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쇼핑 에이전트가 상품 검색과 비교를 넘어 결제까지 수행하면서 소비자 피해와 사기 거래의 책임 주체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기존 전자결제 규정이 소비자의 직접 승인을 전제로 만들어진 만큼, AI가 대신 실행한 거래에 같은 보호를 적용할 수 있을지가 핵심이다.
소비자은행협회(CBA)는 2026년 1월 22일 공개한 ‘Agentic AI Payments’ 보고서에서 AI 에이전트를 소비자의 광범위한 지시에 따라 상품을 비교하고 금융 거래를 실행하는 시스템으로 정의했다. 거래마다 사람이 직접 승인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기존 생성형 AI나 자동이체와 다르다고 설명했다.
CBA는 전자자금이체법(EFTA), 대출진실법(TILA), 카드 네트워크 규정이 소비자의 직접 승인을 바탕으로 설계됐다고 밝혔다. AI 에이전트가 권한을 넘거나 잘못된 결제를 실행했을 때 소비자와 금융기관 가운데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소비자가 카드 정보나 결제 자격증명을 AI 도구에 제공한 경우에는 일부 무단 거래의 책임이 금융기관이 아닌 소비자에게 돌아갈 가능성도 제기됐다. 다만 이는 현행 규정의 적용 불확실성을 설명한 것으로, AI 에이전트 거래에서 소비자 책임이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스테이블코인 등 새로운 결제 레일도 쟁점이다. CBA는 새 결제망이 기존 카드망보다 낮은 비용을 제공할 수 있지만, 카드망과 같은 환불·차지백·무단 거래 보호가 보장된다는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결제 수단이 바뀌면 비용뿐 아니라 분쟁 처리와 소비자 보호 수준도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에서는 제도 정비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왔다. 마크 워너(Mark R. Warner) 미국 상원의원은 2026년 6월 2일 재무부에 보낸 서한에서 AI 에이전트 결제에서 오류·사기·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비자와 금융기관의 책임 범위를 검토해 달라고 요구했다.
워너 의원은 새로운 결제 레일에도 기존 금융 시스템과 같은 수준의 소비자 보호를 적용할지 조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AI 결제를 허용할지의 문제를 넘어, 사고가 발생했을 때 분쟁을 어느 기관과 사업자가 처리할지 정해야 한다는 요구다.
결제업계는 거래를 막기보다 검증된 에이전트와 사용자 승인 정보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비자($V)는 2026년 7월 유럽에서 AI 에이전트가 실제 가맹점의 상품을 선택하고 결제하는 거래를 진행했으며, 30곳이 넘는 유럽 발급사가 참여했다고 밝혔다. Visa Payment Passkeys와 Trusted Agent Protocol도 활용했다.
비자는 2026년 9월 미국 소비자 조사에서 생성형 AI가 결제를 대신 처리하는 것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23%였다고 밝혔다. 비자가 거래를 보호하는 경우 신뢰도는 61%로 높아졌다. 다만 이 조사는 비자가 의뢰하고 해리스폴이 수행했다.
비자는 정상적인 AI 에이전트가 기존 사기 탐지 시스템에서 공격자의 자동화 트래픽으로 오인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판매자가 검증되지 않은 에이전트와 거래하면 정상 소비자의 결제인지 확인하기 어려워진다. 에이전트의 신원, 사용자의 승인 범위, 판매자 정보를 함께 확인하는 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켈빈 첸(Kelvin Chen) 소비자은행협회 정책 책임자는 블룸버그 법률 보도에서 “단순한 공개 의무를 넘어서는 방식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소비자에게 위험을 알리는 것만으로는 AI 에이전트 결제의 책임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내셔널웨스트그룹($NWG)의 NatWest는 AI 기반 위험 분석과 실시간 모니터링을 사기 방지에 활용하고 있으며, 고객이 금융사기를 신고하고 처리할 수 있는 에이전트형 기능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금융기관이 대응 체계를 마련하고 있지만, AI 쇼핑 에이전트의 사기 방어가 충분히 검증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AI 에이전트 결제에서는 사용자의 지시와 에이전트의 실제 행동을 구분하는 절차가 중요하다. 상품 선택, 결제 한도, 결제 수단, 판매자 정보가 사전에 정해져 있더라도 에이전트가 이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분쟁의 책임 범위를 가릴 수 있다.
이 문제는 가상자산 결제에도 이어진다. 앞서 AI 결제와 자동화된 거래 실행의 통제 공백을 다룬 본지 보도처럼, 결제 수단이 카드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바뀌더라도 권한 위임과 감사 추적, 사고 처리 기준은 별도로 정해야 한다.
다만 CBA 보고서는 심포지엄 참가 기관을 익명으로 처리했다. 따라서 뱅크오브아메리카($BAC), NatWest, ING, ASB Bank, 캐피털원($COF)이 공동 보고서나 공동 성명을 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AI 결제 확산과 별개로 소비자 보호와 책임 기준을 정하는 작업은 아직 진행 단계다.

최윤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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