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법원이 AI 저작권 소송에서 중요한 판결을 내리며 관련 법적 쟁점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최근 미국 연방법원은 톰슨 로이터(Thomson Reuters)가 로스 인텔리전스(Ross Intelligence)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원고 측 손을 들어주는 요약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로스 인텔리전스가 리걸테크 AI 연구 플랫폼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로이터의 법률 데이터베이스인 웨스트로(Westlaw)의 콘텐츠를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현재 진행 중인 39건 이상의 AI 저작권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모든 AI 기업이 동일한 법적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로이터는 자사의 법률 정보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헤드노트(Headnotes)’—법률 판례 요약을 로스 인텔리전스가 AI 훈련용 데이터로 무단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로스 인텔리전스는 해당 사용이 ‘변형적 이용(transformative use)’으로 공정 이용(fair use) 원칙에 부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담당 판사 스테파노스 비바스(Stephanos Bibas)는 로스 인텔리전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로스 인텔리전스의 AI가 웨스트로의 법률 연구 서비스를 단순히 재구성했을 뿐이며, 새로운 의미나 해석을 더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한, 웨스트로의 데이터를 활용한 로스 인텔리전스의 AI가 직접적으로 웨스트로와 경쟁하는 상품을 내놓으려 한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시러큐스 대학교의 지식재산권(IP) 전문가 슈바 고쉬(Shubha Ghosh) 교수는 이번 결정을 "톰슨 로이터에게 유리한 강력한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사건의 재판이 계속 진행될 예정이지만, 법원이 원고 측의 요약 판결을 승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AI 업계와 법조계에서는 이번 판결이 AI 저작권 문제에 있어 어디까지 적용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판결문에서는 로스 인텔리전스의 AI가 ‘기존 콘텐츠를 그대로 반환하는 방식’을 사용했다고 명시한 반면, 생성형 AI(Generative AI)는 광범위한 공개 데이터를 학습해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한다는 점을 구분했다.
생성형 AI 기업들은 대체로 ‘공정 이용’을 주장하며, 온라인에 공개된 콘텐츠를 학습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일부 저작권 보유자들은 AI가 기존 콘텐츠를 지나치게 유사한 형태로 재생산하는 ‘리걸지테이션(regurgitation)’ 현상을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다.
미국 특허 변호사 랜디 맥카시(Randy McCarthy)는 “이번 판결에서 판사가 ‘원저작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핵심 기준으로 삼은 점이 중요하다”며, 향후 생성형 AI 개발사의 방어 논리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그는 “이번 결정이 적용되는 범위는 아직 제한적이며,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위즈마 마턴스(Knobbe Martens) 법률 사무소의 특허 소송 전문가 마크 레자마(Mark Lezama) 역시 판결의 파급력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원이 로스 인텔리전스의 변형적 이용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향후 AI 저작권 소송에서 중요한 기준이 될 것”이라며, AI가 기존 콘텐츠 기반으로 사용자 관심을 유도하는 행위가 새로운 법적 문제로 떠오를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AI 기업과 저작권 보유자 간의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을 시사한다. 각종 저작권 소송이 더해지면서 AI 산업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