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보험감독기구가 보험회사의 암호화폐 보유액 전부를 자본금으로 충당하도록 요구하는 고강도 규제안을 제안했다. 유럽 보험 및 직업연금기구(EIOPA)는 암호화폐의 ‘내재적 위험성과 높은 변동성’을 이유로 들며, 이같은 제안을 담은 기술 자문 보고서를 지난 3월 27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제출했다.
현재 주식, 부동산과 같은 전통 자산군은 최대 50% 이내의 자본비율만 요구되는 데 반해, 암호화폐에 대해선 최대치인 *100% 헤어컷*, 즉 전액 충당 요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EIOPA는 공식 성명을 통해 “해당 기준은 암호화폐 자산의 성격을 감안할 때 신중하고도 적절하다”며 “다른 자산의 다변화 효과가 암호화폐에선 기대되기 어려워 위험 완화에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EIOPA는 이와 함께 규제안에 포함될 수 있는 네 가지 옵션을 제시했는데, 이 중 100% 자본 충당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다른 제안에는 80% 스트레스 적용 방안도 있었으나, 보고서는 이를 “불충분한 조치”로 간주했다. 실제로 비트코인(BTC)과 이더리움(ETH)은 과거 각각 82%, 91%까지 가격이 급락한 바 있어, 기존 자산 기준과의 리스크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EIOPA는 “100% 스트레스 수준은 자산가치가 완전히 소멸될 수 있다는 가정에 기반한 것으로, 다변화 효과를 통한 리스크 분산도 무효화된다”며 강력한 규제가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기준으로 유럽 보험시장 내 암호화폐 관련 보험 및 재보험 보유액은 총 6억5,500만 유로(약 1조 원)로 전체 자산의 0.0068%에 불과하지만, 장기적으로 시장 확대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국가별로는 룩셈부르크가 전체 암호화폐 연계 보험 보유액의 69%를 차지해 단일 국가 중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웨덴 역시 21%로 뒤를 이었으며, 아일랜드(3.4%), 덴마크(1.4%), 리히텐슈타인(1.2%) 등의 순이었다.
대부분의 보유 자산은 상장지수펀드(ETF) 등의 형태로 펀드 구조로 운용되며, 계약자 계정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EIOPA는 “정책보유자에게 미치는 직접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며 “규제 도입이 보험가입자 보호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암호화폐 규제를 전면적으로 일률 적용할 경우,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스테이블코인까지 과잉 규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난 1월 서클(Circle)은 공식 입장을 통해 EIOPA의 일괄적 자본 요구가 암호화폐의 이질성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EIOPA는 해당 보고서 말미에 “향후 암호화폐 자산의 수용도와 이동성이 커질 경우 더 정교하고 차별화된 접근이 필요하게 될 수도 있다”며 추가 연구 여지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