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 단속'이라는 카드를 꺼내 암호화폐 시장을 거듭 압박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안정세를 찾을 겨를도 없이 다시 한 번 큰 폭으로 하락했다.
2021년 5월 21일(이하 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류 허(刘鹤) 부총리가 주재한 51차 국무원 금융안정발전위원회 회의에서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 행위를 단속해야 한다"는 내용이 논의됐다. 국무원은 최고국가권력기관의 집행기관이자 최고행정기관이다.
류 허 부총리와 국무원은 공식 성명을 통해 "금융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해 더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면서 "비트코인 채굴과 거래 행위를 단속하고 개인 차원의 리스크가 사회 영역까지 전염되는 것을 철저히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주식, 채권, 외환시장의 원활한 운영을 유지하고 불법 증권 활동을 엄중 단속하며 불법 금융 행위를 단호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중국 당국은 시중 은행을 통해서도 암호화폐 거래 단속에 나서고 있다. 증권시보에 따르면 당국은 은행을 통해 암호화폐 거래 계좌를 식별하고 역외 암호화폐 투기 계좌 자금 이체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인민은행은 각 은행에 관련 수동/자동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고액 거래 감시를 피하기 위한 잦은 거래가 발생할 경우 상부에 보고하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중국 내부의 단속 소식이 전해지자 비트코인은 8.5% 이상 하락해 2021년 4월 최고점 6만 4000달러 대비 약 50%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더리움과 도지코인도 각각 10% 이상 하락했다.
단속 강화 배경은?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중국 당국의 제재는 채굴 부문까지 확대됐다. 비트코인의 불법적인 사용에 대한 우려 뿐 아니라 비트코인 채굴에 소모되는 막대한 전력량과 환경 문제가 반영된 조치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주요 경제 매체인 21세기경제보는 비트코인 채굴 및 거래에 대한 단속 언급 배경으로 △비트코인을 통한 단기 자금 유출 우려, △암호화폐 개념과 범위에 대한 규제 확립 계획, △탄소 배출 저감과 관련한 비트코인 채굴 전력 소비 문제를 지목했다.
중국 시사주간지 시대주보도 당국이 채굴 전력 소비와 탄소 중립 문제로 이전부터 비트코인 채굴 활동을 감시해왔다고 전했다.
상장 기업 최초로 비트코인 투자를 진행한 마이클 세일러(Michael Saylor) 마이크로스트레티지 최고경영자(CEO)도 5월 22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중국의 단속 조치가 환경 문제 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규제 강화에 암호화폐 채굴 기업 중국 이탈하나
암호화폐에 대한 단속 강화 움직임에 중국 암호화폐 프로젝트, 거래소, 채굴장 등이 해외로 본거지를 옮길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 공급의 약 70%를 담당하는 중국 채굴 산업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중국 증권시보는 5월 24일 베이징샹취안 법률사무소 형사부문 주임인 딩페이펑(丁飞鹏)을 인용해 "채굴 관련 암호화폐의 자금 조달이 전면 중단되고 암호화폐 거래소의 선물 거래 서비스 운영이 불가능할 수 있다"며 "이번 조치에 채굴기 업체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는 "이번 비트코인 채굴 단속 발언이 나오기 이전부터 일부 투자자들은 해외로 채굴장을 옮기기기 시작했다"며 "채굴장 해외 진출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계 대형 채굴풀 BTC.TOP 창업자인 장줘얼(江卓尔)은 5월 22일 자신의 SNS를 통해 "B.TOP은 중국 국경 내 사용자를 대상으로 채굴기 구매 대행 서비스 제공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중국 당국으로부터 규제 이행 압박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규제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해당 서비스 종료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후오비(Huobi) 산하 후오비몰(Huobi Mall)도 5월 24일 성명을 통해 중국 본토 고객에 대한 암호화폐 채굴 서비스를 중단하고 해외 사업에 주력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中 매체들 "금융시장 안정 위한 불가피한 조치"
중국이 암호화폐에 대한 가장 엄격한 규제를 예고한 가운데 중국 매체들은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당위성을 더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망은 5월 21일 "규제 강화는 대세 흐름"이라며 "암호화폐 투기 및 거래 리스크 방지는 규제 당국이 줄곧 주목해온 문제"라고 설명했다.
중국 국영방송 CCTV도 공식 SNS 채널을 통해 "전 세계 금융 기관과 정부는 비트코인은 금 대비 내재 가치가 부족하고 법정화폐와 같은 신용도가 없다고 경고해왔다"면서 "암호화폐 시장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전했다.
중국, 미국…전 세계 암호화폐 규제 확산
중국은 2017년부터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금지 기조를 계속해왔다. 2021년 들어 전 세계 암호화폐 시장이 크게 팽창하자 다시 한 번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시장 움직임을 잠재우고 있다.
중국은 5월 18일 인터넷금융협회(中国互联网金融协会), 중국은행업협회(中国银行业协会), 중국지불청산협회(中国支付清算协会)을 통해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단속 의지를 피력했다. 세 기관은 "금융 기관 및 결제 기관은 암호화폐 관련 서비스를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공식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중국 뿐 아니라 미국도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망을 좁혀가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중국발 단속 발언이 나오기 하루 전인 5월 20일 "비트코인 탈세 등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데 사용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현금과 마찬가지로 1만 달러 이상 암호화폐를 송금하는 경우에 사업자 보고를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업계 "중국발 충격에서 회복 전망"
중국 규제 당국이 채굴 산업까지 단속하게 되면 2017년 한 차례 위축됐던 중국의 암호화폐 역량은 더욱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업계 관계자들은 비트코인에 대한 중국발 충격은 계속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클 세일러 마이크로스트레티지 CEO는 "중국의 조치는 비트코인 채굴 과정에서 생기는 탄소 배출 문제를 획기적으로 절감하겠다는 뜻"이라면서 "단속 대상을 제외하고 나머지 비트코인 채굴업체의 수익성을 제고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발 FUD(불안을 야기해 시장 하락을 촉발하는 소식이나 오보)를 줄이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관련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비트코인 가치는 높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중국 진추블록체인연구원장 홍슈닝(Hong Shuning)은 5월 23일 자산의 웨이보를 통해 "중국이 비트코인 채굴 및 법정화폐 간 거래를 완전히 뿌리 뽑는다고 해도 비트코인이 폭락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조치는 비트코인 실제 가격보다는 중국 위안화로 표시되는 비트코인 가격에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