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침체 공포가 투자심리를 짓누르는 가운데, 기업들이 실적 전망치를 이례적으로 이중 경로로 제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유나이티드항공(UAL)의 최근 실적 발표가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2분기 조정 주당순이익이 3.25달러에서 4.25달러 사이일 것이라고 제시하면서도 연간 전망에 대해선 두 개의 시나리오 — ‘안정적 경제’와 ‘경기침체’ 상황을 각각 구분해서 밝혔다.
유나이티드는 “현재 시장에는 하나의 합의된 거시경제 전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미국 경제가 완만하게 유지될 가능성과 곧 침체에 진입할 가능성이 공존함에 따라 회사의 전망은 양극화된 구조(bimodal)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만약 침체가 온다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실적 예측은 기업들의 불확실성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투자은행과 분석기관들은 기업들의 이러한 ‘양방향 가이던스’가 점차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최근 보고서에서 “경제 불확실성이 클수록 기업들은 실적 가이던스를 철회하거나 축소하는 경향이 짙어진다”고 분석했다. 실제 팩트셋에 따르면, 지난 4월 10일까지 S&P500 소속 기업 중 실적을 발표한 23곳 중 16개 기업이 실적 전망에 대해 언급했지만, 그 중 2곳은 기존 가이던스를 아예 철회했다.
실제로 델타항공(DAL)은 올해 1분기 실적 발표에서 “현재의 경제적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연간 가이던스 제공은 시기상조”라며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프런티어항공(ULCC), 전자기기 제조사 로지텍(LOGI) 역시 유사한 이유로 실적 전망을 철회하거나 축소한 상태다.
델타항공의 에드 바스티안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우리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고 있다”며 “소비 행태 역시 마치 경기침체에 들어간 듯한 모습”이라고 경고했다. 미국 내 주요 항공사들은 지난달부터 앞다퉈 2025년 전망에 대해 경고음을 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소비 수요 불확실성과 환율, 유가 등 외부 변수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 같은 경계심은 항공사뿐 아니라 대형 자산운용사들도 공유하고 있다. 블랙록(BLK)의 래리 핑크 CEO는 최근 인터뷰에서 “여러 기업 CEO들과 이야기를 나눈 결과, 이미 미국이 침체에 진입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고 전하며 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시장 전반에서도 경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전방위적으로 퍼지고 있다. 일부 대형 은행들은 침체 가능성에 대한 자체 확률을 상향 조정했고, 실제로 예측시장인 폴리마켓에서는 올해 경기침체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54%로 보고 있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이 최근 발표한 이코노미스트 대상 설문 결과에 따르면, 향후 12개월 내 미국이 경기침체에 빠질 확률은 45%로 집계됐다. 이러한 숫자들은 현재 기업들이 왜 그렇게 신중하게 실적 가이던스를 제시하고 있는지, 그 이면의 공포와 혼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