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유전자 분석 서비스 업체 23앤드미(23andMe)가 파산 절차에 돌입하면서 고유한 고객 유전정보가 경매에 부쳐질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가운데 블록체인 업계는 해당 바이오 데이터를 온체인화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3앤드미는 지난 3월 23일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보호(챕터11)를 신청했으며, 이는 고객 1,500만 명의 유전 정보가 제3자에 매각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같은달 26일 법원이 공식적으로 자산 매각을 승인하면서, 정부와 프라이버시 보호단체들은 사용자가 데이터 삭제에 나설 것을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이에 일부 블록체인 프로젝트는 탈중앙화 기술이 유전정보 보호에 더 적합하다며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이 제시하는 핵심 논리는 “데이터 소유권을 사용자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특히 유전체 데이터를 사용자가 직접 암호화해 보관할 수 있게 하거나, 연구 참여 시에만 선택적으로 허용하며 보상을 제공하는 구조가 등장하고 있다.
23앤드미는 본래 가계도 및 건강 정보 제공을 위한 DNA 키트를 판매했지만, 수익 모델의 상당 비중은 유전자 데이터를 제약사와 연구기관에 판매하는 데에서 나왔다. 전체 가입자의 약 80%가 데이터 활용에 동의해왔으며, 회사 측은 이를 익명화한 뒤 활용한다고 밝혀왔지만, 유전자 정보 특성상 익명성 보장이 완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더욱이, 기업 매각이나 합병 시 기존 개인정보 보호조항이 무력화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이런 우려는 과거 보안 침해 사례에서 현실로 드러났다. 2023년 10월 발생한 해킹 사고로 23앤드미 전체 사용자 약 절반에 해당하는 690만 명의 혈통 정보가 유출됐으며, 아슈케나지 유대계 및 중국계 사용자들이 집중 타깃이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유전정보가 신분 도용이나 생물무기 개발에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 하원의 제이슨 크로 의원은 2022년 “정밀한 유전자 기반 생물무기가 실제로 개발되고 있으며, 개개인의 DNA 정보가 표적화된 공격에 쓰일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유전체 저장 방식이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탈중앙 클라우드 스토리지 프로젝트 AR.IO는 유전 정보를 암호화한 뒤 블록체인 기반 저장소 ‘ArDrive’에 보관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했다. 이더리움 기반으로 구축된 Genomes.io는 사용자가 직접 유전자 데이터를 보관하고, 연구용 활용 시 토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유저는 자신의 데이터가 보관된 ‘볼트(vault)’에 대한 프라이빗 키를 보유하게 되며, 회사나 제3자도 임의 접근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또 다른 프로젝트 ‘GenoBank’는 유전 정보를 바이오NFT로 민팅해 소유권을 블록체인상에서 직접 관리하는 방식이다. GenoBank 공동창립자 다니엘 유리베는 “이 혼란의 순간이 데이터 주권에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면서 “프라이버시와 가치 회수를 개인이 통제하는 구조가 이미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블록체인 방식도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가장 큰 리스크는 키 분실로 인한 데이터 접근 불가다. 반대로 키 탈취 시에는 유전 정보가 탈취당할 우려도 존재한다. Genomes.io 측은 프라이빗 키가 도난당할 경우 일부 보안 지원을 제공하지만, 데이터에 직접 접근할 수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원시 유전체 데이터 파일은 개당 최대 30GB에 달할 수 있기 때문에, 1,500만 명분의 데이터를 탈중앙 저장소에 올릴 경우 비용이 약 4억 9,200만 달러(약 7,181억 원)에 이를 수 있다. 업계 내부에서도 “유전체 데이터를 직접 온체인화하는 것은 비용과 보안 측면에서 위험하다”는 신중론이 나온다.
규제 측면도 복잡하다. 유럽연합의 GDPR(일반개인정보보호법) 같은 강력한 규제는 이미 블록체인 플랫폼이 개인 정보를 다루는 데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유전체처럼 민감한 데이터는 규제 위반 시 법적 책임이 더욱 강화될 수 있어, 기술 적용의 속도를 제한하고 있다.
프라이버시 전문가들은 향후 어떤 방식을 택하더라도 한 가지는 명확하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DNA 데이터를 지금이라도 23앤드미로부터 삭제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