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시장에서 ‘나의 체인이 너의 체인보다 우월하다, 그렇지 않다’는 식의 탁상공론이 끊이질 않습니다. 블록체인은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오픈소스 움직임의 일환이므로,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90년대 게임업계의 거물이자 이오스 개발사 블록원(Block.one)의 초기 고문, 현재 비트코인 재단 회장 브록 피어스(Brock Pierce)의 발언이다.
아역배우 출신 사업가로 업계에서 유명한 브록 피어스의 자산 규모는 포브스지에 따르면 1조원에 이르며, 암호화폐 업계 재산서열 9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는 암호화폐 관련 150여 곳 기업의 창업자, 파트너, 고문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작년 허리케인 ‘마리아’로 폐허의 땅이 된 푸에르토리코로 이주했다. 현재 이곳에서 블록체인 정신을 구현하는 탈중앙화 도시, 이른바 ‘푸에르토피아(푸에르토리코+유토피아)’ 건설을 꿈꾸고 있다.
블록체인 전문미디어 토큰포스트가 지난 6월 28~29일 양일간 주최한 '2018 블록체인 오픈포럼'에 참석한 브록 피어스를 만났다. 인터뷰 전체 내용은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국에 정말 자주 왔었어요. 한때 서울 평창동에서 살았거든요. 한국은 언제나 온라인 게임의 메카였죠. 브로드밴드 기술이 도입된 최초의 시장이자, 온라인 게임이라는 가상 커뮤니티가 최초로 구축된 곳입니다.
한국은 전 세계 온라인 게임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2004년 한국에 왔고, 최대 게임 거래 플랫폼인 아이템베이와 아이템매니아를 인수했습니다. 10년 정도 운영했는데 현지 직원 700명 정도의 규모로 한국에서만 연 10억 달러 이상의 상품 거래량을 보유했습니다. 물론 한국 게임 거래 플랫폼의 창시자는 아닙니다. 사업을 인수했고 회장직을 맡으면서,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에서 오랫동안 활발히 활동해왔습니다.
Q. EOS 프로젝트에 많은 자원을 투자했는데, 초기 투자를 결정한 계기가 있나요?
EOS를 설계한 블록원(Block.one)의 대표가 브랜든 블루머(Brendan Blumer)인데 브랜든은 18살 이후 저와 쭉 일해온 친구로, 저는 대중에게 소개되기 전 EOS 프로젝트를 알고 있었죠. 스팀잇(Steemit)과 비트쉐어즈(BTS)를 설계한 댄 라리머(Dan Larimer)가 EOS 개발을 총괄했는데, 저는 그가 이 시대 최고의 프로그래머라고 생각합니다.
Q. EOS는 DAC(탈중앙화 자율 커뮤니티) 시스템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DAC 시스템이 마이닝, 합의 알고리즘 관련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 볼 수도 있어요. DAC란 명칭을 처음 사용한 댄 라리머는 블록체인 업계에서 많은 업적을 이뤘습니다. 그가 개발한 비트쉐어즈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블록체인 중 하나이며, 스팀잇 또한 압도적인 사용량을 자랑하죠. EOS, 스팀잇, 비트쉐어즈를 고려하면 댄의 블록체인은 전 세계 75% 정도가 사용하는 블록체인입니다.
많은 이들이 토큰의 거래량과 시장 가치를 보는데, 근본적인 가치 판단은 체인 사용량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시장에 소개된 프로젝트 중 EOS가 가장 큰 프로젝트지만, 저는 개방적인 입장입니다. 오늘날 시장에서 ‘나의 체인이 너의 체인보다 우월하다, 그렇지 않다’는 식의 탁상공론이 끊이질 않습니다. 블록체인은 세상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오픈소스 움직임의 일환이므로, 열린 생각과 마음으로 서로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Q. 블록 프로듀서(BP) 투표 이후 블록체인 커뮤니티는 더 성장할까요?
물론이죠. EOS의 가장 매혹적인 부분은 지배 도구입니다. 채굴자 대신 블록 프로듀서라는 개념을 도입했지만 결론적으론 같은 뜻이죠. 실질적인 저장 공간, 밴드위스를 사용해 소비자 주도 댑을 만들 수 있는 블록체인을 설계했습니다. 댄 라리머가 스팀잇에 적용한 부분과 일맥상통하죠.
이 둘과 타 블록체인의 차이점은 페이스북과 같은 소비자 위주의 애플리케이션을 도입할 경우, 사용시 마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중적인 상용화를 위해선 지불을 요구하면 안 돼요. 예를 들어 아마존과 같은 플랫폼에 가입한 후 모든 활동마다 돈을 내야 한다면 마찰 비용 때문에 대중은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을 거예요. 댄이 스팀잇을 통해 그 부분을 명확히 증명했죠.
Q. 푸에르토리코 프로젝트의 비전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어느 순간부터 제 자신만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지 않게 됐어요. 그때부터 ‘내 시간은 한정적인데, 어떻게 세계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죠. 내가 태어난 세상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개척할 방법을 고민했어요. 푸에르토리코는 제가 하는 일로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곳 중 하나입니다.
