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댄스 음악을 대표하는 명곡 중의 하나인 보니 엠(Boney M)의 바하마 마마(Bahama Mama)는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국가 바하마 연방(Commonwealth of The Bahamas)을 전 세계의 많은 팝뮤직 팬들에게 각인시킨 곡으로 유명하다. 미국 플로리다에서 약 120km 떨어진 미국에서 가장 가까운 섬나라 국가이자 미국인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이기도 한 바하마는, 국토의 대부분이 버뮤다 삼각지대에 속해 있고, 플로리다를 포함한 미국 중남부 지역에 상륙하는 대부분의 허리케인들이 거쳐오는 곳이다. 허리케인이 들이닥칠 때마다 수많은 피해가 생기지만 바하마 당국이 가장 곤욕스럽게 생각하는 문제들 중 하나는 현금 관리 문제이다. 허리케인이 들이닥칠 때마다 현금인출기(ATM)가 날아가거나 물에 잠겨 고장이 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은행 지점 건물 자체가 통째로 날아가 버리기 때문이다. 비단 허리케인이 아니더라도 약 700개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바하마의 국가적 특성상 현금을 배로 실어 날라야 하기 때문에 평상시에도 현금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 나아가 인구 39만 명이 사용하기 위한 위조 방지 기술 등이 들어가는 지폐 제작 비용은 상대적으로 많은 부담이 되고 있다.
△허리케인 도리안(Dorian)으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물에 잠긴 바하마
허리케인 피해 이후에 경제 재건, 금융 시스템의 즉각적인 복구와 종이 화폐 관리 비용의 절감 등을 위해 바하마는 2020년 10월, 샌드달러(Sand Dollar)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 최초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상용화에 들어갔다.[주1] 샌드달러는 바하마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디지털 달러로, 국가 화폐인 바하마 달러에 연동(Pegging)되어 있고, 바하마 달러는 다시 미국 달러와 환율이 1:1로 고정되어 있다. 결국 샌드달러는 미국 달러에 1:1로 교환 가능한 디지털 화폐이다. 하지만 샌드달러는 엔터프라이즈 이더리움에 기반한 기술로 개발되었기 때문에, 블록체인 기반 기술의 단점 중 하나인 자금 세탁에 취약한 문제가 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사용 가능한 양을 극도로 제한하고 있다. 계좌 잔고는 500달러까지 보유가 가능하고, 매달 사용 가능한 금액은 1500달러를 넘지 못한다. 이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통화 유통 속도 제한 메커니즘을 통해 지하경제 활성화를 제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가 없는 샌드달러는 현지 영세 상인들에게는 4% 신용카드 수수료의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에 큰 환영을 받고 있다. 이에 맞춰 마스터카드는 발 빠르게 샌드달러와 연동된 신용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주2] 이것은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가 지불결제 시장을 혁신하기 때문에 신용카드 회사 등을 포함하는 기존의 지불결제 회사들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2015년부터 현금 사용량이 GDP 대비 2% 이하로 떨어진 스웨덴은 현금 없는 사회(Cashless Society)가 현실화되어 있는 국가이다. 스웨덴의 현금 없는 사회는 2006년 현금 관리 업무를 민간사업자인 뱅코멧(Bankomat)으로 이전하면서 시작되었고, 2012년 스웨덴 상업은행들이 출시한 모바일 송금 서비스 스위시(Swish)등 다양한 결제 송금 서비스의 출현으로 가속화되었다. 이로 인해 2007년부터는 버스와 지하철 요금을 현금으로는 지불할 수 없게 되었고, 전국 각지에 현금인출기(ATM)등이 사라져 가면서 디지털 기술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노령층이나, 금융 계좌를 가지기 어려운 신용불량자, 은행에 직접 가기 어려운 산간벽지의 주민들이 현금을 접할 수 없어 금융 활동에 심각한 제약을 받는 금융소외 현상이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포용적 금융(Financial Inclusion)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2016년부터 스웨덴 중앙은행인 릭스뱅크(Riksbank)는 스웨덴 국가화페인 크로나(SEK, Swedish Krona)를 디지털화한 이크로나(e-Krona) 발행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2015년 이후 현금 없는 사회로 진입한 스웨덴 / 스웨덴 릭스뱅크
이크로나 초기 개발 단계에서는 기존의 디지털 결제(Digital Payment) 기술을 활용한 이크로나의 발행을 연구했다. 그러나 2019년 페이스북이 기업형 스테이블 암호화폐인 리브라를 발표하면서 릭스뱅크는 액센츄어(Accenture)와 컨설팅 계약을 맺고 엔터프라이즈 분산 원장 기술인 코다(R3 Corda)에 기반한 이크로나 개발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후, 2020년부터 현재까지 이크로나 파일럿 프로젝트를 은행 내부의 시뮬레이션 환경에서 진행하고 있다.[주3] 릭스뱅크의 경우는 현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종이 지폐를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는 디지털 지폐, 즉 디지털 현금의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은행 계좌를 가질 수 없는 금융 소외 계층에게 이크로나를 받을 수 있는 디지털 계좌의 배포를 추진하고 있다.
