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산업의 근간인 블록체인 기술은 이론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기술이 임의의 원래 데이터를 고정된 길이의 결과값으로 변환하는 '해시함수'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암호화폐 시스템을 해킹하려면 결과값을 토대로 원래 데이터를 알아내야 한다. 그런데 해시함수 특성상 원래 데이터를 알아내기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연산 과정에서 데이터의 일부만 변경돼도 전혀 다른 결과값이 나오는 만큼 공격자는 원래 데이터를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해야 한다.
여기에 블록체인 기술은 제한 시간을 도입했다. 비트코인의 경우, 10분마다 블록이 새로 생성되는데 공격자는 이 10분 안에 모든 해킹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10분이 지나면 전혀 새로운 결과값이 나오고 그동안 시도는 허사로 돌아간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발생한 암호화폐 관련 사건사고는 사용자 부주의나 업체의 보안 취약점을 이용한 국소적인 암호화폐 탈취에 불과했다. 암호화폐 시스템 전체를 해킹한 사례는 나온 적이 없었다.
이런 블록체인 시스템에 '양자 컴퓨터'라는 새로운 변수가 떠오르고 있다. 양자 컴퓨터는 현 컴퓨터의 계산단위인 ‘비트’를 양자 비트인 '큐비트(Qubit)'로 옮겨 매우 빠른 연산이 가능한데, 이런 양자 컴퓨터라면 앞서 언급한 10분 안에 모든 해킹 작업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데이비드 윌리엄스(David Williams) 아킷(Arqit)의 창업자는 “2026년경에 실용이 일반화될 양자컴퓨터는 어떤 블록체인의 보안 시스템도 간단하게 돌파해 버릴 것”이라며 블록체인 시스템에 조소를 보내기도 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양자 컴퓨터 전문가들은 고개를 젓고 있다. 산카르 다스 사르마(Sankar Das Sarma) 메릴랜드 대학교 양자 보안 전문가는 "양자 컴퓨터가 암호화폐를 해킹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주장했다.
산카르 다스 사르마는 "현재 언론을 통해 양자 컴퓨터에 대한 과대광고가 널리 퍼져 있다"라며 "양자 컴퓨터는 엄청난 과학적 성과이지만, 블록체인 기술을 해킹하는 기술력에는 전혀 도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양자 컴퓨터가 잠재적으로 시장 파괴적 기술(disruptive technology)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라면서도 "가까운 미래에 이익을 가져다주거나 실용화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와 별개로 암호화폐와 보안업계 역시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업계는 양자 컴퓨터에 내성이 있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며, 이미 미국은 관련 표준화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해시함수는 블록체인 기술뿐만 아니라 현존 보안체계에도 널리 활용되고 있는 기술이다. 양자 컴퓨터로 인한 보안 우려가 블록체인 업계에만 한정된 문제가 아닌 만큼, 보안 업계도 양자 컴퓨터 관련 대책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