Q. 재건이 완료된 푸에르토리코는 어떤 모습일까요?
실리콘밸리를 보세요. 캘리포니아는 실리콘밸리 혁신의 수혜를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우리는 푸에르토리코로 혁신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꿈을 가진 젊은 푸에르토리코 학생들이 그 꿈을 좇을 수 있도록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죠.
우리는 엔젤 투자자이고 멘토이고 자문위원입니다. 푸에르토리코는 역사적으로 혁신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곳이에요. 지적‧인적‧금융적 자원을 모아 청년들이 꿈을 이루려 섬을 떠나지 않게끔 푸에르토리코에서 모든 일이 가능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Q. 투자자들 시각에선 정부의 세금이나 규제를 피하기 위한 도피처로 사용되고 있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푸에르토리코가 세금 도피처로 사용된다는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세계 어디를 가든 정부가 하는 역할이 무엇인가요? 정부 기관은 사람들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사업을 벌이고, 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부여합니다. 모든 정부의 이러한 역할은 동시에 그들의 도구이기도 하죠. 인센티브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이해관계를 구축합니다. 게임화라는 개념의 일환이에요.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자면 푸에르토리코는 잘하고 있어요. 칭찬합니다. 세금 인센티브로 석탄 사용을 장려하는 등은 세계의 모든 정부가 하는 일입니다. 환경이든 경제든 그외 수많은 종류의 인센티브가 있어요.
쉬운 프로젝트는 절대 아닙니다. 3백만 명의 시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들의 삶이 나아지기 위해 필요한 도구들을 제공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죠.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일생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Q. 현재 비트코인의 한계점 중 하나가 경제적 양극화입니다. 중앙기관의 제약을 받지 않는 탈중앙화 P2P 시스템 구축을 목표하지만, 비트코인이라는 부의 분배가 완벽한 탈중앙화 수준에 다다르지는 못했습니다. 이는 대규모 투자자들이 거래량을 통한 가격 조작으로 이윤을 챙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데, 비트코인 시장의 가격 조작에 대해 어떤 입장이고 어떻게 대처할 계획인가요?
금융 시장은 언제나 조작되어왔어요. 주식 시장도 마찬가지고, 그 시장을 조작했던 사람들이 암호화폐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시장의 순리라고 생각해요. 오픈소스 시스템이니 어떻게 제재할 방법이 없는 노릇이죠. 뉴욕, 영국, 홍콩 전역에 퍼져 있는 일류 헤지펀드 매니저들이 지금 비트코인을 거래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전의 금융 시스템과 비슷한 형태로 흘러가고 있지만,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니 손 쓸 방도가 딱히 있지는 않습니다.
Q. 그런 흐름을 염두에 두고도 암호화폐가 과거의 금융 시스템을 대체할 수 있을까요?
비트코인은 디지털 세계의 금이라고 보는 것이 맞아요. ‘골드 ver 2.0’이죠. 화폐로서의 역할은 가격 변동성이 심하기 때문에 떨어지고, 가치 보관 용도로 쓰는 것이 적합합니다. 5천년 간 통용 화폐로 적합했던 형태는 금, 은, 구리와 같은 귀중한 금속이었죠.
오늘날의 법정화폐 시스템은 50년 밖에 안 된 사회적 실험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돈’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새로운 자산 형태인지 모릅니다. 우리 지갑에 들어 있는 지폐 형태의 돈이 존재한지는 50년 밖에 안 됐어요. 1970년도 전까지는 전부 금의 형태였죠.
Q. 투자자로서 프로젝트에서 어떤 부분을 가장 눈 여겨 보시나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선한 영향력의 유무입니다.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라고 일컫는 결정적인 요인은 ‘선한 사람들이 선한 영향력을 위해 힘쓰고 있는가’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행사에 함께 참석한 Switch 팀은 DMZ(비무장지대)에 태양열 발전기를 설치해 남한과 북한에 에너지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죠. 이러한 움직임들이 저는 아름다워요.
지적‧인적 자본을 보유한 사업가들이 아름다운 프로젝트를 고안했을 때, 저는 금융적 지원으로 그 꿈을 실현을 돕죠. 지난 많은 시간을 이같은 일에 투자해왔습니다. 선한 사람들을 끌어모아 선한 움직임에 동참해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Q. 투자에 있어 소셜 임팩트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씀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돈은 더 이상 제게 큰 의미가 없어요.
Q. 마지막으로 토큰포스트 독자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한국이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어요. 이 분야에선 지구상 가장 발전된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최초로 브로드밴드를 도입했고 최초로 가상 커뮤니티를 구축했죠. 또한 그 커뮤니티에서 생활하는 법을 익혔고, 가상화폐의 개념도 가장 먼저 이해했어요. 꾸준히 선두주자로 달리고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한국은 영혼이 있는 나라입니다. Seoul이라는 단어에서 e를 빼면 Soul(영혼)이죠. Soul이라는 단어에서 u를 빼면 Sol(태양)입니다. 도시에서 영혼으로 그리고 태양으로 이어지는 도시입니다. 이곳에 오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차지혜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