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중앙은행 총재가 페이스북의 리브라와 같은 디지털 화폐가 전 세계 준비통화인 달러를 대체하며, 금융 시스템을 재편할 수 있다는 급진적인 주장을 펼쳤다.
24일(현지시간)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마크 카니 영란은행 총재는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연설에서 달러를 대신할 가상 기축통화를 위해 중앙은행들이 협력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미국 캔자스시티 연준은행이 주최한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은 23일(현지시간) 와이오밍 주 잭슨홀에서 진행됐다. 전 세계 중앙은행 고위 관계자들, 석학들, 금융기관 및 정부 관계자들이 모이는 연례 행사로, 올해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참석해 더욱 이목을 끌었다.
현재 전 세계는 무역전쟁과 통화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는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다자간 협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 복귀를 위한 저금리 기조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마크 카니 총재는 잭슨홀 연설을 통해, 변화의 시기에 중앙은행의 역할과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글로벌 경제의 비전을 제시했다.
총재는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 고조, ▲노골적인 보호주의, ▲제한적인 정책 폭으로 더 이상의 부정적 충격을 상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글로벌 경제의 디스인플레이션 편향(적극적인 통화부양조치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낮은 인플레이션이 유지되는 것, disinflationary)이 심화되고 있다"고 평했다.
연설 몇 시간 전,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이 미국 상품에 보복 관세를 부과한 것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중국은 약 750억 달러 상당의 미국 상품 5078개 품목에 5~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마크 카니 총재는 한동안 중앙은행의 역할이 유지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게임을 바꿔야 할 것”이라며, 결국에는 극적인 조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안일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또한 총재는 전 세계 준비통화로서 달러가 가진 위상이 끝나야 하나, 한 통화의 패권이 다른 통화로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페이스북 리브라와 유사한 형태의 글로벌 디지털 화폐가 더 나은 옵션이 될 수 있다”며 “준비통화의 자리를 중국의 위안화 등, 다른 국가의 통화에 내어주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은행의 직접적인 통제권을 벗어나는 페이스북의 암호화폐 리브라는 정책입안자들의 비난과 우려를 사고 있다. 이에 대해 브뤼노 르 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일축했고, 미국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맥신 워터스 위원장은 프로젝트 중단에 앞장서고 있다.
마크 카니 총재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네트워크를 통해 공공부문에서 제공하는 새로운 ‘합성 패권 통화(SHC, Synthetic Hegemonic currency)’ 개념을 제안했다.
총재는 "해당 개념의 초기 버전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되더라도, 개념 자체는 매우 흥미로운 것"이라고 강조하며, SHC가 "국제 무역에서 미국 달러가 가진 지배적인 영향력을 수 약화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총재는 국제화로 파급효과가 더욱 커진 것을 우려하며, “금융 통합은 위기가 더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통화정책이 이전보다 더 큰 충격을 미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스템을 다극화하여 이러한 충격을 완충하고 신흥시장의 자금흐름 변동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통화정책과 국제 금융시스템을 주류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점차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고 있다”며, “국제 통화 및 금융 시스템에 대한 태만과 무시를 끝내고, 새롭게 부상하는 다양화된, 다극화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구축하자"고 주장했다.
이날 제롬 파월 미연방준비제도(Fed)은 기조연설에서 무역 불확실성이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면서 추가 금리인하에 대한 분명한 단서는 내보이지 않았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연준 의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보다 더 큰 '적'(enemy)'이냐"고 물으면서 "우리는 매우 강한 달러와 매우 약한 연준을 가지고 있다"고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