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플레이투언(P2E) 개념이 화제가 되고 있다. 게임을 하면서 얻은 대체불가토큰(NFT) 기반 아이템, 재화, 캐릭터 등을 거래해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게임 플레이어의 관심뿐 아니라 게임 업계를 부흥시킬 새로운 '게임 체인저'로 부상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디지털 패권 국가'을 위한 ▲암호화폐공개(ICO) 허용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디지털산업진흥청(가칭) 설치 등 가상자산 지원 공약을 제시하고 당선 이후 가상자산 산업의 제도권 편입, 전담기구 설치 등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P2E 관련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규제 일부가 완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나온다.
◇ P2E, 온라인 도박 ‘바다이야기’와 단순 비교 안돼
지난해 여름 위메이드가 내놓은 P2E 게임 '미르4 글로벌'은 P2E 게임의 잠재력을 보였다. 최근 네오위즈, 넷마블, 카카오게임즈, 컴투스 같은 국내 게임사들도 자체 P2E 게임 출시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 모두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P2E가 게임 업계의 새로운 성장 돌파구로 지목됐지만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사행성을 이유로 P2E 게임 출시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조상규 제20대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분과 자문위원은(전 과학기술교육분과법률총괄실무위원)는 "게임물관리위원회가 P2E를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지만, 아직 입법적 판단이 내려진 것은 아니다"라면서 "정부에서 P2E 허용 여부를 쟁점으로 가져갈 수 있다고 본다"라며 "P2E에 대한 법률 검토가 미흡해 이를 바다이야기와 비교하는 경우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바다이야기는 2004년 출시된 온라인 파친코 게임이다. 현금이 아닌 상품권(칩)을 이용해 법망을 피했는데 중독성과 도박성이 극심히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일으켰다. 사행성 게임을 강력 규제하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제정과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물관리위원회 전신)' 출범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에 조 위원은 "NFT는 사적 거래가 이뤄지면서 시장 가치를 형성하는 재화에 해당한다"라며 "특정 금액이 반영된 바다 이야기의 ‘칩’과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바다이야기의 수익은 ‘우연성’에 달려 있지만 P2E는 스포츠의 일종인 '게임'으로서 능력치, 시간, 에너지 투입의 대가로 NFT를 얻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 비교는 안 된다"라며 "게임 아이템이 법원에서 재화로 인정을 받았고, 개인 간 재화 거래를 통해 형성된 시장 가격이 불법일 수 없는 만큼 법률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차기 정부도 관심…ICO 실수 반복하지 말아야
조 위원이 따르면 관련 인수위 워크샵에서 안철수 위원장이 발제자에게 직접 P2E 합법화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등 상당한 관심을 보였으며 해외 사례 경과를 지켜본 후 우리나라도 이에 맞춰 갈 수 있다는 의견을 공유했다고 밝혔다.
조 위원은 "게임 업계가 워낙 산업 기반이 잘 돼 있고 수많은 엔니지어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기회만 주어진다면 한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본다"면서 "P2E를 허용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게임 업계의 충분한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P2E 게임에 대한 반대 입장을 유지한다면 국내 업계 전망을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2017년 ICO 금지 조치에 해외로 사업자들이 빠져나갔고 시장 헤게모니가 싱가포르 등에 넘어간 상황"이라는 점을 언급하며 "P2E만큼은 우리나라가 선제적으로 지원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ICO는 투자자에게 암호화폐 발행·판매해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이다. 암호화폐 투자 열기가 뜨거웠던 2017년 ICO 붐이 일었지만,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는 상태에서 ICO를 앞세운 사기 및 불법 행위가 급증하면서 금융위원회는 ICO를 전면 금지한 바 있다. 기업들은 ICO를 허용하는 싱가포르나 스위스로 이주했다. 국내에서는 ICO가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다.
조 위원은 "스위스의 경우, ICO 활동을 지켜보다가 사례가 누적되어 가는 과정에서 현행법 위반 여부 등을 살펴 ICO 가이드라인을 냈다"면서 "이러한 가이드라인은 시장 참여자들에게 신뢰감과 안정감을 주면서 '추크'라는 아주 작은 주를 ICO의 성지로 만들어 엄청난 자본 유입을 경험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ICO의 단계적 허용을 공약하면서 국내에서도 최근 거래소공개(IEO)를 중심으로 ICO 시장 재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소수의 원화마켓 거래소에 힘이 집중되는 문제 등 ICO 과제들을 처음부터 새롭게 풀어가야 하는 걸음마 단계다.
◇ 시장 건전성, 민간에 맡겨야
조상규 위원 해외에서도 P2E 허용 사례, P2E 기업 성공 사례가 나오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안정적인 P2E 산업 지원과 시장 조성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조 위원은 "현재 베트남, 필리핀 등이 P2E를 허용하고 있고 중남미 국가도 P2E 시장의 25%를 차지한다"며 "우리나라나 중국, 싱가포르 정도 외에는 명시적으로 금지한 나라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필리핀에서는 P2E 게임 돌풍이 불면서 다수가 P2E 게임을 접하고 있고 NFT 접근성이 크게 높아진 상태다. 팬데믹 기간 동안 경제 위기 가운데, 베트남 게임 개발업체 스카이마비스가 출시한 P2E 게임 ‘엑시 인피니티’는 필리핀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새로운 수익 기회로 부상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파인더가 발표한 '글로벌 NFT 채택 보고서'에 따르면 필리핀 설문 응답자의 32%가 NFT를 보유한다고 나타났다.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NFT 채택 수준으로 집계 됐으며 태국(26.6%), 말레이시아(23.9%), 아랍에미리트(23.4%), 베트남(17.4%) 등이 뒤를 이었다.
조 위원은 "베트남 등 동남아국가는 P2E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한 달 월급을 넘는 경우도 많아 경제적 파급력이 큰데도 이를 허용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사실 규모가 크지 않아 파급력도 그리 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P2E 허용을 추진할 만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어 "만약 부작용이 고민된다면 정부가 아닌 민간에서 시장 정화를 할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어 다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FINMA)이 관리하는 자율규제기관(SRO), 즉 협회를 통해 시장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사행성으로 치우치거나 규모가 커지는 부분 등을 민간이 나서 제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외국 사례가 형성될 때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우리나라에서 사례를 형성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