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들어 유럽중앙은행(ECB)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전혀 다른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투자자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CB는 올해 들어서만 기준금리를 일곱 차례 인하하며 경기를 부양하려는 반면, Fed는 기준금리를 고정한 채 신중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같은 정책 차이는 4월 17일에도 분명히 드러났다. ECB는 이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하해 팬데믹 이후 지속된 완화적 기조를 이어갔다. 반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같은 날 공개 발언에서 아직 금리를 더 내릴 시점이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해 고점 대비 연준은 1%포인트 금리를 내렸고, 지난해 12월부터는 동결 상태다. 같은 기간 ECB는 1.75%포인트 인하를 단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CB에 비해 미국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파월 의장을 비판했다. 그는 연준이 경기 부양을 위한 통화정책 대응에 있어 너무 느리다고 지적하며 유럽에 뒤처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엇갈린 정책이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정책, 특히 예측 불가능한 '관세 압박 전략'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한다.
양대 중앙은행은 2020년대 초반까지 비슷한 경기 흐름에 따라 정책을 조율해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이 부과한 고율의 관세는 수입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연준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극했다. 이에 따라 연준은 금리 인하에 더 신중할 수밖에 없다.
반면 유럽은 미국의 관세 조치로 수출 감소 등 경기 위축 우려가 더 커졌다. 이에 따라 ECB는 경기 부양을 위한 선제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금리 인하 속도를 높이고 있다. 더글러스 포터 BMO캐피털마켓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보고서에서 "모든 중앙은행이 무역전쟁이라는 이례적인 변수와 씨름하고 있다”며 “국가별 경제구조와 성장, 물가 출발점 차이에 따라 대응 전략이 달라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예일대 예산연구소장의 어니 테데스키는 X(구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은 마치 19세기식 중상주의로 되돌아가는 양상”이라며 “유럽은 관세를 대폭 높이지 않았기 때문에 연준만큼의 물가 상승 압력을 겪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결국 ECB와 연준 간의 금리 정책 차이는 국제 정치와 무역환경이라는 외부 변수의 영향 아래 벌어지는 구조적 변화의 결과물이다. 유럽은 성장 둔화 현실에 직면하며 과감한 완화에 나섰고, 미국은 인플레이션 재발 가능성을 우려해 보수적 접근을 택하고 있다. 관세로 인한 글로벌 통화정책의 분기점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