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게임 산업이 팬데믹 이후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소유한 세비 게임즈 그룹(Savvy Games Group)은 산업의 불확실한 흐름에 신경 쓰기보다는 자체 성장 전략에 집중하며 홀로 길을 내고 있다. 최근 게임 개발자 콘퍼런스(GDC)에 참석한 CEO 브라이언 워드(Brian Ward)는 "장기적 시야로 성장을 이어가겠다"는 확고한 입장을 밝혔다.
세비 게임즈 그룹은 최근 계열사 스코플리(Scopely)를 통해 포켓몬 고(Pokémon Go)로 유명한 나이앤틱(Niantic)의 게임 사업 부문을 35억 달러(약 5조 400억 원)에 인수했다. 이는 단기간 수익화가 어려운 스타트업보다는 안정적인 트래픽과 수익을 제공할 대형 IP에 집중하겠다는 그룹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워드는 "이제 1억 5,000만 달러 수준의 거래로는 스코플리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기 어렵다"고 밝히며, 앞으로도 장르별 선도 게임을 모색해나갈 방침임을 강조했다.
세비의 전략은 단순한 인수합병을 넘어, 사우디아라비아 내 게임 생태계를 글로벌 허브로 키우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비는 현재 '게임·이스포츠·국내 생태계 구축'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 중이다. 이 전략은 ‘이스포츠 월드컵’과 2027년 신설 예정인 ‘이스포츠 올림픽’ 등의 대형 이벤트를 동력 삼아 현실화되고 있다.
워크포스 확대도 가속화되고 있다. 현재 리야드에 위치한 스티어 스튜디오(Steer Studios), 마라이(Marai), EFG 등의 자회사와 본사를 통해 150명 이상의 인력을 운용 중이며, 향후 수익 창출이 가능한 부문에 한해 채용을 지속할 계획이다. 반면 스타트업 육성은 당장의 과제에서 제외됐고, "인큐베이팅이나 초기 투자 등은 세비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 담당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중동 내 타국과의 경쟁에 대한 질문엔 "좋은 경쟁은 발전의 원천"이라며, 두바이와 아부다비 역시 게임 산업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는 데 환영의 뜻을 내비쳤다. 특히 그는 "MENA(중동·북아프리카) 시장의 크기나 수익화 가능성을 감안하면,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데도 매력적인 거점이 될 것"이라 밝혔다.
중장기적 산업 전망과 관련해서는 "게이머 수는 34억 명 이상으로, 게임에 대한 수요는 사라지지 않는다"면서도 업계가 다양한 도전에 봉착해 있다는 점엔 공감했다. 특히 대규모 콘솔 출시도 과거만큼 시장을 견인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콘솔 유저는 2억 명에 불과하다. 시장은 이미 훨씬 넓어졌다.”
중국이 자국 콘텐츠를 강화하며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려는 사례에 대해, 워드는 중동도 유사한 기회를 품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중동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로, 전 세계를 사로잡을 이야기 자산이 풍부하다"며, 현지 문화를 담은 콘텐츠가 세계적 흥행으로 이어질 잠재력을 높게 봤다.
세비 게임즈 그룹은 단기 시장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긴 호흡의 투자와 생태계 중심 전략으로 새로운 성장 공식을 써 내려가고 있다. 게임 산업의 침체 국면 속에서 사우디가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