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에 대한 명확한 법적 개념과 분류의 부재로 법조계 역시 혼란을 겪고 있다면서 근본적인 이해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국정보법학회가 주최하고 한국블록체인법학회, 홍익대학교 법학연구소와 공동 주관하는 '2023년 한국정보법학회·한국블록체인법학회 하계공동 정기학술세미나'가 24일 오후 2시 광화문 변호사회관 조영래홀에서 개최됐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의 최신 동향과 법적 쟁점'을 대주제로, 다양한 법적 이슈와 입법, 판례 동향을 광범위하게 다뤘다.
기조발표와 주제발표에 이어 종합토론 세션을 가졌다. 법무법인 광장 윤종수 변호사가 좌장을 맡았으며 법무법인 주원 정재욱 변호사, 창원지방법원 밀양지원 김성인 판사, 법무법인 린 구태언 변호사, 법무법인 세움 남현 변호사가 토론자로 나섰다.
구태언 변호사는 "블록체인이 등장한지 10여년 만에 많은 법적인 문제를 야기하며 제도권에 편입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면서 "정보 기술의 발전이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연합이 '미카(MiCA)'를 통해 가산자산 진흥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특금법뿐 아니라 업권법 역시 가상자산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분류 없이 규제하며 해석상 혼란을 남기고 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약 6년 전에 가상자산 이용 유사수신행위 처벌, 암호화폐공개(ICO) 등에 대한 입법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아직까지 작업이 없다는 점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른 토론자들 역시 가상자산 관련 법적 명확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사법적 영역에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남현 변호사는 테라·루나, 스테이킹 보상 등이 계약 상의 증권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규제 필요성은 있지만 기존 체계로만 다루기는 어렵다면서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입법 및 규제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 변호사는 암호화폐의 투자계약 분류는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2006년 국내 자본시장법에 따른 투자계약 정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투자자가 타인과 공동 사업을 한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이어 "투자계약은 결국 공동 사업 계약으로, 수익 배분권 같은 권리와 의무를 명시해야 한다"면서 "이 경우 암호화폐는 어떤 권리를 가지는지 아무도 확인할 없는 블라인드 계약인 것인데, 이를 투자계약으로 인정하면 안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증권 당국 주장처럼 암호화폐가 투자계약에 해당하려면 백서에 권리를 명시하고 그 권리에 동의하면 투자하도록 해야 하며 그 계약이 암호화폐와 같이 붙어 유통되도록 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지금 같은 형태에선 일반 물건 매매, 미술품 거래 등을 투자계약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면서, 일반적인 거래에서도 시세차익을 추구하는 일이 있는 만큼 암호화폐를 통한 시세차익 추구 사실이 투자계약이라는 근거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정재욱 변호사는 "기존 판결을 보면 약간 논리적 정합성이 어긋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면서 "가장 기초적인 법적 개념을 설정하는 게 가장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데, 이 같은 개념 확립 없이 규제하다 보니 어그러진 부분이 나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가상자산 생성은 유통이 아니라 발행에서 시작되는 만큼 선후관계를 분명히 하여 발행 규제부터 들어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종수 변호사는 법원 안에서도 근본적인 쟁점을 다루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암호화폐 거래소의 상장 행위를 기존의 매커니즘으로 보는 것이 맞는지도 명확하지 않고 주장했다.
그는 "위믹스 사건에서 거래소 측 주장 중 하나가 '계약관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면서 "거래소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코인을 유통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며, 발행인은 유통에 관여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통 단계에서는 이용자 간 거래이기 때문에 발행인은 유통에 관여할 수 없다는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는데, 근본적인 문제였기 때문에 법원은 판단을 안 하고 넘어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구 변호사는 "거래소가 특정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지원하는 것은 실제로 발행자와 아무 상관이 없을 수 있다"면서 "중고 책방이 중고책을 거래하면 출판사와 상의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거래소의 암호화폐 취급은 사적 계약이거나 규제 밖에 있는 일"이라면서 "해외 규제가 유통이 아닌 '발행'에 초점을 두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암호화폐가 향후 상당히 안정적인 지위를 갖게 된다면 기존 발행 규제에서 더 나아가 사업자의 의무적인 측면까지 다루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 변호사는 "탈중앙화 측면에서 논의돼야 할 부분들이 많은데 부작용 때문에 묻히고, 기존 시스템에 맞춰 급히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특히 암호화폐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물권성'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했다.
물권은 타인의 행위를 거칠 필요 없이 물건을 직접 지배하는 권리를 말한다. 반면에 채권은 특정인에 대해 급부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채권에는 배타성이 없지만 물권에는 배타성이 존재한다.
이에 대해 구 변호사는 "가치의 인터넷이 말하는 새로운 시대에 물건 및 채권 분류는 아날로그적인 분류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카에 정의된 자산준거토큰은 현물 기반 토큰으로 '소유권'을 가지며 물권을 담아낼 수 있지만, 용역 기반 준거 토큰은 '채권'을 담을 수 있다"면서 "즉 물권과 채권을 모두 담을 틀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정 변호사는 물권성에 대해 현실 인식과 법률 해석 간에 괴리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사람들은 일반 파일과 달리, 가상자산에 대해 소유권 인식이 있다"면서 "법원은 인정하지 않지만 사용자는 물권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미 수조 달러로 가치를 부인할 수 없는 상황인데, 법조계 쪽에서는 기존 틀에 끼워 맞추다 보니 오해가 생기고 현실과 동떨어진 판결이 나오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 변호사는 "현재는 현상을 설명하는 차원에서 개념 정의가 들어가고 있다"면서 "근본적인 개념 정리가 없어 실무 쪽에서는 혼동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개념 정의가 있어야 특금법이나 이용자보호법에도 적절히 적용될 수 있다면서 "더 근원적인 민법적 연구를 통한 명확한 방안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 변호사는 "과거에 판결을 하면서 물권성 문제를 상당히 고민한 적이 있는데 별다른 방안이 없었다"면서 "기존 틀에 끼워 맞춰야 한다는 건 한계가 있다는 뜻이니 새로운 틀을 잘 짜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성민 판사도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기술 발전으로 인한 전통 자산과 개념 충돌이 있는 것 같다"면서 "법원 입장을 이야기하자면, 입법과 기존 법리 한계 안에서 고민하고 답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다양한 입법과 정책이 만들어 해결될 수 있다"면서 "그전까지는 많은 당사자와 변호사들이 다양하고 구체적인 주장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실무에서 이해가 적은 경우가 있는 만큼 가상자산에 대한 여러 가지 법리적인 고민들을 논의해야 하고, 더 다양한 주장이 법원에 들어와야 법원도 기존 틀 안에서 그나마 합리적인 결론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