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를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혁신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큰 효과를 보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블록체인의 핵심인 분산저장 환경에서 개인정보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또 블록체인은 분쟁을 조절할 제3의 외부 기관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다.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 활용과 '개인정보보호법'이 충돌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개인정보 처리 목적을 달성한 경우 해당 정보를 파기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블록체인은 전체 블록의 무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 삭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아가 민영건강보험이나 실손보험의 경우 의료법상 의료정보는 외부시스템과 연계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점도 블록체인 확산에 제약 조건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블록체인 도입으로 일일이 치료비 영수증을 받아서 보험사에 제출하는 과정을 줄일 수 있지만 보험사 입장에서는 수익을 추가로 창출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법이나 제도가 도입되는 경우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어서 안정성이 강조될 수 밖에 없다"며 "보험산업이 블록체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는 법적 환경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블록체인 도입으로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비자 불만을 줄여야 한다"며 "실손 보상의 원칙은 보상이 핵심 이지만 손해금액과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을 때 법적인 분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정무위 법안소위 통과, 의료계 반대로 최종 의결 '미지수'
지난달 16일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내용을 담은 '보험업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됐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소비자의 편익을 위해 실손보험 청구 불편을 해소하라고 권고한지 14년 만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은 가입자 대신 의료기관이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사에 전산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험개발원 등을 전송 대행기관으로 지정하면 된다.
아직 정무위 전체회의,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 본회의 등 절차가 남아 있는데 이들 관문을 모두 통과하면 종이 서류를 팩스로 보험사에 넘기던 소비자들의 불편이 크게 줄어든다.
하지만 의료계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향후 본회의에서 최종 의결될지 여부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의료계는 "비급여 의료비 심사에 관련 개인정보가 활용될 수 있어 우려된다"며 "전송 대행기관 지정은 의료 정보 집적과 유출 우려가 크고, 보험사들이 소액 보험금 낙전수입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것은 보험금 지급과 갱신 거절을 통해 손해율을 낮추기 위한 의도"라고 비판했다.
보험사들은 "청구 방식만 전산화하는 것일 뿐 기존과 동일한 증빙자료를 제출받는 상황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가입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며 "오히려 전산화된 자료를 바탕으로 전산 심사나 자동 심사가 가능해지면서 보험금 지급이 신속·정확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개인 실손 보험금 청구건수는 최근 큰 폭으로 늘었다. 2016년 5576만건이던 청구 건수는 2020년 1억626만건으로 급증했다.
◇ 보험업계, 블록체인 통해 다양한 서비스 제공...일부 한정
'실손의료보험 청구 간소화' 보험업법 개정안이 제자리 걸음중인 가운데 보험업계가 청구 간소화 기술 등을 보유한 기업과 제휴를 통해 다른 방안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교보생명은 블록체인 본인인증을 탑재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App)으로 일부 병원에 한해 보험금 청구 간소화를 선보이고 있다. 고객이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고 수납을 하면 병원에서 보험계약자 확인을 진행해 보험회사로 의무기록 제출과 보험금 청구가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시스템이다.
가입자, 보험사, 의료기관이 함께 참여해 인증 정보를 공유하는 블록체인을 통해 보험금 자동청구 여부가 결정되고 청구부터 지급까지의 전과정이 블록체인에 기록돼 관리된다.
농협생명은 올해 초에 삼성SDS가 선보인 기업용 블록체인 플랫폼 '넥스레저'를 적용해 강북삼성병원과 한림대동탄성심병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보험 가입자는 의료비 결제 후 받은 알림톡 링크로 간편하게 보험금 청구 가능 하며 블록체인 기술 적용으로 병원과 보험사는 위∙변조 차단, 비용 절감 등 업무 효율성 증대가 목적이다.
레몬헬스케어는 NH농협손해보험과 스마트 헬스케어 플랫폼 '레몬케어'(LemonCare) 기반의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 ‘레몬케어 뚝딱청구’를 선보였다. 레몬헬스케어는 최근 KT의 네트워크 블록체인 기술을 '레몬케어 뚝딱청구'에 접목해 서비스 제공한다.
개인 의료 데이터의 보안 강화를 위해 국내 최초로 블록체인 기술을 '실손보험 간편청구' 서비스에 접목해 상용화한 케이스다.
그러나 아직 서비스가 도입된 병원이 극히 일부로 한정돼 있는 것이 단점이다. 데이터 전송과 보안을 위한 인프라 준비 기간이 오래 소요되기 때문이다.
지자체중에선 부산시가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 제8차 사업인 '블록체인 기반 실손보험 간편 청구 서비스'를 진행한다.
사업은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해 의료기관 연동 진료데이터 및 청구서류의 원본인증, 보험 청구 이력 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하고 실손보험 청구양식 표준화 개발로 보험사와 직접 연동을 통한 보험 청구 간소화 및 청구 편의성을 제공한다.
사업 착수는 오는 2024년으로 부산대병원을 중심으로 실손보험이 청구되는 플랫폼을 구축하고 세종텔레콤과 부산광역시가 이를 지원한다.
규제 특례 요청내용은 '의료법 시행규칙' 제13조의3 제2항 등 4개로, 환자의 대리인은 자연인이 아닌 법인도 가능하도록 허용하며 관련 서식 및 제출서류도 법인에 부합되도록 허용받게 된다.
하지만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는 변경하기 어렵다. 잘못된 거래 정보나 오류가 있는 경우에도 수정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오류 발생 및 거래 내용을 수정해야 할 경우에는 추가적인 절차나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많은 보험사들이 병원과 연계해 진행 하는 부분 이기 때문에 협회 차원에서는 별다른 입장은 없다"며 "블록체인 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들이 보헙산업과 접목되는데 지원할 수 있는 부분은 진행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만 내놨다.
◇ 새로운 시스템 전환...경제성 평가 필요
블록체인은 기술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 되지만 새로운 시스템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경제성 평가가 필요 하다.
현제 보험 산업은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으로 전산회계시스템을 교체 하면서 직접 비용만 100~300억원을 지출했다. 블록체인을 도입 하는 경우 상당한 비용이 소요 되며 기존의 시스템과 분산원장 시스템을 도입해 이중으로 시스템을 운용할 가능성이 높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분산원장 기술은 손해보험에서 후선업무를 최적화 시킬 수 있으며 보험금 청구 효율화에 기여할 수 있다"며 "하지만 블록체인 도입은 한정된 분야에서 시행착오를 경험한 이후 검증 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