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정무위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이하 가상자산법)을 지난달 30일에 통과시켰다. 이르면 내년 7월에 시행될 예정인 국내 첫 가상자산 관련 법을 업계에서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번에 통과된 1단계 법안의 실효성과 한계와 관련된 잔여 쟁점은 남아 있는 상태다.
가상자산 관련 규제는 2021년 3월부터 시행된 '특정 금융 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최초다. 하지만 특금법은 가상자산사업자에게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적용하기 위한 것이라 엄밀히 말하자면 직접적인 가상자산 관련 규제로 보기 어렵다.
지난 5월 정무위 법안 소위에서 정무위원들과 각 기관은 점진적, 단계적 입법 방향에 합의하고 투자자 보호를 중심으로 1단계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한 입법을 우선 추진키로 했다.
1단계 입법은 고객자산 보호, 불공정 거래 등 이용자보호 규제 도입이 중심이다. 2단계 입법은 미카 등 가상자산 국제기준에 맞춰 가상자산 발행과 공시 등 시장질서 규제를 보완하는 방향으로 추진키로 했다.
1단계 법안 시행에 이어 2단계 입법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 그 동안의 입법 공백에 대한 우려와 관련,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전무했을 때와 비교했을 때 1단계 법안이 마련된 것 자체로 상당한 발전으로 본다"면서 "1단계 법안이 통과되면서 기존에 규제 및 처벌할 수 없었던 부분에 대한 기준이 상당 부분 마련되었기 때문에 2단계 법안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여전히 규제 공백이 크다고 볼 것 까지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2단계 입법은 이전보다 충분한 토론 및 관련 시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접근도 필요하다고 봤다.
시장이 안착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될 텐데, 산업 진흥 없이 규제만 치우치면 관련 스타트업 및 시장이 죽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 변호사는 "미카 등의 국제 기준과 맞춰야 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안전하고 공정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여러 요건을 갖추면서 2단계 입법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예를 들어 가상자산 사업자의 경우 어떤 경우는 법인으로 해야 하는지, 어떤 경우는 뱁서를 발행해야 하는지, 백서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하는지 등 기준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가상자산은 '테라·루나 사태'의 주범인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가 지난 4월 체포되고, 연이어 김치코인 투자와 연루된 납치·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관련 논의에 불이 붙었고, 지지부진 했던 법안 통과도 급속도로 이뤄졌다.
오랜 시간을 거쳐 가상자산을 정의하는 용의에서부터, 중앙은행 디지털하폐(CBDC) 포함, 가상자산 위원회 설치 등이 주요 논의사항으로 거론됐다. 가상자산을 정의하는 용어도 혼재 상태였다가, 지난 2021년 특금법 개정 때 회의에서 ‘가상자산’으로 통일했다.
제대로 된 가상자산 관련 규제란 점에서 긍정적인 견해가 많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은 ▲가상자산 이용자 자산 보호▲가상자산 시장의 불공정 거래 행위 규제 ▲금융당국의 가상자산 시장‧사업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제재 권한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는 가상자산 매매‧중개 등과 관련해 이용자로부터 예치받은 예치금을 고유재산과 분리해 예치 또는 신탁해 관리해야 한다. 또 이용자 가상자산을 자체 소유 가상자산과 분리해 보관해야 한다.
이용자가 위탁한 동일한 종류‧수량 가상자산을 실질적으로 보유하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 이상은 인터넷과 분리해 보관해야 한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아도 가상자산 보관, 관리가 가능한 콜드월렛에 보관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가 권장하는 가상자산 보관 수량은 전체 자산 중 70%다.
◇ '불공정거래의 규제' 및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금지' 눈여겨 봐야
이번 가상자산법 내용 중 가상자산사업자 입장에서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할 대목으로는 '불공정거래의 규제'다. 전반적으로 이번 가상자산법은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에서 정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 유형을 상당 부분 차용하는 형태로 입법이 이뤄졌다.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과 과징금 등 무거운 제재가 뒤따르기 때문에 미리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 미공개 중요정보 이용 금지도 눈여겨 봐야 한다. 미공개 중요정보란, 이용자의 투자판단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보로서 불특정 다수인이 알 수 있도록 공개되기 전의 것을 말한다.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사업자 또는 가상자산을 발행하는 자의 임직원이나 주요주주 등 내부자는 물론, 공무원 등 법령에 따른 인허가 권한을 갖는 자, 가상자산사업자 등과 계약을 체결하는 자와 같은 준내부자, 이들로부터 정보를 수령한 자를 모두 포함하여 미공개 중요정보를 이용한 가상자산 매매 등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더불어 시세조종행위 금지, 사기거래 부정거래행위 금지와 자기발행코인 매매행위 등도 금지되기 때문에 유형 별로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 당국, 무법천지 가상자산 시장 주범
한편, 기존의 가상자산법에서 다루지 못하는 범위에 대해선 이미 있는 법으로 규제 및 처벌이 가능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구태언 법무법인 린 변호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반적 상거래질서 규제와 전자상거래 소비자 보호를 맡고 있는 완벽한 규제시스템을 갖고 있다"며 "가상자산도 그 성질에 따라 이 규제체계를 맡고 있는 부처들이 자신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구태언 변호사에 따르면, 기존에 있던 규제로도 이용자 보호가 가능했다는 얘기다.
구 변호사는 "정부 입장에선 특금법을 만들어야 했으니까 규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부는 가상자산에 호의적이지 않다"고 덧붙였다.
