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벤처투자 시장에서 여성 이사진 구성 비율이 정체 상태에 머물고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2019년 이후 꾸준히 유의미한 개선이 이어졌지만, 최근 1년간은 큰 변화 없이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와 소셜 임팩트 조직 일루민 임팩트(illumyn Impact)가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누적 투자금이 1억 달러(약 1,440억 원) 이상인 미국 비상장 벤처기업 807곳의 이사진을 분석한 결과 여성 이사의 비율은 평균 17%로 집계됐다. 이는 2019년 첫 조사 당시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아진 수치지만, 최근 1년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에서 시장의 구조적 한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남성으로만 구성된 이사회 비중은 2019년 60%에서 올해 32%까지 줄었지만, 지난해와 비교할 때 이 수치는 사실상 변화가 없었다. IPO 시장의 침체와 초기 투자 감소가 이사진 구성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상장이나 신규 자금 조달이라는 ‘변화의 압력’이 사라지면서 기업들이 이사회 다양성을 주요 과제로 두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흐름도 감지된다. 우선 최근 설립된 기업일수록 여성 이사를 포함한 경우가 많았다. 2015년 이후 설립된 기업의 74%는 최소 한 명 이상의 여성 이사를 두고 있으며, 이는 이전 세대 기업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수준이다. 특히 투자자 이사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3%로 크게 상승했고, 독립 이사 중 여성이 28%에 달했다. 이는 기업 이사회 네트워크 내에서 여성 후보군이 점차 확장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번 보고서의 공동 저자인 크런치베이스의 제네 티어(Gené Teare) 애널리스트는 "IPO 시장이 회복되고 벤처투자 규모가 다시 확대되기 시작하면 여성 이사 비중에도 다시 중요한 전환점이 찾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향후 고성장 스타트업들이 상장과 자금 조달을 앞두고 이사회 구성에 다시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기대감도 일부에서 제기된다.
일루민 임팩트 측은 올해 보고서에서 ‘보드룸 다양성’이 더 이상 가시적 선언만으로는 개선되지 않는다며, 네트워크 확대와 맞춤형 연계 활동이 병행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 단체는 현재까지 여성, 특히 유색인종 여성 지도자 8,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고성장 스타트업과의 이사회 매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다양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이사진 구성이 미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향후 리더십 채용 및 이사회 구성에 대한 업계 전반의 태도 전환 여부가 변화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