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말 비트코인 투기 열풍과 ICO 사기 등으로 금기시 됐던 디지털자산에 대한 논의가 최근 여러가지 이유로 다시 활발해졌다. 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권고안과 특금법 개정,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사회로의 전환, 디지털자산 과세, 각국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연구·개발 움직임까지. 오히려 2017년 말보다 디지털자산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지표들이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디지털자산과 다소 거리를 둬 왔던 기존 금융권에서도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이 커진 상태다. NH농협은행은 남들보다 앞서 디지털자산 커스터디 서비스에 뛰어들었다. 아직 국내에서는 다소 낯선 영역이지만 세계적인 흐름을 읽고, 디지털자산의 미래를 확신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농협은행의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NH디지털R&D센터가 있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금융기관과 금융 서비스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나가는 김성현 과장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편집자주>
Q. 현재 회사에서 맡고 계신 업무와 간략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농협은행 NH디지털R&D센터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맡고 있는 김성현 과장입니다. 양재동에 위치한 NH디지털혁신캠퍼스에서 근무 중이고, 저희 팀은 센터 내 신기술전략파트에서 블록체인을 비롯한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등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기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을 기반으로 은행의 사업 전략을 짜고, 현업 부서에 적용하는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Q. 언제부터 블록체인 기술과 서비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아울러 블록체인 기술이 어떤 장점과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농협은행이 저의 첫번째 직장은 아닙니다. 이전 직장이 바로 블록체인 스타트업이었습니다. 비트코인 가격이 최고점을 기록하고 ICO가 쏟아졌던 2017년 말 당시 처음 블록체인이라는 개념을 접했습니다. 사실 블록체인이나 4차산업혁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로운 도전을 위해 이직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주식과는 비교도 안 되는 등락폭과 24시간·365일 돌아가는 거래 시장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또 동시에 어떤 가치가 있길래 사람들이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블록체인 스타트업이다보니 자연스럽게 블록체인 기술과 서비스에 대해 더 공부하게 됐고, 정확한 액수를 밝힐 수는 없지만 (학습 차원에서) 약간의 투자도 해보았습니다.
지금이야 퍼블릭 블록체인만큼 프라이빗 블록체인도 발전했고 상용화도 되는 추세지만, 당시에는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퍼블릭 메인넷들이 물밀듯이 쏟아졌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컨셉들이 많았죠. 게임, 콘텐츠, 선거 등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이전까지 풀지 못하던 여러 문제들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 서비스 상용화의 부족이나 몇몇 불량한 프로젝트들로 인해 다소 주춤한 사이 대기업들이 프라이빗 블록체인 기반의 사업 아이템을 들고 진입하는 현재 상황까지 왔죠.
다들 잘 아시다시피 블록체인의 가치는 기술을 바탕으로 전과는 다른 신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퍼블릭이든 프라이빗이든 의미 있는 서비스가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퍼블릭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주장하던 게임이론 기반의 보상체계나 그들이 보여준 캐주얼하고 트렌디한 아이템들을 시장이 잘 견인해준다면, 우리나라 블록체인 산업이 잘 성장할 것이라고 봅니다. 또 대기업의 진입, 특정금융정보법(이하 특금법)의 개정이 시장 자본 유입에 기여하고, 좋은 정책으로 자본들이 소규모 프로젝트들에게 잘 분배가 된다면, 블록체인의 가치가 더 커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농협은행이 연구 또는 개발 중인 블록체인 서비스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근에 언론 보도자료들이 좀 나가다보니 업계에 계신 분들은 많이 아실텐데요. 최근 저희 팀은 ‘디지털자산(또는 가상자산)커스터디 서비스’ 사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사실 블록체인이 가진 여러 가치가 있지만 은행이라는 금융기관이 현재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많지는 않습니다. 송금, DID, 커스터디 등 은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업 아이템은 손에 꼽을 수 있습니다. 이 중 커스터디 서비스는 국내에서 아직 익숙하지 않은 개념이지만 해외에서는 상당히 보편화된 서비스입니다. 보통 수탁 서비스라고도 부르는데, 자산을 보관하거나 운용하고 싶지만 인프라와 전문성이 부족한 투자자들이 수탁 은행(커스터디 서비스)에 자산을 맡기면 전문가들이 대리해 이를 운용하는 방식이죠. 국내 은행들도 이 사업에 관심이 있었는데, 최근 특금법이 개정되면서 은행이 해당 사업을 추진할 길이 열렸습니다. 특히 디지털자산 분야에서는 화두가 되고 있는 프라이빗키(private key) 관리를 시작으로, 기존 디지털자산 사업자나 탈중앙화금융(Defi)의 다양한 서비스들과 결합하면서 하나의 금융 서비스 영역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Q. 향후 대략적인 커스터디 서비스 출시 일정이나 방향은 어떻게 되는지요.
