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에서 대출받았다가 생활고 등을 이유로 빚을 갚지 못하고 채무조정(신용회복)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한계 차주(대출자)들의 부실화가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성실 상환자들 연체율마저 급증하면서 가계대출 경고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
양정숙 무소속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지난 15일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채무조정 신청 건수는 올해 6월 말 기준 9만 1981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신청자 13만 8202명의 70%에 육박하는 수치다.
채무조정은 생활고 등으로 빚을 갚기 어려워진 대출자들을 위해 상환 기간 연장, 이자율 조정, 채무 감면 등을 해주는 제도다. 연체 기간에 따라 신속채무조정, 프리워크아웃, 개인워크아웃 등으로 구분된다.
특히 신속채무조정이 급증한 점에 대한 우려가 크다. 신속채무조정은 현재는 정상적으로 빚을 갚고 있지만, 연체가 우려되거나 1개월 미만 단기 연체자에 대해 채무 상환을 유예하거나 상환 기간을 연장해주는 것이다.
올해 상반기 기준 신속채무조정 신청자는 2만 1348명으로 지난해 전체 신청자 수 2만 1930명과 비슷하다.
이는 빚 상환 여력이 떨어져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대출자들이 지난해보다 빠른 속도로 많아졌다는 뜻이다.
빚을 갚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도 늘어났다. 변제 기간은 2018년 84.6개월, 2019년 86.6개월, 2020년 89.2개월 수준이었으나 2021년 91.0개월, 지난해 94.1개월로 길어지더니 올해 6월 말 기준 100.5개월까지 팽창했다.
양정숙 의원은 “신용회복 신청자 수가 올해 또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변제 기간이 100개월을 넘어선 건 금융 취약계층의 실질소득 감소와 체감경기 실태가 심각한 상황이란 점을 반증하는 결과”라고 말했다.
빚을 꼬박꼬박 갚아온 성실 상환자들마저 경기 침체와 금리 상승 부담으로 한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성실 상환자들을 대상으로 지원되는 소액대출(300만원 이하)은 2018년 2만 1690명이 신청했으나, 지난해 4만 4671명으로 2배 넘게 늘었다. 올해도 6월 기준으로 2만 3264명이 신청하면서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
소액대출 연체율은 2018년 6.7%에서 지난해 10.5%까지 뛰어올랐다. 올해 6월 말 기준 연체율은 10.9%로 집계됐다.
한편 채무조정 대상자들의 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여러 계좌를 통해 복수 대출을 받는 형태가 많았다.
4~9개 계좌를 이용한 경우가 4만 7403건(58.1%)으로 가장 많았다. 2~3개 계좌 이용 수가 1만 4275건(18.7%), 10개 이상 계좌 이용 수가 1만 4134건(16.8%)으로 나타났다.
1개 계좌를 통해 대출받은 경우는 4891건(6.4%)에 불과했다. 대출받은 기관은 신용카드사(39.2%), 대부업체(26.8%), 시중은행(13.1%), 저축은행(12.3%) 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