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저평가된 국내 주식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공개한 가운데, 일부 시장 분석가들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일본식 조치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금융위원회는 26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주주가치를 존중하는 기업경영 문화가 확산·정착될 수 있도록 긴 호흡을 갖고 중장기적과제로 꾸준히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추진하게 된 배경은 국내 주식시장의 양적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기업의 자본효율성이 주요국 대비 낮을 뿐 아니라 주가도 저평가되는 경향 때문이다. 이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 당국은 "경제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자본의 효율적 활용 및 생산성 향상이 긴요한 시점으로, 국민들 입장에서 근로소득 외에 자산소득을 통한 안정적 현금흐름 확보 필요성도 커진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에 금융위는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공정·투명한 시장질서 확립, 자본시장 접근성 제고, 일반주주 보호강화를 중심으로 제도개선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국은 불공정거래 및 불법공매도 대응 강화 등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를 확립하고 있으며, 외국인 ID 폐지, 영문공시 단계적 의무화 등과 함께, 금투세 폐지, ISA 세제혜택 확대 등 세제개편을 통해 국내외 투자자의 자본시장 접근성을 제고하고 있다. 아울러, 배당절차·물적분할·내부자거래·자사주 등 다양한 제도개선을 통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다만 국내 자본시장이 한단계 더 발전하려면 제도개선뿐 아니라 기업 스스로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이 수반되어야 실질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당국은 "정부의 노력에 더해 우리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아 성장하고 그 과실을 투자자들이 함께 향유하고 재투자하는 선순환적 자본시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기업의 저조한 수익성, 성장성, 미흡한 주주환원 등이 꼽히는 만큼 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시장에 적극 설명·소통함으로써 투자자로부터 정당한 평가를 받는 문화를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0년간 한국 주식시장 ROE(8.0%)는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으로, 자본 생산성이 낮음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배당성향(10년평균 26.0%)도 낮은 수준으로,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자본 활용도 미흡하다는 진단이다.
이에 당국은 상장기업의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자율적인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의 수립·이행·소통 지원, 기업가치 우수기업에 대한 시장평가 및 투자 유도, 전담 지원체계 구축"의 3가지 틀을 바탕으로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당국은 상장기업에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할 것을 요청했다. 이를 위해 6월 중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당국은 "상장기업이 이사회를 중심으로 매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각 기업에 적합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스스로 수립하여 이를 자사 홈페이지에 공표하고 거래소에 자율 공시하도록 안내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기업이익의 주주환원을 유도하기 위해 매년 우수기업에 대한 표창 수여, 모범납세자선정 우대 등 세정지원 등의 혜택을 적극 제공하겠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로 기업가치 우수 기업에 대한 시장평가와 투자 판단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기업가치 우수 기업 중심으로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개발하여, 연기금 등 기관투자자가 벤치마크 지수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ETF 상장을 통해 일반투자자들도 투자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설명이다.
또한 기존 거래소 정보데이터 시스템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 시장별·업종별 PBR·PER·ROE 등 주요 투자지표를 비교공표함으로써 투자자 편의를 제고하겠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지속 추진하기 위해 전담 지원체계도 구축할 계획이다. 한국거래소에 전담부서를 설치하고 시행·보완·발전을 지원하기 위한 자문단을 구성·운영하며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현황 등을 한눈에 조회할 수 있는 '통합 홈페이지'도 구축할 방침이다.
◇ 문제는 지배주주의 불균형적 이익...더 강력한 조치 필요
이 같은 지원방안은 일본 도쿄거래소 사례를 참조, 응용한 내용이다. 일본은 비슷한 지원방안을 실시해 주주수익을 높이기 위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견고한 실적을 통해 34년 만에 도쿄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끌어올렸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일본 시장에서만큼 성공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27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들은 국내 시장이 창업자 가족이 소유하는 재벌 기업으로 구성돼 있다는 점을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 이 같은 구조가 소수 주주가 전략적 결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지배주주의 저항이 변화를 어렵고 느리게 만들기 때문에 당국이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모두의 이익에 부합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달튼 인베스트먼트의 선임 리서치 애널리스트 제임스 림은 "핵심 문제는 지배주주가 불균형적인 이익을 취하기 때문에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존재한다는 것"이라면서 "한국은 일본에 비해 강력한 지배주주를 가진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페더레이티드 헤르메스의 아시아 수석 포트폴리오 매니저인 조나단 파인스는 "한국에는 규제로 인해 상당한 금전적 이익을 얻고 있는 가족 지배 기업이 훨씬 더 많다"면서 "주가를 낮추는 행위가 동기부여되는 상태에서 지배 주주가 소액 주주에게 친절할 것을 유도하는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고 평했다.
그는 "당국은 기업 이사가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 수익률 제고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한 기업들이 최소한 순자산(PBR) 수준으로 주가를 올리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은 기업 주식의 저평가 여부를 측정하는 지표로, 1보다 낮은 수치는 주식 가격이 공정 가치보다 낮을 수 있음을 나타낸다. 삼성전자 PBR은 1.40, 대만 반도체 제도회사 TSMC는 5.23, 미국 상장사 애플은 37.80이다.
싱가포르 자산운용사 그래스하퍼(Grasshopper)의 포트폴리오 매니저 다니엘 탄도 "한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면서도 "소액 주주보다 지배 주주(주로 창업자 가족)를 선호하는 기업 관행을 해결하기 위해 더 강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니엘 탄은 "상장기업에 밸류에이션 제고 계획을 수립하고 공시하도록 하는 등의 최근 조치는 강제적인 변화라기보다는 자발적인 노력에 의존하는 측면이 크다"면서 일본 시장에 준하는 변화를 갖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