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믹스가 유통량 허위 공시로 지난 8일 국내 4대 원화마켓 거래소 상장폐지 결정을 받으면서 가상자산 유통량 공시체계의 확립이 시급하다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지난달 24일 '디지털 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이하 닥사)'는 게임 개발사 위메이드가 발행한 '위믹스(WEMIX) 코인'에 대한 거래 지원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국내 5대 거래소에서 위믹스 코인을 상장폐지한 것이다.
닥사 측은 "위메이드가 제출한 위믹스 코인 유통량 계획과 실제 유통량이 달랐고, 이러한 사실을 투자자에게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위메이드 측은 상장폐지 통보에 반발해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하지만 심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민사50부는 지난 7일 위믹스 코인을 발행하는 위메이드의 싱가포르 소재 계열사 위믹스 피티이 엘티디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닥사 소속 4개 가상화폐 거래소를 상대로 낸 거래지원 종료 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이에 따라 지난 8일 오후 3시로 예정된 위믹스의 상장폐지가 확정됐다. 재판부는 쟁점이 된 코인 '유통량'에 대해 "(코인 유통량은)주식과 달리 개념 상정이 어렵기 때문에 수요 공급의 원칙에 의존해 가격이 결정될 수 밖에 없는 코인의 특성상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에 가장 중요한 정보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판부는 "가상자산 거래소로선 가상자산의 유통량에 대해 점검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될 경우 투자자 보호를 위한 공익 차원의 소명 요청과 함께 상당한 조치를 취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며 "위믹스 측의 유통량 위반은 거래소와 체결한 상장계약상 거래지원 종료 사유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이유로 한 상장폐지 결정에는 하자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후 위메이드는 지난 13일 서울중앙지법에 즉시항고장을 제출하며 법원 결정에 불복해 구제를 요청했지만, 국내 주요 거래소 상장폐지와 더불어 급락한 위믹스 토큰 가격은 반등하지 않고 있다.
사진 = 주식시장의 유통량 관련 공시 /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대표적 금융상품인 주식(Stock)의 경우 자본시장법을 기반으로 한 신속·정확한 유통량 공시 의무가 규정돼있다.
유가증권시장공시규정 제7조 제1항에 따르면, 상장법인은 증자 또는 감자, 주식의 소각, 자기주식의 취득∙처분(신탁계약 등의 체결∙해지) 등 법인의 재무구조에 변경을 초래하는 사항에 대해 당일 또는 익일까지 공시해야 한다.
이러한 수시공시의무를 위반한 법인은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며 벌점부과·매매거래정지·불성실공시법인에 대한 개선계획서 제출요구 등의 조치를 받게 된다.
아울러 유가증권시장공시규정 제35조 제2항에 따르면, 고의·중과실 또는 상습적으로 공시의무를 위반해 공익과 투자자 보호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불성실공시에 대해서는 10억원 이하의 공시위반 제재금이 부과된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유통량 공시는 주식 시장보다 더욱 중요하다.
기업의 실적이라는 가격 기반이 있는 주식시장과 달리 코인의 가격은 코인의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기에, 코인 공급량을 결정하는 발행량과 유통량은 가격 결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주식보다 더욱 높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공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 시장에서 유통량 공시는 기업의 의무가 아니다.
국내의 경우 유통량 공시 의무 불이행에 따른 제재 역시 위메이들의 국내 5대 거래소 상장 폐지를 통해 첫 사례를 기록했으며, 그나마 기존에는 유통량 공시 체계조차 구체화되지 않은 단계였다.
이런 까닭에 위믹스는 유통량 공시 기준의 모호성을 근거로 자신의 공시 의무 불이행을 변호할 수 있었다.
사진 = 코인 유통량과 코인 가격의 상관관계 / 쟁글
가상자산 정보 플랫폼 쟁글에 따르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주요 코인들은 발행 예정 물량이 코드에 의해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향후 유통량의 예측이 가능하다. 또한 타임락 코드에 따라 락업 물량이 해제가 되는 경우도 유통량을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코인들의 경우 타임락 코드가 존재하지 않는 등 유통량 관리에 필요한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코인들의 유통량이 여전히 베일에 싸인 이상, 이와 관련된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쟁글(Xangle)에서 가상자산 공시를 정리·게시하고 있지만 기업은 굳이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정보를 공개할 이유가 없고, 쟁글은 이에 해당하는 자료를 기업에 요구할 법적 권리가 없다.
비트코인, 이더리움을 비롯한 가상자산 프로젝트의 백서에는 대부분 코인 유통 계획이 서술돼있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유통 계획이 바뀔 수 있고, 이러한 사항이 제3자의 통제 아래 공시되지 않는다면 투자자들에게 백서는 언제든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상자산 발행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시장의 자율적 규제뿐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고 있다. 실제로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연합체인 닥사에서 위메이드 상장폐지를 결정하자, 몇몇 가상자산 프로젝트들이 선제적으로 코인 유통량 공시를 이행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디카르고는 지난 2일 코인마켓캡에 유통량을 업데이트했다고 공지했다. 기존 코인마켓캡, 코인게코와 업비트에 공지된 유통량이 전부 달랐에 이를 통일한 것이다.
디카르고 팀은 "최근 여러 프로젝트의 유통량 이슈로 불필요한 혼란을 사전에 방지하고 시장 참가자 간 정보 비대칭성을 해소하고자 코인마켓캡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유통량 정정을 위한 업데이트를 진행했다"고 알렸다.
컴투스는 자사 블록체인 메인넷 '엑스플라(XPLA)'의 유통 물량을 실시간 수준으로 공시하는 정책을 지난 9일 발표했다. 닥사의 위믹스 거래종료가 확정된 다음날 유통량 공시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엑스플라의 정책에 따르면, XPLA 코인은 매 분기 정기적인 업데이트 외에도 총 발행 물량의 0.1% 이상 변동이 있을 경우 사전 공시를, 0.005% 이상의 물량 변경이 있을 경우 14일 이내에 실시간 공시를 할 계획이다.
같은 날 휴먼스케이프도 "유통량을 항상 거래소를 통해 투명하게 공시해왔고 단 한 번도 어긴 적 없다"며 "단, 유통량 관련 이슈가 큰 현재 시장 상황에서 더욱 유통량을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공시하기 위해 프로젝트 팀 제공 유통량과 시가총액을 확인할 수 있는 API를 업비트에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금융당국은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의 코인 상장을 당국이 직접 '승인'하는 내용을 가상자산기본법안에 포함시키는 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정보분석원(FIU)을 비롯한 금융당국 내부에서는 가상자산거래소의 코인 상장을 금융위가 직접 승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됐다.
기업이 상장을 위해 증권을 모집할 때 자본시장법에 따라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것과 같이 국내 거래소의 코인 상장을 자율적으로 맡기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