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탈중앙화로 자기주권을 강화하고, 데이터 공유를 원활하게 만드는 인프라 기술입니다. 데이터 공유와 같은 측면에서 디지털 뉴딜 내 블록체인의 역할을 찾고 밀접하게 연관시켜야 합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김종현 PM은 지난 22일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서 토큰포스트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김 PM은 블록체인 기술이 성장하는 초기 단계에서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제 역할을 찾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킬러앱' 개발과 함께 원천기술 개발에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종현 PM은 서울대와 미 텍사스주립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삼성SDS, 언스트앤영(EY), IBM에서 근무했다. 이후 국민은행 최고정보보안책임자(CISO), 아주대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과기정통부 블록체인 PM을 맡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과 미래를 고민하는 김 PM을 통해 우리나라 블록체인 기술의 현주소와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2부에 걸쳐 들어본다. <편집자주>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PM을 맡고 있는 김종현입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IITP)에 소속돼 있습니다. 전에는 삼성SDS, IBM, EY, 국민은행에서 근무했고, 아주대에서 사이버보안학과 교수를 역임하다 여기로 오게 됐습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지난 2015년 국민은행 최고정보보안책임자(CISO) 재직 당시 보안기술로 할 수 있는 새로운 혁신 분야를 찾다가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정보통신기획평가원은 기술 R&D 예산을 수립하고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기관입니다. 과기정통부에 8명의 PM이 있고, 각기 자기 기술 분야를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블록체인 정책 수립과 기술 로드맵 작성, 신규 과제 기획, 예타(예비타당성조사) 사업을 통한 장기 R&D 예산 확보 등의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Q. 최근 정부가 디지털 뉴딜 관련해서 4차산업 기반의 기술을 육성하고자 추진 중인데, 그럼 4차산업 전체 지형에서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위치는 뭐라고 볼 수 있을까요?
최근 4차산업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R&D 예산을 보면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 비중은 굉장히 크고 블록체인은 매우 작죠. 1조원 가량 되는 예산에서 블록체인에 할당된 예산이 200억원 밖에 안되거든요. 2016년에 세계경제포럼(WEF)에서 4차산업의 양대기술로 인공지능과 블록체인을 꼽았는데, 4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블록체인 분야가 많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해외의 경우는 민간 주도로 잘되고 있으니까 정부에서 안 하더라도 활성화되어 있다고 봐야겠죠. 반면에 우리나라는 가상화폐공개(ICO) 전면금지 등으로 민간이 하기는 어려운 분야고, 정부에서 지원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죠. 그런데 예산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에 주로 많이 쓰이다 보니 기업들이 블록체인에 주력하기 어렵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도 수익성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축소하려고 하는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이죠.
다행히 지난 8월에 5년간 1,133억원의 예산을 제안한 블록체인 예타사업이 승인되면서, 블록체인 기업에 단비가 될 기술개발 사업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해당 예산으로 당장 내년 3월에 향후 5년간 기술개발을 수행할 사업자를 선정하는 9개 과제가 시작됩니다. 과제는 블록체인 확장성을 해결할 수 있는 합의알고리즘 개선, 스마트 컨트랙트 취약점 개선, DID와 프라이버시 보호 강화와 대용량 데이터를 다룰 블록체인 시스템 개발에 집중될 겁니다.
Q. 블록체인 관련 예산이 인공지능, 빅데이터와 같은 기술에 비해 차이 나게 적다는 의견이 많은데요. 이유가 뭔가요?
아무래도 블록체인은 새로운 기술이잖아요. 새로운 기술에 투자하는 건 쉽지 않죠. 이번에 예타가 통과되면서도 어려웠던 게 '투자를 하면 성과를 볼 수 있을까', '아직 신기술인데 지금 투자하는 게 맞느냐' 하는 부분이었어요. 지금은 인사이트를 가지고 집중투자 해야 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때이지, ROI(투자수익률)를 계산하기에는 너무 이른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10년 뒤에 통할 기술이다'라고 하면 반드시 투자해야 되거든요. 이를테면 과거에 삼성전자가 반도체에 투자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에 있는 거잖아요. 당시엔 반도체에 투자한다고 하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때 투자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삼성전자는 없겠죠.
