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전통적으로 스타트업이 자라기 쉽지 않은 국가로 유명하다.
경제 규모에 비해 창업 생태계가 활발하지 않고 중국이나 한국에 비해서도 스타트업 투자 성과가 낮은 편이다. 2022년 8월 CB 인사이트에서 발간한 '전세계 유니콘 기업 현황' 리포트에 따르면 중국은 150개, 인도는 40개, 한국 15개지만 일본은 6개에 불과하다.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한화 약 1조3395억원) 이상인 스타트업이 6개뿐인 것이다.
심지어 이마저도 과거에 비해서는 크게 늘어난 수치다. 스타트업이 크게 주목 받으며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과정이 일반적인 웹3나 인공지능(AI) 시장도 마찬가지일까.
2023년 일본 내 스타트업 기업가치 평가에서 1위~10위 사이에서 AI, 블록체인 핀테크 분야 기업들은 4곳이다. 절반에 가까운 수치로 예상보다 많은 상황이다. 선정된 4개 기업은 각각 Preferred Networks(AI), ADVASA(블록체인 핀테크), GVE(핀테크), 트리플-1(딥러닝 AI)이다.
Preferred Networks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로봇개발에 주력하는 업체로 기업가치 평가액은 3539억엔(한화 약 3조4901억원)으로 알려졌다. 기업 대상의 로봇 판매가 주를 이룬다. ADVASA는 블록체인을 활용한 결제 서비스 후쿠페를 주력 모델로 삼으며 '언제든지 일한 만큼의 급여를 즉시 받을 수 있는' 근로자의 권리를 강조하는 기업이다. 지난해 4월 기준으로 20억엔(한화 약 197억2400만원)의 투자유치를 이뤘으며 기업가치평가액은 2301억엔(한화 약 2조2692억원)이다. 이밖에 법정화폐 디지털화 플랫폼(CBDC) 관련 사업 분야에 욕심을 냈던 GVE와 딥러닝을 활용한 반도체를 설계하고 개발하는 트리플-1 등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현지에서 보는 스타트업에 대한 전망은 한국만큼 긍정적이지는 않다. 일본의 창업 구조 자체가 한국 등에 비해 철저히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고 있으며, 스타트업이 커지며 기존 대기업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은 정부 차원에서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웹3나 AI 분야도 큰 이변이 없는 한 정부 규제 아래 대기업이 주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현지에서 웹3 관련 스타트업에 종사하고 있는 한 개발자는 "일본의 경우 신기술 산업분야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 일단 대기업 종사 인력들이 자체적으로 비공식적 팀을 꾸려 개발과 연구를 진행하는데, 수 년에 걸쳐 진행한 후 어느정도 윤곽이 잡히고 투자유치 단계가 되면 대기업과 협상을 진행한 후 독립기업으로 떨어져 나온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자본걱정 없이 사업을 준비하는 셈이다. 해당 개발자가 근무중인 스타트업도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일본 대기업이 모기업이다. 급여도 대기업에서 나온다.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그게 무슨 스타트업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렇게 진행하는 것이 더 안전하기 때문에 일본 내에서는 선호도가 높은 상황이다. 또 대기업의 지위가 위협받을 일도 없다.
다만 일본 정부가 스타트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도쿄와 나고야, 간사이와 후쿠오카 등 거점도시를 설정한 후 지역별 아젠다에 맞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을 실행하겠다고 밝힌만큼, 지금보다는 앞으로 좀 더 활발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현지 관계자는 "AI나 웹3도 대기업 주도의 형태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표면적으로는 스타트업일지라도 자세히 살펴보면 대기업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분명히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정부 차원에서의 정책적 지원이 확대되고 있는만큼 더욱 다양한 선택지도 나올 수 있다고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