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1%로 높아졌지만, 앤드루 베일리(Andrew Bailey) 영란은행 총재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임금과 상품·서비스 가격으로 번지는 2차 파급 효과가 아직 제한적이라고 진단했다.
영국 통계청은 16일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보다 3.1%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7월 상승률 2.9%보다 0.2%포인트 높아졌지만, 식품·에너지·주류·담배를 제외한 근원 CPI 상승률은 2.6%로 같았다.
교통 부문 물가 상승률은 3.6%에서 4.6%로 올랐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소비자물가에 직접 반영된 가운데 근원 물가가 추가로 높아지지는 않은 모습이다.
앞서 본지는 영국의 7월 물가 상승과 에너지 충격이 금리 경로에 미칠 영향을 보도했다. 이번 8월 지표는 당시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높아졌지만 근원 물가는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베일리 총재는 8월 28일 미국 잭슨홀에서 진행한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2차 파급 효과는 상당히 억제돼 있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이 약화된 점을 근거로 물가 흐름을 당분간 지켜볼 수 있다고 했지만,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약속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2차 파급 효과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기업의 비용 전가와 근로자의 임금 인상 요구를 거쳐 서비스 가격 재조정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뜻한다. 에너지 가격 자체의 상승보다 물가 압력이 경제 전반에 오래 남는지를 판단하는 개념이다.
휘발유와 공공요금 상승은 소비자물가를 직접 끌어올릴 수 있다. 기업이 비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고 근로자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 물가 상승이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어 통화정책의 핵심 변수로 꼽힌다.
영란은행은 7월 통화정책보고서에서 2026년 하반기 에너지 가격 상승이 CPI를 약 0.4%포인트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물가 상승률은 올해 말 약 3.2%까지 오른 뒤 목표치인 2%를 향해 점진적으로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영란은행은 같은 통화정책보고서에서 에너지 가격 충격의 규모와 지속 기간, 임금·가격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전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가격의 직접 효과와 임금·서비스 물가로 번지는 추가 효과를 구분해 보겠다는 의미다.
영란은행 통화정책위원회(MPC)는 7월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3.75%로 유지했다. 표결은 6대3으로 갈렸고, 3명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영란은행 7월 MPC 회의록에는 에너지 가격 상승의 2차 효과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아직 제한적이라는 판단이 담겼다. 동시에 중동 정세가 악화되면 물가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경계도 제시됐다.
시장참여자들의 기존 금리 전망은 즉각적인 인상보다 관망에 가까웠다. 영란은행은 7월 말 시장참여자 조사에서 응답자 78명의 기준금리 전망 중앙값이 9월·11월·12월 회의 이후 모두 3.75%였다고 밝혔다.
같은 조사에서 7월 회의 이후 기준금리가 3.75%에 머물 확률은 평균 90.1%로 집계됐다. 이 결과는 베일리 총재 발언 직후 시장 반응이 아니라 7월 말 기준 전망이다.
베일리 총재의 발언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없앤 것은 아니다. 에너지 가격이 예상보다 오래 높은 수준을 유지하거나 임금·서비스 가격으로의 전이가 확대되면 영란은행의 정책 대응이 달라질 수 있다.
영란은행은 9월 회의에서 임금, 서비스 물가, 에너지 가격 흐름을 함께 확인할 예정이다. 현재 정책 판단의 핵심은 에너지 가격 자체보다 그 충격이 경제 전반에 고착되는지 여부다.

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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