일단은 특금법 시행령 초안 공개가 머지 않았기 때문에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금법 개정안 내용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케이스들을 검토 중이지만 시행령이 나오면 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상세 내용이 달라지더라도 큰 틀에서 찍고 갔으면 하는 마일스톤은 있습니다. 우선 저희 NH농협은행의 상황이나 국내 법제도의 방향 등을 고려해 커스터디 개념증명(PoC)을 최대한 특금법 시행 시기에 맞춰 마무리 해보려고 합니다. 동시에 커스터디에 대한 업무 구조를 좀 정리해 나갈 계획입니다. 아직 업권법이 없기 때문에 은행이 어떤 형태로 커스터디 서비스 사업자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이 여전히 불명확한 상황입니다. 특금법 시행 후에는 시장이 또 한번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추이를 지켜보면서 커스터디 서비스 플랫폼 개발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Q.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문화의 확산이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게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은행에서 중요하게 바라보는 관점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과거 아버지 세대에는 지갑에 현금이나 수표를 두둑하게 넣어 다니는 것이 능력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지갑에는 현금 대신 카드 몇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죠. 나아가 은행 앱(App) 혹은 토스 같은 앱을 통해 송금하거나 배달 앱으로 주문과 결제를 합니다. 최근에는 재택근무와 화상회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모든 현상은 이전부터 점차 생활화 되던 비대면 문화가 코로나19를 계기로 가시화되고 가속이 붙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비대면 문화의 핵심에는 바로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이 있죠.
자산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산도 디지털화 되고 있습니다. 디지털자산의 흔한 예로 부동산이나 미술품 시장의 변화를 많이 얘기합니다. 법원이나 아트갤러리를 찾아가야 하던 세상에서 온라인 플랫폼에서 부동산이나 미술품의 디지털 소유권을 사들이고, 이를 증명할 수 있게 되는거죠. 이처럼 블록체인을 통한 자산의 디지털화는 이전에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던 해당 시장을 우리 생활 가까이 성큼 다가오게 했고, 앞으로는 디지털자산을 기반으로 더욱 많은 금융 서비스가 우리에게 제공될 것입니다.
Q. 블록체인 서비스를 개발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국내 블록체인 관련 정책 또는 산업 현황은 어떻습니까? 커스터디 서비스가 정책 발전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제가 스타트업에 있을 때 바라봤던 시장에는 젊고, 유능하고, 열정이 있는 기획자와 개발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밤낮없이, 또 주말없이 일하고 토론하면서 블록체인에 고민하는 사람들이었죠. 현재 이들의 노력이 일부 프로젝트들의 도덕적 해이로 많이 가려졌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ICO를 표방한 다단계 사기 프로젝트들, 컨트랙트 코드에 대한 감사 체계가 부족한 틈을 타 코인을 임의로 발행한다든지 하는 프로젝트들 말이죠. 때문에 현재 특금법 개정 등 정책 방향이 자금세탁방지나 규제에 초점이 맞춰진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산업 성장을 저해하는 프로젝트들을 가려 안정화를 가져오고, 동시에 우량한 프로젝트들을 성장시킬 수 있는 정책적 고민이 지속적으로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 작은 스타트업들은 자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제대로 인프라를 구축하기 어렵죠. 저희가 구축하고자 하는 커스터디 서비스 플랫폼이 이런 상황에 훌륭한 인프라로 작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커스터디를 통해 안전하게 자산이 관리되는 프로젝트들이 많아질수록 시장 사업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는 줄고, 또 불량한 사업자들이 잘 걸러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십시오.
NH농협은행의 기존 이미지를 생각하면, 커스터디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이 조금 의외로 비춰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자산에 대한 정의, 고객 수요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어 은행이 많은 변화를 필요로 하는 상황입니다. 커스터디 서비스 플랫폼 역시 이런 변화의 일환입니다. 하지만 은행 단독으로 성립할 수 없고 발전할 수 없는 모델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플랫폼이라면 많은 외부 사업자들이 참여하고 플랫폼에 올라탈 때 그 가치를 더 하겠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업계의 다양한 목소리가 모이고, 그 내용들을 토대로 업계의 일반법으로 조금씩 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희 NH농협은행과 함께 커스터디 서비스 기반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싶으시다면 언제든 연락 부탁드리며, 앞으로 진행될 NH농협은행의 커스터디 서비스 사업에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출처: OBCIA 매거진 제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