 중이다. 메타와 마이크로소프트는 수십만 대 규모의 GPU를 보유하고 있으며, 유럽과 중국은 조 단위 투자를 통해 AI 슈퍼컴퓨터 클라우드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비참하다. 국내 최신 GPU는 겨우 2천 대 수준에 불과하다. 많은 스타트업들은 GPU가 부족해 혁신을 포기하거나, 엄청난 비용을 들여 해외 클라우드를 빌리고 있다. 국내 대기업조차 자원 부족으로 AI 혁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GPU는 AI 시대의 고속도로다. AI 기술의 핵심은 더 이상 알고리즘이 아니라, 알고리즘을 훈련할 연산 자원이다. 연산 자원이 없으면 AI 혁신은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개별적으로 GPU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국가의 개입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스마트폰 요금 정도로 이용할 수 있는 대규모 슈퍼컴퓨터 클라우드를 국가가 구축해야 한다. 전국민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AI 공공 인프라를 제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국산화도 이뤄질 것이다. 이는 과거의 뉴딜 정책처럼 경제 전반에 엄청난 활력을 제공할 것이다.
과거의 성공 사례는 이미 답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가 제대로 인프라를 구축하면, 민간은 스스로 혁신하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다. 지금 대한민국이 해야 할 단 하나의 일은 명확하다. AI 인프라를 구축하여, 다시 한번 미래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미래의 대한민국이 AI의 소비자가 될지, 생산자가 될지는 지금 이 결정에 달려 있다. 도로가 없으면 차는 달릴 수 없다. AI 시대에 우리가 깔아야 할 고속도로는 바로 GPU다. 국가의 결단이 필요하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