1차 파일럿을 통해서 얻어진 결론은, 코다 기술은 크게 3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어 보완 개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첫째, 현금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모바일이나 인터넷 등이 원활하지 않은 지역에서 오프라인 결제가 가능해야 하지만, 합의 프로토콜을 사용하는 분산원장기술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오프라인 결제의 실현이 불가능하다. 둘째, 이중 지불(Double Spending)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보증인 노드(Notary) 방식이 중앙화의 문제를 가지고 있어 금융 공격에 취약한 안전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셋째, 사용자에게 금융 수신 계좌를 배포하고 자금 세탁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사용자 신원 인증 시스템과의 연결이 필요한데, 코다의 경우, 노드 운영자들에 대한 신원 인증 시스템만이 존재하고, 일반 사용자에 대한 신원 인증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국가 간 송금 거래에 쓰이는 금융 전용 네트워크는 스위프트(SWIFT, Society for Worldwide Interbank Financial Telecommunications) 즉, 국제은행간 통신협회 망으로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 송금 네트워크이다. 스위프트는 불량 국가에 대한 금융제재에도 자주 사용되기 때문에 달러 패권에 도전하는 러시아, 중국 등의 국가에서는 대안 네트워크의 개발을 추진해왔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2014년부터 SPFS(System for Transfer of Financial Messages)라는 대안 국제 송금 네트워크를 개발하고 있고[주4], 중국은 2015년 10월 8일 CIPS(Cross-border Interbank Payment System)이라는 중국형 국제 송금 네트워크를 출시했다.[주5] 미국은 2021년 11월 상용화 예정인 중국의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프로젝트인 DC/EP(Digital Currency Electronic Payment)가 CIPS와 연결될 경우, 북한이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를 사용해 효과적으로 유엔 금융제재를 우회해 핵무기 개발 자금을 확보하는 시나리오를 국가 안보의 심각한 위협으로 판단하고 있다.[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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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개발과 중국형 국제 결제 네트워크인 CIPS를 심각한 국가 안보 위기로 판단하는 미국
SWIFT와 SPFS, CIPS는 모두 금융 전용망으로, 높은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또한 미국 달러, 러시아 루블, 중국 위안을 각 네트워크의 송금 화폐로 사용하기 때문에, 이들 이외의 국가 간 거래에서는 주권 화폐에서 달러, 그리고 달러에서 상대방 주권 화폐로 2번의 환전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저개발 국가의 국민이 선진국에 취업한 후에 본국으로 송금하기 위해서는 평균 10%에서 많게는 30%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이 환전 수수료와 현지에서의 현금화 수수료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 International Monetary Fund)이나 국제결제은행(BIS, Bank for International Settlements) 등의 국제기구에서는 인터넷과 디지털 화폐를 이용한 국제 송금 결제(Cross-border payments)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유로존에 들어 있지만 자국 화폐를 고집하는 헝가리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 구소련 해체 이후 설립된 독립국가연합(CIS, 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에 속해 있는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 등의 국가들,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중동의 국가들이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의 차기 국왕이 될 모하메드 빈 살만(Mohammad bin Salman bin Abdulaziz Al-Saud) 왕세자는 석유 수출국 기구(OPEC, 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의 영향력 축소를 대체하기 위해 이슬람 금융(Islamic Finance)의 영향력 확대를 국가 비전으로 하고 있다.[주7]
△이슬람 금융의 영향력 확대를 꿈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
사우디아라비아 중앙은행과 아랍에미리트(UAE) 중앙은행은 2019년과 2020년에 걸쳐서 디지털 화폐 기술을 이용한 국제송금 거래 파일럿 프로젝트인 '아버 프로젝트(Project Aber)'를 시행했다.[주8] 리플이나 스텔라를 포함한 암호화폐 기술과 JP모건(JP Morgan)의 쿼럼(Quorum), 엔터프라이즈 이더리움, R3 코다, 하이퍼레저 패브릭(Hyperledger Fabric) 등의 기술이 검토되었고, 최종적으로 하이퍼레저 패브릭이 채택됐다. 송금 방식은 두 국가의 중앙은행이 공동으로 발행하는 송금 전용 CBDC를 활용하는 방식이었다. 두 국가 간 제한된 파일럿에서는 이 방식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다양한 국가가 다양한 자국 화폐를 서로 송금하는 시나리오로 확장하기에는 여러 가지 제약점이 있었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두 국가의 어떤 중앙은행이 발행한 화폐인지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토큰과 연계된 신원인증 메커니즘을 필요로 했지만 하이퍼레저는 이 부분을 지원하지 못했고, 서명을 검증하기 위한 루트 인증 기관(Root Certificate Authority)에 대한 관리 권한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었다.
△미래 현금 없는 사회와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화폐 국제거래를 구현하기 위한 금융 전용 블록체인의 기능
미래의 각 국가는 자국 화폐를 디지털화하고 이를 인터넷을 통해 국제 송금 거래를 시행할 것이다. 저개발 국가의 국민들 모두가 금융 계좌를 가지고 개인과 개인 간 국제 송금 거래를 매우 저렴한 비용으로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소상공인들은 결제 수수료 부담이 없고, 판매 대금이 즉시 입금되는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를 선호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이에 적합한 블록체인 기술의 개발을 필요로 한다. 즉, 블록체인 기술의 3대 문제점인 자금세탁방지 장치의 부재, 거래의 병렬처리 불가로 인한 성능 향상의 한계, 블록체인과 블록체인 간 거래의 복잡성과 안전성 문제를 해결한 새로운 금융 전용 블록체인 기술을 필요로 한다.
기고자 소개
소버린월렛의 윤석구 대표는 KAIST 전자공학 학사, 미국 USC 컴퓨터사이언스 석사를 졸업한 소프트웨어 보안전문가이다. 소버린월렛은 미국 USC대학 출신들이 함께 설립한 회사로, USC대학의 비터비 공과대학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세계 최초의 신원인증 기반 블록체인인 무이 메타블록체인(MUI MetaBlockchain)을 개발했다. 무이 메타블록체인은 클라우드형 블록체인 서비스로(BaaS - Blockchain As A Service)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발행 및 디지털 증권 거래소 플랫폼 구현 등에 특화돼 있다. 현재 전 세계 7개국 국가 중앙정부 및 은행들과 CBDC 및 디지털 증권 거래소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