Q. 블록체인 기술이 이렇다 할 결과를 보여주지 못하면서 초기에 가졌던 기대가 많이 식었다는 평가가 있더군요. 아무래도 블록체인은 인프라 기술이니까 가시적인 성과가 잘 보이지 않아서 그렇다는 견해도 있고요. 국내 블록체인 기술 수준과 산업 현황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먼저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새로운 기술이다 보니 아직 정의가 잘 안 되어있어요. 문제는 조금 공부하고 아는 척하는 사람들, 기술을 왜곡하는 사람들이죠. 기술 초기에는 기술이 정립돼 나아갈 수 있게 모두가 초심자의 자세로 같이 연구해나가야 하는데, 조금 공부하고 기술에 대해 잘못 정의해버리니까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거죠.
대표적으로 '가상화폐가 꼭 있어야지 블록체인이 활성화될 수 있다'라는 섣부른 견해가 기술에 대한 이해를 오도하고 있다고 봅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가상화폐가 덮고 있으니 기술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고요. 지금은 기술이 성장하는 단계거든요. 성장하는 단계에서 우리가 뭘 기대해야 될 것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1969년, 인터넷이 세상에 처음 나왔고, '아마존'이라는 회사가 25년 뒤인 1994년에 나왔어요. 인터넷이 나온 지 30년 뒤에야 닷컴 버블을 맞았죠. 또 아마존이 설립 후 10년 동안은 크게 각광을 받지 못했거든요. 그때 킬러앱을 이야기했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런데 블록체인은 지금 킬러앱을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블록체인 기술을 자꾸 다른 기술하고 비교하며 경쟁하다 보니 기술에 대한 기대치가 자꾸 높아지는 거죠. 지금 당장 성과를 내야 한다는 근시안적인 태도를 버리고, 인내심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보고 가야 합니다. 지금 정상적으로 가고 있는 거고요.
다만 IT 기술이 워낙 발전했기 때문에 인터넷보다는 짧은 라이프 사이클 안에서 지금으로부터 5년이나 10년 뒤 킬러앱이 나오고, 기술이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술이 발전하는 시간을 얼마나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전문가들이 노력할 부분이겠죠.
Q. 블록체인 확산을 위해서는 킬러앱과 서비스 개발이 시급하다는 견해가 주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반면에 킬러앱 개발보다는 원천기술의 개발이 이뤄져야 글로벌 시장에서 진정한 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보는 입장도 있는데요. 이 두 가지 측면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미 사람들의 기대치가 많이 올라갔죠. 그래서 킬러앱 개발도 노력해야 할 것 같고, 동시에 블록체인 원천기술 개발도 노력해야 되고요. 그런데 블록체인이 상용화하기에는 아직 TPS로 대표되는 확장성 문제가 있어요. TPS를 올리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블록체인 핵심 기술들을 종합적으로 개발해야 올라갈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합의 알고리즘의 개선, 메인체인이 아닌 Layer2 활용과 같은 소프트웨어 측면과 암호화 연산을 위한 칩셋 개발과 같은 하드웨어 측면 등 다양한 기술개발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이후 대용량 애플리케이션이 생기면 처리할 수 있게 되고, 블록체인이 대중에게 확산될 수 있겠죠.
블록체인 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적절한 응용분야를 찾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도 하면서 해당 기술이 뭘 잘할 수 있을까를 동시에 찾아야 하는 상황이에요. 인터넷 상거래 등 모든 활동이 온라인으로 이뤄지게 된 것이 스마트폰이 나오고 나서부터죠. 다시 말해 하드웨어가 뒷받침돼야 되거든요. 또 오늘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기존에 싸이월드와 같은 초기 형태의 SNS가 있었기 때문에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상승작용이 잘 되었고요. 그런 점에서 앱 개발과 기초기술 개발을 동시에 해서 블록체인이 확산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그 시점을 5년 내지 10년 후로 보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