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기술이 점차 공공영역에도 파고들고 있다.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는 점과 특성을 이용해 온라인 투표에서 전자근로계약과 지역화폐까지 블록체인은 광범위한 공공사업에 활용되고 있다.
블록체인은 데이터를 체인처럼 연결해 저장하는 기술로 네트워크의 모든 참여자들은 데이터의 내역이 기록된 원장을 소유한다. 이로 인해 데이터 위·변조가 어렵기 때문에 시스템 운영 측면에서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
합의된 알고리즘이 있기에 사용자는 블록체인에 저장되어있는 정보를 신뢰할 수 있다.
◇ 위변조 불가 온라인 투표 체계 구축...지역화폐 전산화도 한 몫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블록체인 도입으로 얻는 대표적 이점은 높은 보안과 신뢰성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개발한 온라인 투표 '케이보팅(K-Voting)'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신뢰성을 확보한 대표적 서비스로 꼽힌다.
케이보팅은 정당·공공기관 주민투표 등에 사용되는 선관위의 온라인 투표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시스템이다. 블록체인의 익명성을 통한 개인정보 보호와 부정 투표 방지 기능을 강화하기 위함이다.
오는 3월 실시되는 국민의힘 부산시당 전당대회 역시 본경선 투표와 결선투표가 케이보팅으로 진행된다. 아울러 과기부는 올해 안에 온라인 투표 수용 규모를 기존 100만명에서 1000만명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지방정부에서도 행정에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기초자치단체들은 지역화폐 보급을 위해 블록체인을 시범적으로 도입하는 모습이다.
서울특별시 노원구는 지난 2018년부터 핀테크 기업 글로스퍼와 함께 프라이빗 블록체인 방식에 기초한 '지역화폐 노원(NW)'을 지불결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화폐는 노원구의 전용 암호화폐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며,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자체 검증 센터의 상호 검증을 통해 거래 장부가 형성된다.
서울 서초구 역시 블록체인을 활용한 '서초코인' 사업 확대에 나섰다.
서초코인은 서초구 내 운영시설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상자산으로, 자원봉사나 각종 기부에 참여하면 모바일로 받을 수 있다.
서초구는 지난해 9월부터 서초코인을 구청 통합강좌시스템·자치회관·복지관 등에 연동해 결제 기능을 구축했다. 아울러 서초코인 사용자를 기존 노년층에서 구민 전체로 확대하기 위해 조례 개정을 진행하고 있다.
서초코인 운영 조례안을 발의한 전경희 서초구의원은 "서초코인은 전산화, 온라인화를 통해 행정비용을 줄이고 블록체인을 도입해 개인정보 보호 등 여러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 일자리 사업에도 쓰이는 블록체인...플랫폼 표준화, 법적 정비 문제 등 남아
블록체인 기술은 공공근로 계약에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는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공동으로 블록체인 기반 공공일자리 사업을 위해 표준화된 전자근로계약과 이력관리 플랫폼 구축을 완료했다.
이는 서울시 공공일자리 사업의 근로계약을 블록체인 기반 전자계약으로 대체하는 사업이다.
기존 공공일자리 사업은 복잡한 대면 행정과 과다한 종이문서 작성으로 근로자의 부담이 적지 않았다. 전담 조직과 담당자의 잦은 변경으로 인해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고 개인정보, 계약정보, 증명서 등 정보유출 위험도 있었다.
이에 반해 새 플랫폼은 블록체인 기술을 통한 전자계약의 신뢰성 확보는 물론 탈중앙화ID(DID) 기술을 도입해 근로자들이 스스로 경력을 관리하고 자격을 증명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렇듯 블록체인 공공서비스는 점차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지만, 앞으로 서비스가 더욱 확대되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아있다.
특히 플랫폼 표준화는 블록체인 서비스의 상호연계를 위해 풀어야 할 주요 과제다. 블록체인은 발행사·유통사별로 플랫폼이 다를 수 있어 향후 서비스가 연동될 가능성을 감안하면 국가 단위의 플랫폼 표준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정부를 이달 들어 처음으로 표준화를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지난 9일 표준화된 플랫폼 구축을 논의할 '토큰증권협의회'를 구성했다.
블록체인 시스템이 사람을 대신해 일을 하는 만큼, 행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법적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문제도 있다.
현재 지자체는 블록체인 기반 기술을 다룰 전문인력이 없는 까닭에 블록체인 서비스 운영을 대부분 아웃소싱하고 있다. 때문에 블록체인 기반 지역화폐 지급·결제에 문제가 생겨 피해자가 나온다면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블록체인 사업을 둘러싼 부처 간 갈등 가능성도 여전하다. 현재 블록체인 관련 사업은 금융위원회, 과기부, 서울시 등 사업마다 관할 부서가 달라 향후 사업들이 서로 연계가 될 때 업무가 충돌할 여지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블록체인 사업을 전문적으로 관장한 단독 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단독기구 설립에 필요한 일명 '디지털자산법' 등 기본법도 마련되지 않아, 국회와 정부의 행동이 요구된다.
이중엽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블록체인 서비스 제공을 위한 기술력은 충분한 수준이지만 법·제도적 지원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글로벌 메가트렌드를 고려한 인프라 정비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며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통한 실질적인 효용 확보라는 기본적인 가치를 기반으로 블록체인 활용 확산을 위한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