마침 지난해 테라-루나와 FTX 사태 등 좋은 소재가 생겼고, 이를 통해 또 새로운 법안을 만들어서 규제하려고 한다는 설명이다.
테라-루나도 검찰이 투자계약 증권으로 보고 있는데, 증권이라면 진즉에 금융위가 관리했어야 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금융위의 직무유기가 되는 것이다. 만약 한국거래소에서 증권거래 신고서를 내지 않은 불법 증권이 유통된다면 어떻게 되겠냐"며 "하루인베스트와 델리오 사태만 봐도 같은 사업을 하는데 규제하고 또 다른 한 업체는 규제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실물자산을 기반으로 한 가상자산은 금융위를 제외한 각 부처가 규제하면 되고, 소비자 보호도 해당 부처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상자산거래소는 전자상거래업소이므로 공정위가 전자상거래 소비자보호법으로 규제하면 된다고 그는 강조했다.
◇ 구태언 변호사, 암호자산 발행공시 최우선 과제 제기
구태언 변호사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에 발행공시 및 발행 단계의 규제가 미비한 점을 지적했다.
그는 "암호자산의 성질에 따라 실물 암호자산과 가상 암호자산을 구별해 그에 따른 규제를 적용하고, 미흡한 발행공시 규제를 보완하는 게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유럽연합(EU) 등 암호자산 진흥에 앞서가고 있는 국가들은 불공정거래 단속 이전에 '암호자산의 발행공시 규제'를 입법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즉, 발행공시 규제를 최우선으로 선행하면 가상자산의 변동성이 줄고 이에 따라 불공정거래의 유인이 급격히 감소할 것이라는 얘기다.
또 "새로운 암호자산을 발행할 때는 발행공시 규제에 따르고, 이미 발행돼 상장된 암호자산들은 공시를 따르게 법으로 기준을 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 변호사는 "발행주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주주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등을 다 공시해야 이용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가상자산을 바라보는 시각도 경제주권 차원에서 새롭게 봐야 한다며 앞으로 통화로 결제하지 않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이용자보호' 효과 기대...NFT 종류 따라 해석 달라져
김익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대체불가토큰(NFT)과 관련해선 증권적 성격도 가질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종류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고 봤다.
예를 들어 좁은 의미의 미술품을 기반으로 한 것 등 좁은 의미의 NFT의 경우는 증권성이 낮지만, 매도매수 등 거래를 전제로 하는 것들은 증권성이 인정될 수 있다.
NTF의 경우 하나의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고 해석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영역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김익현 변호사는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으로 많은 범위의 투자자보호와 규제가 가능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형법 상 '사기'로 처벌할 수 있는 범위와 '가상자산법'으로 규제 및 처벌할 수 있는 범위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가상자산법의 적용 범위는 특금법과 거의 유사하게 되어 있고 이미 적용 범위 관련 해석론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 있다.
김 변호사는 "증권이 아닌 대부분의 가상자산에 대해서는 적용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최초에 코인을 발행하는 단계는 사기죄로 의율할 수 있으나 그 이후 전전 유통되는 부분에 대해서 사기죄 의율이 쉽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 가상자산법의 불공정거래행위 규정으로 규정이 가능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회에서는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의 시급성을 고려, 장시간 소요되는 국제기준 정립을 기다리기보다 국내에서 선제적으로 필요, 최소한의 규제 체계를 우선 마련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특히, 가상자산에 관하여 불공정거래행위를 한 자에 대하여는 형사처벌 외에도 이득액의 2배 또는 40억원 이하의 과징금 부과가 가능하도록 관련 근거가 신설된 점으로 볼 때 강도 높은 규제가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1단계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을 통해 가상자산 불공정거래의 규제 사각지대를 엄단하겠다는 국회의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눈여겨 봐야할 점은 이번 가상자산법 제정에 따라 가상자산시장을 개설·운영하는 가상자산사업자는 가상자산의 가격이나 거래량이 비정상적으로 변동하는 거래 등 이상거래를 상시 감시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담한다는 점이다.
가상자산 이상거래의 구체적인 유형은 대통령령에 규정될 예정으로, 가상자산거래소는 이상거래 감시 과정에서 불공정거래행위 의심사항이 발견되면 즉시 금융당국에 통보하여야 하고, 혐의가 충분히 증명된 경우에는 즉시 수사기관에 신고하고 해당 사실을 금융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특히, 전문가들은 이번에 신설된 시장감시 의무가 가상자산거래소에게 꽤 큰 규제 부담을 야기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이 법이 시행될 내년 7월 전까지 거래소 내 이상거래를 감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관련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적 조직과 물적 설비를 구축해야 한다.
또 가상자산법은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검사 및 조치 권한을 명확히 규정해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금융당국의 감독 및 제재권한은 대폭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 최종 법안, 집단소송 빠져
이번 가상자산법에는 가상자산 관련 집단소송이 최종 통과된 법안에서 빠졌다.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은 까다로운 요건 때문에 활용이 많지 않았는데, 가상자산 관련 집단소송의 경우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을 그대로 준용하도록 원 법안에는 포함되어 있었다.
입법 과정에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법안의 내용이 수정 내지 보완된 것이 아니라 아예 삭제한 것으로 보인다. 활용도가 낮다 하더라도 이용자 보호를 위해서 가상자산 관련 집단소송이 가능하도록 법을 통해 보장하는 것이 의미 있는데, 법사위 통과까지 살아 있었던 항목이 최종 본회의에서 삭제됐다.
가상자산 매매 또는 거래 과정에서 다수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는 이용자보호에 방점을 둔 1단계 법안의 취지를 살리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